명문대생, 고수익 알바글 보고 지원…보이스피싱 현금 전달책 역할
법원 "미필적으로나마 보이스피싱인 것 알았을 것"…징역형 집행유예
[서울=뉴스핌] 고홍주 기자 = 월 500만원의 고수익을 보장한다는 말을 듣고 보이스피싱 범죄에 가담한 명문대생이 1심에서 징역형 집행유예를 선고 받았다.
서울중앙지법 형사27단독 신세아 판사는 최근 사기 및 공문서위조, 위조공문서행사 혐의로 기소된 대학생 A(25) 씨에게 징역 2년6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했다.
서울 소재 모 사립 명문대 4학년에 재학중인 A씨는 지난해 페이스북에서 '월 400~500만원을 벌 수 있는 배달업무를 할 사람을 모집한다'는 글을 보고 아르바이트를 지원하기로 했다.
자신을 '정 팀장'으로 소개한 사람은 A씨에게 "고객의 자금을 현금으로 건네받아 전달하면 건당 30만원을 주겠다"고 말했다. A씨는 회사의 이름이나 정보를 알지 못한 채 주민등록등본과 가족관계증명서만 제출한 뒤 곧바로 채용됐다.
하지만 정 팀장은 실체가 없는 인물이었고, A씨가 맡은 일은 보이스피싱 조직의 현금 전달책 역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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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게티이미지뱅크] |
이들 조직은 서울중앙지방검찰청 검사를 사칭해 피해자에게 '당신의 계좌가 금융범죄 현장에서 발견되어 불법으로 통장을 대여한 것인지, 개인정보를 도용당한 것인지 확인이 필요하다. 금융범죄자의 계좌에 있는 불법자금 지폐 일련번호와 당신이 가지고 있는 금액의 지폐 일련번호를 비교 확인해야 하니 현금을 인출해 금융감독원 대리에게 전달하라'고 말했다.
A씨는 이들로부터 받은 금융위원회 위원장 명의를 사칭한 가짜 문서를 출력해 금액과 코드발급일을 문서에 기재하고, 피해자가 미리 정한 약속 장소로 나오면 '금감원 대리'를 사칭해 돈을 받았다. 이렇게 A씨가 조직에 전달한 돈은 피해자 4명으로부터 받은 1억400만원이었다.
A씨는 법정에서 금융위원장 명의 문서를 위조할 범의가 없었고, 해외에서 오랫동안 거주해 이런 문서가 공문서라거나 자신이 한 행위가 보이스피싱 범행이라는 것도 몰랐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1심은 이같은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신 판사는 "피고인은 유치원에 다닐 무렵 일본으로 이주했다가 2015년 귀국해 대학에 재학 중이고, 국내에서 일본어 과외 또는 병원에서 일본어 통역 등 단기 아르바이트를 하는 등 5년 이상 한국에서 생활하면서 한국의 문화나 생활양식 등에 익숙한 것으로 보인다"며 "언론 등을 통해 보이스피싱 범죄 내용이 널리 알려져 있었으므로 보이스피싱 범죄에 관해 인지하고 있었다고 보는 것이 경험칙에 부합한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피고인은 피해자들로부터 현금을 전달받은 후 지하철역을 이동해 다른 사람에게 전달하는 역할을 했는데, 국내에서 일본어 통역·과외 등 아르바이트 경험이 있는 대학교 4학년 학생이 월 400~500만원을 벌 수 있다고 광고한 해당 아르바이트 채용과정 및 보수 수준이 이례적인 사정을 인식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보이스피싱은 총책-유인책-모집 및 전달책-인출책-현금전달책 등 순차 공모 형태로 범죄가 행해지는 게 일반적이므로 피고인이 반드시 보이스피싱 범행의 실체와 전모를 전체적으로 파악하고 있어야만 가담 사실이 인정되는 것은 아니다"라며 "피고인이 범행에 가담하게 된 경위나 범행 내용에 대한 인식 수준, 실행 행위, 대가 등에 비춰보면 보이스피싱 가담을 미필적으로나마 인식하고 있었을 것"이라고 판결했다.
다만 "A씨가 자신이 한 범행 자체에 대해서는 반성하는 점, 피해자들과 합의한 점, 초범인 점 등을 고려해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선고했다"고 설명했다.
adelante@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