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화자찬 축포에 속만 타는 세입자
분담금·개발 방식 놓고서 시와 갈등
[서울=뉴스핌] 유명환 기자 = "서울시와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수십 년째 이런 저런 핑계를 들어 재개발 사업을 사실상 포기했었어요. 지금 와서 공공재개발 사업을 승인했다고 떨어대고 있지만 이렇다 할 만한 보상 절차와 사업 계획도 내놓지 못하고 있어요. 더구나 사업이 추진될 경우 약 1만 3000평(4만 9586㎡)에 달하는 토지를 시에다 기부하라고 하는데 이게 말이 되는 소리인가요. 개인 재산을 강탈해 가는 거죠."(서울 노원구 중계동 백사마을 주민 박모 씨)
지난 5일 백사마을에서 만난 박모 씨는 최근 백사마을 재개발 추진에 격앙 돼 이같이 말했다. 그는 "나 뿐만 아니라 여기에 거주하는 원주민 대부분 재개발 사업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갖고 있다"며 현지 분위기를 전했다.
[서울=뉴스핌] 5일 찾은 백사마을은 각종 팻말과 현수막으로 뒤엉켜 있었다. 재개발 사업을 두고 백사마을은 길을 잃고 방황하고 있었다.[사진=유명환 기자] 2021.03.05 ymh7536@newspim.com |
◆수십 년째 표류했던 재개발 사업…'이해관계 상충' 갈등 상존
백사마을은 서울의 마지막 달동네로 노원구 중계본동 104번지에 자리잡고 있다. 5일 찾은 백사마을은 각종 팻말과 현수막으로 뒤엉켜 있었다. 재개발 사업을 두고 백사마을은 길을 잃고 방황하고 있었다. 마을 곳곳에선 주민대표회의에서 붙인 호소문과 LH 공문·철거 문구·과거 주민대표회의를 규탄하는 각종 벽보와 재개발승인을 축하하는 현수막만 있을 뿐 사람의 온기는 찾아볼 수 없었다.
최근 서울시가 '재개발정비사업'을 승인하면서 동네는 더욱더 삭막해졌다. 지난 2008년 개발제한구역(그린벨트)이 풀리면서 재개발 사업이 본격화됐다. 서울시도 백사마을의 빠른 재개발을 위해 용도변경 등 인센티브를 제공했다.
이런 분위기에 전국 각지에서 투자자들이 몰렸다. 하지만 원주민들과 투자자들 사이의 갈등이 고조됐고 재개발 정비사업은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했다. 결국 사업자인 LH가 철수하면서 재개발은 표류된 이후 최근에서 사업이 승인됐지만 세입자 등에 보상 문제는 아직도 해결되지 않고 있다.
현재 거주하고 있는 세입자 중 월세 10만원으로 살아가는 극빈계층이 대다수다. 그러나 그들이 요구할 수 있는 권리는 없는 것이 현실이다. 세입자 중에서도 2007년 6월 이전 거주가 확인된 가구에만 주거이전비가 지급된다. 여기에 임대주택을 분양받을 수 있는 권리가 더해진다.
재개발 조원합원인 박모 씨는 "원주민들 중 일부는 예전에 다른 지역으로 이주해서 지내고 있지만 개발 이전 토지와 이주 보상 문제가 남아 있어서 남아 있는 분들이 많다"며 "하루 벌어 하루 사는 분들이 상당한데 시와 노원구청은 이들을 내쫓을 생각만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서울=뉴스핌] 5일 찾은 백사마을은 각종 팻말과 현수막으로 뒤엉켜 있었다. 재개발 사업을 두고 백사마을은 길을 잃고 방황하고 있었다.[사진=유명환 기자] 2021.03.05 ymh7536@newspim.com |
◆ '한국판 산토리니' 만들겠다더니‥"6평서 사는 사람 수억원에 달한 분담금 없다"
개발 방식과 분담금 문제는 아직도 해결되지 않았다. 서울시는 2011년 '주거지보전사업' 추진지역으로 방향을 틀었다. 일부 노후주택을 부수지 않고 개발하는 방식이다. 저층주택이 어우러진 '한국판 산토리니 이아마을(Oia village)'로 변신할 것이라는 기대를 모았지만 과도한 주민부담금이 암초가 됐다.
서울시 원안에 따르면 주민 1가구당 평균 분담금은 약 3억 5000만원. 주민들은 총 사업부지중 주거보전구역을 줄여 주민 분담금을 낮추자는 입장이지만 서울시는 사업계획만 승인했을 뿐 각종 보상 문제에는 소극적이다.
이날 만난 이모 씨는 "이제는 돈 없는 사람은 그냥 나가야 하는 판국"이라며 "이 동네에 돈 없어서 10~20㎡(약 6평)의 집에서 사는 사람들도 많은데, 분담금으로 3억 5000만원 정도의 거금을 그들이 어떻게 마련할 수 있겠나"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1400여 가구 중 30㎡ 이하의 집을 소유한 이들이 300가구가 넘었고, 135가구는 토지 없이 집만 소유한 상태였다.
시는 당초 계획대로 사업을 진행하겠다는 입장이다. 시는 총 484가구 규모의 임대주택을 건립하고 지역 주민의 공동체 보전을 위해 박물관과 마을식당, 마을공방 등 다양한 주민공동이용시설을 배치할 계획이다. 또 기존 가옥들 중 마을형성 초기 원형을 간직한 2채를 선정해 리모델링 후 주민 휴게시설로 활용할 방침이다.
공동주택 부지에는 1973가구 규모의 분양 아파트가 들어선다. 최초 계획(1461가구)보다 512가구 증가한 규모다. 이 밖에 공원, 녹지공간, 공공청사 등도 함께 조성한다.
류훈 서울시 도시재생실장은 "백사마을은 재개발로 인한 기존 거주민의 둥지 내몰림을 최소화하는 동시에 도심 내 대규모 주택공급이 가능함을 보여주는 상생형 주거지 재생의 새로운 모델"이라며 "다양한 유형의 재생 모델을 지속적으로 발굴·적용해 낙후된 주거환경을 개선해 나갈 예정"이라고 말했다.
ymh7536@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