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숙혜의 월가 이야기
[뉴욕=뉴스핌] 황숙혜 특파원 = 장기물을 중심으로 한 미국 국채 수익률 상승이 연일 주식시장에 압박을 가하는 모습이다.
시장 금리가 오르면 기업 미래 현금 흐름의 현재 가치를 그만큼 높은 이자율로 할인해야 하고, 이는 주가와 밸류에이션에 작지 않은 부담이다.
최근 이틀 연속 뉴욕증시가 내림세를 보인 가운데 IT 섹터가 특히 큰 폭으로 떨어진 것도 이 같은 맥락이다.
시장 전문가들은 최근 가파른 금리 상승이 구조적인 측면에서 지구촌에 재앙을 일으킬 수 있다고 경고한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백악관 입성 직후부터 슈퍼 부양책을 추진할 움직임을 보이는 가운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코로나19) 팬데믹 사태의 충격을 극복하기 위한 주요국의 부양책이 인플레이션 리스크를 높이고, 이는 금리 상승을 부채질하는 한편 천문학적인 규모의 부채 버블을 무너뜨리는 상황까지 초래할 수 있다는 얘기다.
18일(현지시각) 장중 미국 10년물 국채 수익률이 1.31% 선을 뚫고 오른 뒤 상승폭을 낮추며 1.28% 선으로 후퇴했다. 30년물 수익률이 2% 선을 밟는 등 장기 금리 상승세가 두드러진다.
연초 이후 이른바 리플레이션 트레이드가 봇물을 이루자 시장 전문가들은 채권시장이 이미 슈퍼 부양책의 후폭풍에 따른 금융시장 리스크를 반영하고 있다는 해석을 내놓았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fA)가 펀드 매니저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서베이에서 응답자들은 2013년 '테이퍼 발작'과 같은 충격을 올해 가장 커다란 리스크로 꼽았다.
인플레이션 기대 심리가 지속적으로 상승, 중앙은행에 자산 매입 프로그램 축소 및 금리 인상 압박을 가할 경우 금융시장 전반에 또 한 차례 발작이 나타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사진=로이터 뉴스핌] |
우려가 현실화될 경우 상황은 8년 전보다 심각할 전망이다. 지구촌의 부채가 당시에 비해 70조달러 급증한 상황을 감안할 때 이른바 테이퍼링이 몰고 올 파장이 클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가뜩이나 팬데믹 사태로 인해 벌어들이는 수입으로 이자 비용을 감당하지 못하는 좀비 기업들이 급증한 가운데 금리 상승은 또 한 차례 위기 상황을 일으키는 뇌관이라는 것이 시장 전문가들의 얘기다.
블루베이 애셋 매니지먼트의 캐스퍼 헨스 포트폴리오 매니저는 로이터와 인터뷰에서 "레버리지가 지난 수 년간 가파르게 상승한 만큼 금리 상승에 따른 리스크가 훨씬 클 것"이라며 "회사채 시장의 디폴트 급증은 물론이고 금융시장 전반에 패닉이 확산될 전망"이라고 말했다.
국제금융협회(IIF)에 따르면 지구촌 부채는 281조달러로 집계됐다. 이는 2013년 210조달러에서 가파르게 늘어난 수치다. 같은 기간 기업과 가계 부채 역시 큰 폭으로 증가했다.
사실 미 연준이 2023년까지 제로금리를 유지할 뜻을 밝히는 등 주요국 중앙은행이 통화완화 기조에서 발을 빼지 못하는 것은 천문학적인 규모의 부채와 무관하지 않다.
인플레이션 기대 심리를 반영한 리플레이션 트레이드가 확산, 시장금리가 치솟는 상황에 투자자는 물론이고 정책자들이 바짝 긴장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투자 원금 회수 기간을 의미하는 채권 듀레이션은 8.5년으로, 2013년에 비해 2년 길어졌다. 듀레이션이 클수록 금리 상승에 더욱 민감하게 반응하게 마련.
미국 뉴욕증권거래소 트레이더 [사진=로이터 뉴스핌] |
주식시장 역시 리스크가 높아졌다. 글로벌 주식시장의 12개월 예상 실적 기준 주가수익률(PER)은 2013년 12.5배에서 최근 20배로 뛰었다. 밸류에이션이 높아진 만큼 금리가 오를 때 주가 하락 압박이 커질 것이라는 계산이 가능하다.
JP모간 애셋 매니지먼트의 데이비드 켈리 전략가는 "금리 상승에 따른 충격이 늦춰질수록 발작은 커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리걸 앤드 제너럴 인베스트먼트 매니지먼트의 에미엘 반 덴 힐젠버그 자산 배분 헤드는 파이낸셜타임스(FT)와 인터뷰에서 "거의 모든 투자자들이 이미 주식시장 버블에 강한 경계감을 내비치고 있다"며 "금리가 오르는 만큼 주가 하락 압박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higrace5@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