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부품사 부가가치 높은데…한국은 '베끼기' 급급
미래차 수요 늘려야 이익 늘지만…한정된 예산 제약
[편집자주] 완성차업체와 전자, 철강, 화학, 소재 등 산업계 모든 업종이 똘똘 뭉쳐 미래차 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다. 스스로 움직이는 자율주행차. 자율주행을 두뇌에 얹은 전기차. 전통 제조산업의 영역을 허물고 업종간 협력을 통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단적인 미래차 사례다. 각 업종 대표주자들의 사활을 건 미래차 질주. 차 한 대가 몰고온 산업 패러다임의 변화는 우리 일상의 꿈을 현실로 바꿔 놓을 날이 멀지 않았다는 신호다.
[서울=뉴스핌] 강명연 기자 = 자동차 산업 생태계가 급변하면서 가장 큰 위기감에 휩쌓인 곳은 부품사들이다. 완성차들은 내연기관차에서 전기차, 수소차 전환에 속도를 내고 있는 반면 하청의 재하청으로 연결된 수 많은 부품사들은 미래차 개발을 따라가기는커녕 적자에 시달리며 도태될 위기에 처한지 오래다.
정부는 기업활력법을 통해 내연기관차에서 수소·전기차로 사업을 재편하는 부품사를 돕는 정책 등을 펴고 있지만, 특정 기업을 위한 지원만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근본적으로는 영세 하청업체들이 연구개발(R&D) 역량을 갖추고 경쟁력을 키울 수 있는 부품산업 구조 개선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일각에서는 미래차 산업 전반이 성장할 수 있도록 관련 수요를 늘리는 유인책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제기되지만, 한정된 재원을 차산업에만 쏟을 수 없다는 의견도 만만치 않다.
◆ 완성차는 친환경차 개발 마쳤는데…'대여도' 납품 부품사는 도태
30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국내 대표 완성차 업체인 현대차그룹은 이미 전기·수소차 생산을 위한 기술력을 확보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현대차는 수소차용 멤브레인을 미국 고어사로부터 수입해 사용했는데, 코오롱인더스트리가 올해부터 멤브레인을 현대차에 납품하면서 수소차는 100% 국산화를 실현하게 된다. 전기차 역시 배터리 효율을 높이고 가격을 낮추기 위한 기술 개발이 계속 진행 중이지만 아직까지 생산 자체는 어려움이 없는 상태다.
[서울=뉴스핌] 정일구 기자 = 2일 오후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친환경 자동차 전시회 'EV(Electric Vehicle) 트렌드 코리아 2019'에서 관람객들이 전기차 충전기를 살펴보고 있다. 2019.05.02 mironj19@newspim.com |
문제는 8000개에 이르는 현대차의 협력사 대부분이 연구개발(R&D)을 수행할 역량이 없다는 점이다. 현재는 전기차 연 10만대, 수소차 연 수천대를 만드는 데 소수의 협력사만으로도 부품 조달이 가능하다. 하지만 100만대 이상의 본격적인 양산을 위해서는 다양한 차종에 적용할 부품을 만들어내는 협력사가 더 많아져야 한다. 내연기관 부품 생산에 머물러 있는 대부분의 협력사들은 비용 절감을 위한 생산 공정 개선에 집중했을 뿐 R&D 경험은 거의 없다.
자동차 부품사들이 R&D 역량을 갖추지 못한 데에는 국내 차산업 생태계의 구조적인 문제가 깔려 있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국내 완성차 시장이 현대·기아차 독점으로 고착되면서 대부분의 하청업체들은 현대차에만 납품하는 전속거래 아래 원청이 준 도면대로 납품하는 '대여도' 방식에 머물러 있다. 반면 해외는 완성차 업체가 부품의 콘셉트를 알려주면 부품사가 R&D를 통해 그린 도면을 완성차 업체가 승인한다. 완성차 업체가 원하는 부품을 개발할 역량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해외에서는 부품사들의 기술력이 완성차 품질을 좌우한다는 점에서 부품사의 이익이 더 높은 게 일반적이다. 반면 한국은 차 시장 호황기 기준 현대차 이익률이 10%대로 가장 높고 1차 협력사는 3%대, 2차 이하는 1% 수준의 이익을 가져갔다. 시장이 위축된 이후에는 소수의 1차 협력사를 제외한 대부분의 하청업체들은 이익을 거의 내지 못한다.
최근 들어 시장이 급변하고 있는 만큼 소수의 1차 협력사를 중심으로 미래차 기술력을 키우고 이들이 2차 이하 협력사들을 끌고 가도록 유도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동시에 차부품 시장 구조를 미래차의 핵심이 될 전장, 소프트웨어 중심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이항구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내연기관차는 선진국이 이미 만든 기술을 쫓아갔기 때문에 현대차가 분석해서 하청업체들에 더 싸게 만들어오라고 하면 됐다"며 "하지만 미래차에서는 이런 방식이 더 이상 통할 수 없는 만큼 하청업체들이 R&D를 통해 스스로 역량을 키울 수 있는 유인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다만 "미래차로의 전환 속도가 빨라졌기 때문에 시간이 없다"며 "그나마 R&D가 가능한 1차 협력사를 키워서 2차 이하 협력사로 파급될 수 있는 방법을 써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혁신 없이 머물러 왔던 부품사들이 전장과 소프트웨어를 할 수 있도록 인력 양성과 R&D가 동시에 진행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서울=뉴스핌] 이한결 기자 = 31일 오후 서울 종로구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앞에서 경찰의 수소전기버스 도입을 기념해 열린 시승식에서 참석자들이 수소버스 개발 보급 확대를 위한 업무협약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정복영 수도권대기환경청장, 민갑룡 경찰청장, 이낙연 국무총리, 정승일 산업통상자원부 차관, 공영운 현대자동차 사장. 2019.10.31 alwaysame@newspim.com |
◆ "보조금 늘리면 부품사 살아나" vs "한정된 재원 투입 한계"
일각에서는 정부가 친환경차 보조금을 늘려 부품사들의 이익이 자연스럽게 늘어날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재정을 투입해 친환경차 생태계를 조기에 구축하고, 부품사 스스로 R&D 역량을 키우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는 취지다.
이호근 대덕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지금 친환경차 판매는 정부 보조금 대수만큼 판매되고 있는데, 수요가 충분하지 않아 생태계 조성이 더딘 상황"이라며 "특히 전기차 보조금의 일부를 수소차로 돌리면서 수익이 나는 구조를 만들기 더욱 어려워졌다"고 지적했다.
이어 "친환경차로의 방향성은 맞지만 단일 차종에 대해 연간 최소 10만대 이상 생산하지 않으면 완성차 업체는 흑자를 낼 수 없다"며 "완성차 업체가 가장 많은 이익을 갖고 N차 협력사로 내려갈수록 이익이 줄어드는 구조에서 대다수의 부품사들이 기술개발 여력이 없는 만큼 정부 보조금을 늘릴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미래차 지원을 위해 정부가 어느 정도의 재원을 투입할지는 더 많은 논의가 필요하다는 게 정부의 설명이다. 지금은 환경문제 해결의 일환으로 보조금을 주고 있지만 업계 지원이라는 꼬리표가 붙을 경우 세계무역기구(WHO) 협정을 위반할 가능성도 문제다.
산업부 관계자는 "현재는 전기·수소차가 내연기관차에 비해 비싸기 때문에 미세먼지 배출을 줄인다는 목표로 보조금을 주고 있지만, 한정된 예산 안에서 보조금을 얼만큼 줘야 할지, 언제까지 줘야 할지는 논의가 많다"며 "친환경차 보급 목표제가 논의를 통해 일부 도입됐는데 너무 많은 예산을 친환경차에 쏟아부을 수도 없는 만큼 고민이 많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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