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한미군 방위비 불협화음, 지역 동맹관계 흔드는 양상"
유럽도 흔들... "미국 주도 탈피해 대중 관계 엿보는 추세"
[서울=뉴스핌] 이영기 기자 = 최근 방위비 협상 등을 두고 미국과 한국 간의 불협화음이 아시아지역의 전통이라 할 수 있는 미국과의 지역 동맹관계를 흔들고 있는 양상이라고 지난 15일 파이낸셜타임스(FT) 지가 보도해 눈길을 끈다.
신문은 주한미군 경비를 4배로 올리려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요구에 대해 반대의 목소리를 높이는 강경파들이 들고 있는 플랭카드에는 현재 미국에 확대된 시위의 구호 '숨을 쉴 수가 없다'를 인용해 "미 제국주의가 바로 '숨을 쉴 수가 없다'를 의미한다"라는 구호가 적혀있다고 전했다.
이어 미국과 통칭 '혈맹관계'에 있는 한국에서 젊은 계층과 좌파들의 반미 감정은 상존해 왔지만 최근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반감이 더해지면서, 시위대와 경찰의 충돌이 잦아지고 이 같은 젊은계층과 좌파들의 입장은 점점 주력 정치세력으로 스며들고 있다고 분석했다.
FT는 지난 2주간 서울에 있는 주한 미국대사관 건물에는 '흑인 생명도 중요하다' (Black Lives Matter)는 현수막이 내걸렸지만 이미 그 주변은 오랜동안 트럼프 대통령에 반대하는 시위가 진행되고 있었다며 최근의 분위기를 전하기도 했다.
보도에 따르면, 트럼프 반대 시위에 참가한 한 시위자는 "미국은 우리에게 무기를 팔기 위해 여기 와 있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방위비 분담을 한국이 더 해야한다는 입장인 미국은 주한미군 한국인 군무원 수천명을 지난 4월부터 임시해고 한 상태다. 이것이 이런 반미 감정을 더 강하게 했다.
특전사 사령관을 지낸 육군 중장 출신 전인범은 "트럼프는 뉴욕에서 돈 빌리는 것이 오히려 더 쉽다며 한국을 프리라이더라고 해 우리 자존심을 건들였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불행하게도 이제 이 문제는 감정적인 차원으로 비화됐다"고 우려했다.
중국의 급성장과 미국의 리더십 부족으로 잉태된 한-미 간의 이런 간극은 지난 70년간 유지된 이 지역에서의 평화와 안보관계에 틈을 넓혀 놓았다.
◆ 트럼프 신뢰 못하는 아시아 동맹국들
FT는 트럼프의 '미국 우선' 정책은 물론 한국에 가장 큰 충격을 줬지만 그 파장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의 아시아-태평양 전략의 주축국인 일본과 호주도 미국이 더 이상 과거처럼 방위비를 부담하려 하지 않는 입장을 매우 우려하고 있다면서, 어쩌면 미국의 현실이 방위비 부담을 어렵게 하는지도 모른다고 전했다.
미국 싱크탱크 국제전략연구소(CSIS)의 보니 글레이저는 "미국과 동맹을 맺어온 아시아 국가들 몇몇은 더 이상 이 관계가 에측가능하거나 믿을 만한 것으로 보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이들 국가는 오는 11월에 트럼프가 재선에 실패하면 안도의 한숨을 내쉴 것이라 것이 글레이저의 분석이다. 트럼프만 아니면 그간의 동맹관계가 회복되고 잘 유지될 것이라는 희망을 아직은 가지고 있다는 의미고, 그래도 미국의 군사력과 외교력이 강하다는 것이다.
미국은 중국을 전략적 경쟁자로 정하고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미국을 대신하려는 강국으로 보고 있다. 이 지역에서 판세를 중국쪽으로 기울도록 재편하려고 경제력과 군사력을 총동원하고 있다는 것이다.
반면 미국도 대중전략을 최우선 과제로 설정해 놓고 있다. 지난 4월 미 인도-태평양 사령관 필립 데이비슨은 의회 제출 보고서에서 향후 6년간 이 지역에서 동맹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최소 200억달러(약 24조원)가 추가로 더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데이비슨 사령관은 무엇보다도 군사적 동맹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반면 최근 남중국해에서 고조되는 미국과 중국 간의 긴장은 아시아 지역 동맹국을 불안하게 만들고 있다. 최근 공개된 백악관의 '중국에 대한 전략적 대응'이라는 보고서에서도 더 이상 자유 무역이나 민주주의라는 가치에 대한 언급을 찾아 볼 수 없기 때문이다.
◆ 삐걱거리는 미국-EU관계
미국과의 동맹에서 금이 가는 것은 아시아에서 만은 아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주독미군 병력을 2만5000명으로 줄이겠다"고 말했다.
그는 독일이 NATO(북대서양조약기구) 동맹이 요구하는 만큼 충분한 방위비를 지출하지 않고 있다고 불만을 표시하기도 했다. 또 독일이 비용을 더 지불하기 전까지 미국은 병력을 철수하겠다고 수차례 말해왔다.
주독미군 감축은 아프가니스탄과 시리아, 이라크, 한국, 일본 등 여러 곳에서 병력을 미국으로 복귀시키는 트럼프 대통령 계획의 맥락에서 봐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평가하고 있다.
또 대 중국 관계에 대해서도 유럽연합(EU)이 중국문제를 집중적으로 논의하기 위한 미국과의 대화를 제안했다.
세프 보렐 EU외교안보 고위 대표가 EU홈페이지에서 미국과 중국 중 어느 쪽 편도 들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어, 이 같은 제안은 대중국 공조를 두고 EU와 미국 간의 갈등의 조짐으로 평가된다.
지난 14일 보렐 대표는 EU홈페이지에 올린 글에서 "EU는 범대서양 반중동맹에서 빠지겠다"며 "중국과의 조직적 라이벌(systematic rival) 구도에서 벗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미·중 갈등이 세계 정치의 주요한 축으로 자리잡으면서 유럽은 어느 쪽 편을 들 것이냐에 대한 압박이 많이 들어오고 있다"면서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우리만의 길'을 걸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국이 중국을 압박하기 위해 EU, 한국 등 동맹국들을 대상으로 반중동맹 동참 요구를 해온 가운데 EU가 이를 거부하며 중립 노선을 천명한 셈이다.
유럽에서 이런 현실을 확인한 아시아 동맹국도 나름 방책을 강구할 것으로 보인다.
◆ "미국 주도에서 탈피, 대중 관계 여지 가지려는 추세"
아시아 태평양 지역에서 미국 다음으로 강한 나라 일본도 미국과 한국간의 방위비 협상을 지켜보고 있다. 특히 일본과 호주는 환태평양경제협력체(TPP)의 와해로 실망이 크다.
호주 외무부 차관 출신 리차드 모드는 "미국이 경제적인 측면에서 설득력을 잃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에서 얻기 어려운 경제적 소프트 파워 리더십을 대신하는 일본은 남아시아나 동남아시아에서 인프라 투자를 지원하는 중국의 일대일로 정책에 대항해 가고 있다.
호주 스콧 모리슨 총리는 이달 초 인도 나렌드라 모디 총리와 영상 정상회담을 가지고 상호 군사기지 활용에 대한 협정을 체결했다.
호주의 이런 움직임은 2018년 베트남과 전략적 동맹을 맺은 것과 맥락을 같이한다. 일본이나 인도 뿐만 아니라 베트남과 인도네시아 등이 대중국 정책에서 각각 맡은 역할을 하자는 것이 호주의 입장이다.
강대국은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의 군사력이 있는 국가들이 연대하는 것도 미국 주도의 구도에서 이탈해도 문제가 없는 시나리오로 호주의 입장과 일맥 상통한다.
하지만 양진영으로 지역이 분할되는 시나리오도 가능하다. 비록 중국의 공식적인 외교전략이 동맹관계를 맺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짧은 기간 내에 편가름이 나타나지는 않겠지만 그렇다고 무시할 수도 없는 것이다.
CSIS의 보니 글레이저는 "친미 블록과 친중 블록으로 지역을 분할하는 결과를 초래할 위험성이 있다"고 경고했다.
또 과거 동맹국 일부가 미국이 더 이상 경제적 이익이나 안보에 도움이 안된다고 판단하고 중국 쪽으로 기울수도 있다. 특히 한국의 경우 이렇게 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인다.
폴 최(최석훈) 전직 주한미군 안보 전략가는 "미국과의 관계 약화는 현재 정권을 잡고 있는 일부 진보 좌파 에게 '경제적 압박을 가하는 중국과 동맹국에게 군비증강을 요구하는 미국이 어떻게 다른가'라는 질문을 던져준다"고 관측했다.
다른 전문가들은 한국 사람들이 중국이 점점 강해짐에 따라 중국 영향력을 수용할 수도 있다고 보고 있다.
전인범 전 특전사령관은 "그들은 새로운 세계에 새로운 대응책이 될 수 있다고 말들 하고 있는데 이는 현재 상황을 매우 위험하게 몰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워싱턴 로이터=뉴스핌] 이홍규 기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백악관 로즈가든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20.03.29 bernard0202@newspim.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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