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물 시장은 수요 기대감 반영…상황 좋지 않아
정유사, 가동률 줄이기도 한계…정부 지원 필요
[서울=뉴스핌] 이윤애 기자 =미국 서부텍사스원유(WTI) 가격이 사상 첫 마이너스를 기록하면서 국내 정유업계는 더욱 망연자실한 분위기다.
'마이너스 유가'가 정유업계에 당장 충격으로 오는 것은 아니지만 초유의 사태로 인한 심리적 위축이 수요 감소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악재 중 악재로 꼽힌다.
특히 가뜩이나 역대 최악으로 예상되는 1분기 실적에 이어 2분기 마저 최악의 부진을 이어갈 수 있다는 공포감이 엄습해 있다.
◆수요 절벽…정제마진 5주 연속 마이너스 행진
20일(현지 시각) 미국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5월 인도분 WTI는 배럴당 -37.63달러에 거래를 마감했다. 지난 17일 종가 18.27달러 대비 55.90달러, 300% 가까운 낙폭을 기록했다.
국제유가가 마이너스를 기록한 것은 사상 처음이다. 마이너스는 유가는 말그대로 수요가 없어서 판매자가 돈을 얹어주고 원유를 팔아야 한다는 의미다.
이번 대폭락 사태는 5월물 WTI 만기일을 앞두고 선물 투자자들이 5월물 원유를 팔고 6월물로 갈아타는 '롤오버'를 선택하면서 벌어졌다.
[그래픽=김아랑 미술기자] |
정유업계 한 관계자는 "코로나19로 수요가 급감한 가운데 WTI 마이너스 유가 사태는 선물 만료 시점에 발생한 하루짜리 이벤트일 가능성도 있다"면서도 "미국, 유럽 등에서 코로나19가 진정되지 않아 수요 부진 문제가 심각하다는 것은 분명하다"고 말했다.
문제는 수요 감소가 정유사 수익성의 지표인 정제마진 하락의 주원인이라는 점이다. 실제 정제마진은 지난달 셋째 주에 배럴당 -1.9달러로 내려앉은 뒤 이달 셋째주가지 5주째 마이너스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로이터가 관련 통계를 작성한 2014년 이후 처음이다.
정제마진은 휘발유·경유 등 석유제품 가격에서 원유 가격과 수송·운영비 등을 뺀 금액으로 배럴당 4달러가 손익분기점이다. 이를 밑돌면 팔수록 손해다.
◆"답 없는 문제"…유가, 수요, 정제마진 '외부 요인'
국내 정유사들은 코로나19 여파로 유가 급락, 수요감소, 정제마진 부진 등이 겹치며 1분기 사상 최악의 실적을 예고하고 있다.
SK이노베이션과 GS칼텍스, 에쓰오일, 현대오일뱅크 정유4사의 합한 영업손실액이 3조원에 이를 것이라고 예측된다. 사상 최악의 실적이라고 평가됐던 2014년 4분기 영업손실 1조1500억원을 훌쩍 뛰어넘는다.
정유업계 한 관계자는 지금처럼 외부 환경에 따른 실적 변동이 너무 큰 정유업의 상황에 대해 "정답이 없는 문제를 푸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그는 "유가가 계속 하락하고 있지만 별도의 방법이 없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가능한 대책은 가동률 하향 조정, 정기보수 조기 시행, 인력 감축 등 뿐이다.
SK이노베이션이 자회사인 SK에너지는 지난달 울산CLX내 원유 정제공장 가동률을 기존 100%에서 85%로 하향했다.
현대오일뱅크와 GS칼텍스는 정기보수 일정을 앞당겨 하고 있다. 현대오일뱅크는 이 기간 정유 공장 가동률이 30% 수준에 그치며, GS칼텍스는 정기보수 이후 재가동을 늦추는 방안도 고려중이다. 에쓰오일은 희망퇴직 시행을 검토중이다.
정유업계 관계자는 "정유사들이 규모가 있어 지금까지 버텼지만 2분기 마저 조 단위 적자가 지속되면 더 이상은 어려울 것"이라며 "정유사별 자구책 만으로는 한계인 상황이라 정부의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yunyun@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