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사 대상 4.5조원 한도 대출 전망
정부 보증 없어 'AA-'만 지원 한계
[서울=뉴스핌] 백지현 기자 = 한국은행이 사상 최초로 회사채 담보로 비은행 금융기관 대상 대출을 실시하기로 했다. 외환위기나 금융위기 때도 나온적 없는 카드다. 이번 조치로 증권사들은 5조원 안팎의 지원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회사채 시장에선 볼멘소리가 나온다. 정작 문제가 되는 비우량채 시장은 지원대상에 빠졌다는 지적이다.
[서울=뉴스핌]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9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금융통화위원회에서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사진=한국은행] 2020.04.09 hyung13@newspim.com |
◆ 증권사에 4.5조원 유동성 지원 전망
한은의 특별대출제도의 주 타깃은 증권사다. 증권사들은 해외주식 연계 파생상품 운용을 늘려왔다. 그러나 최근 해외 증시 급락으로 마진콜이 발생하면서 단기 자금 압박에 시달리게 됐다. 그러자 자금조달을 위해 CP 발행을 급격히 늘리면서 단기물 시장은 급격히 경색됐다. 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올해 1분기 ELS 미상환 발행잔액 72조3274억원으로 직전분기 대비 1.8% 증가했다.
증권사가 받을 수 있는 지원금액은 4조5000억원으로 예상된다. 한은은 자금난에 빠진 증권사들이 보유하고 있는 'AA-' 이상의 우량 회사채를 담보로 받고, 최장 6개월까지 돈을 빌려준다. 증권사가 보유하고 있는 'AA-'급 이상 회사채는 약 6조원이다. 이중 한은의 지원 대상이 되는 증권사 15곳과 한국증권금융은 4조5000억원 어치를 보유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미선 하나금융투자 연구원은 "이번 조치로 CP 및 ABCP 차환 발행 부담이 있던 증권사의 자금확보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전했다. 그는 "RP매입대상증권 및 기관 확대와 더불어 증권사의 유동성 확보가 보다 용이해졌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통안증권 금리가 너무 올라갈 경우 대출제도 효과가 사라질 수 있기 때문에 당국의 금리 관리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다만, 지원액이 충분할지는 미지수다. 증권사들이 갖고 있는 회사채 중 AA-급 이하가 대부분이라면 이번 지원효과가 위축되기 때문이다.
◆ 높다란 'AA-' 등급벽...비우량채 지원은 여전히 부재
한은은 이번 조치를 통해 회사채 시장 안정화 효과도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비우량채가 또다시 지원대상에서 빠진 가운데 효과가 제한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한은은 대출 담보를 'AA-' 등급 이상 회사채로 제한하고 있다. 한은 관계자는 "신용보강 장치가 없다는 점을 고려해 'AA-'로 등급하한을 정하게 됐다"고 밝혔다. 정부 보증이 없는 상태에서 중앙은행 단독으로 회사채를 담보로 받아주기엔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앞서 나온 채권안정펀드 역시 'AA-' 이상으로 지원대상을 제한하고 있다. 회사채 신속인수제도 역시 'A '이상을 하단으로 두고 있으며, 국책은행들의 회사채 차환지원도 'A'급 혹은 코로나19 여파로 등급을 내린 기업 중 'BBB-' 이상만 지원한다.
이 때문에 'AA-'이상 급 우량채는 사정이 개선됐지만 비우량채 시장은 여전히 경색이 심각하다. 'BBB-'급 스프레드는 금융위기 때만큼 확대됐다. 금리 스프레드는 16일 기준 7.365로 2009년 7월 초(7.35)와 유사한 수준이다.
한은이 기대하고 있는 낙수효과도 불확실하다. 한 시장 관계자는 "채권 유통시장엔 'AA-' 등급벽이란게 있다. 'AA-'급 이상을 다루는 기관과 그 이하를 다루는 기관이 나뉜다. 따라서 낙수효과가 나타나는건 만만치 않다. 만일 효과가 나타나더라도 시간이 다소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정부 보증 기구를 통한 회사채 직접 매입이 대책으로 거론된다. 문홍철 DB투자증권 연구원은 "중앙은행이 비우량채를 사들이려면 정부가 보증기구를 세워야 한다. 미국 연준도 정부가 손실보전을 하고 나머지는 연준이 돈을 대주는 형식이다. 이는 연준이 손해 부담을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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