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김선미 기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영국·프랑스·독일에 미국의 대(對)이란 정책에 협조하지 않으면 유럽산 자동차에 25%의 관세를 물리겠다고 협박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미국 워싱턴포스트(WP)는 이란 핵합의(JCPOA·포괄적공동행동계획) 유럽 서명국인 영·프·독이 이란의 합의 위반을 공식 비난하고 분쟁조정 절차에 착수하기 1주 전 트럼프 행정부가 비공개로 이러한 위협을 가했다고 16일(현지시간) 유럽 관료들을 인용해 보도했다.
오스트리아 빈에 위치한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본사 앞에서 펄럭이는 이란 국기 [사진=로이터 뉴스핌] |
트럼프 행정부 관료들은 각국의 미국 워싱턴 주재 대사관을 통해서가 아닌 직접 3개국 관료들에게 자동차 관세 위협을 가하며 이란 압박에 동참할 것을 강요했다고 유럽 관료들은 전했다.
한 유럽 관료는 미국이 관세로 유럽 외교정책을 좌지우지하려는 행동은 '강탈'에 해당하는 것으로, 이는 미국이 가장 역사가 깊은 동맹국들에 새로운 강경 전략을 내세우면서 대서양 동맹 관계를 더욱 위태롭게 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유럽을 상대로 더욱 유리한 무역 협상을 이끌어내기 위해 25%의 자동차 관세 카드를 꺼낸 적이 있지만, 외교정책에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 관세 카드를 꺼내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유럽외교협회(ECFR)의 제러미 샤피로 조사국장은 "미국의 관세 위협은 마피아 같은 행동"이라며 "동맹들 사이에서는 이러한 식으로 관계를 망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유럽에 대한 관세 위협이 있었느냐는 질문에 한 미국 관료는 "우리는 항상 이란 핵합의가 끔찍한 합의라는 점을 명시했다"고 답했다.
WP는 영·프·독이 이미 수주 동안 분쟁조정 절차를 시작할 의향을 표시했기 때문에 트럼프 행정부의 이러한 위협이 필요한 것도 아니었다고 지적했다. 다만 미국은 이란에 대한 제재를 부활하기 위해 절차 개시를 강요했지만, 유럽 측은 이 절차를 핵합의를 구제하기 위한 마지막 조치로 간주하고 있다는 입장 차이가 있을 뿐이었다.
유럽 관료들은 오히려 트럼프 정부의 위협이 결정 과정을 복잡하게 만들었다고 전했다. 이미 분쟁조정 조항 발동을 결정한 상태였는데 트럼프 행정부가 협박을 해오면서 유럽이 미국의 꼭두각시처럼 보일까 우려해 일부러 조치를 늦췄다는 설명이다.
분쟁조정 절차가 시작되면 공동위원회가 구성돼 2주 이상 장관급 협상을 진행하고, 이를 통해서도 분쟁이 해결되지 않으면 이란에 대한 유엔 제재가 복귀된다.
영·프·독 3개국은 지난 14일 공동성명을 통해 "우리는 이미 이란이 합의에 복귀하지 않으면 핵합의에 규정된 분쟁 해결 메커니즘에 따라 행동에 나설 수밖에 없다고 경고한 바 있다"며 "그럼에도 이란은 핵 합의 준수를 줄여왔다. 따라서 우리로선 (제재) 메커니즘을 개시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들은 미국의 이란 핵합의 파기에 반대한다며 트럼프 행정부의 '최대 압박' 전략과 거리를 뒀다. 이들은 "우리가 원하는 것은 이란이 핵합의로 복귀하는 것"이라고 촉구했다.
국제위기그룹(ICG) 이란 핵 전문가 알리 바에즈는 "분쟁조정 절차가 시작된 것은 미국과 이란 사이 중재역으로서의 유럽의 영향력을 축소시킬 수 있으며, 이란에 경제적 압박을 강화하기가 더 힘들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미군 무인기에 의한 가셈 솔레이마니 혁명수비대(IRGC) 쿠드스군 사령관 사망 이후 이란은 핵합의에서 정한 우라늄 농축 능력과 농도에 제한을 준수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히며 사실상 탈퇴를 선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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