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트릭 리드, 4주전 벌타 악몽 프레지던츠컵 이어 미국PGA투어 대회에서도 재현
센트리 토너먼트 오브 챔피언스 연장전에서 한 갤러리가 '사기꾼' 외쳐도 자업자득
강성훈·김아림 사례도 타산지석…볼 움직였을 때 정직한 처리 안하면 낭패당할 수도
[뉴스핌] 김경수 골프 전문기자 = 패트릭 리드(30·미국)가 한 번의 실수로 오랫동안 '속임수를 쓰는 골퍼'라는 오명을 달고다녀야 할 듯하다.
리드가 본보기가 됐지만, 이제 골프 규칙을 터문없게 위반하거나 양심을 지키지 않으면 골프계에서 살아남지 못할 지도 모른다. 남아 있더라도, 달갑지 않은 꼬리표는 계속 붙어다닐 것으로 보인다.
리드는 지난달 바하마에서 열린 미국PGA투어 이벤트대회 히어로 월드 챌린지 3라운드 때 일반구역(웨이스트 에어리어)에 멈춘 볼에 연습스윙을 하면서 볼 뒤의 모래를 치기 좋게 제거했다. 경기위원이 "모래를 제거해 스트로크에 영향을 미치는 상태를 개선했다"(골프 규칙 8.1a)며 2벌타를 부과하자 리드는 처음에 "카메라 앵글이 달라서 그렇게 보였을 뿐 고의로 라이를 개선하지 않았다"고 발뺌했다. 녹화테입을 돌려본 후 그의 잘못이 명백히 드러나고, 많은 사람들이 그의 규칙 위반을 지적하자 그제서야 수긍하는 태도를 보여 비난받았다.
패트릭 리드의 눈초리와 표정이 매섭다. 5일(현지시간) 열린 미국PGA투어 센트리 토너먼트 오브 챔피언스 연장전에서 그가 퍼트한 후 한 갤러리가 '치터'(사기꾼)라고 외친데 대한 리드의 순간적 반응이다. [사진=골프채널] |
그는 그 다음주 호주에서 열린 프레지던츠컵(미국-인터내셔널 남자프로골프단체전)에 미국팀 일원으로 나갔다. 인터내셔널팀을 응원하는 갤러리들은 리드의 비양심적인 규칙 위반 건을 물고늘어졌다. 급기야 대회 사흘째에는 리드의 캐디가 갤러리와 맞붙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조직위원회는 리드의 캐디를 마지막날 출전정지시켰다.
그러고 나서 3주가 흐른 5일(현지시간) 하와이 마우이섬 카팔루아리조트의 플랜테이션코스 18번홀(파5). 미국PGA투어 2020년 첫 대회인 센트리 토너먼트 오브 챔피언스는 세 명 연장전을 벌였다. 저스틴 토마스, 잔더 쇼플리, 리드가 그 주인공인데, 다 프레지던츠컵 미국팀 대표로 나선 선수들이었다.
쇼플리가 연장 첫 홀에서 탈락하고, 토마스와 리드가 그 홀에서 치러진 연장 세 번째 홀 경기를 벌이는 참이었다. 토마스는 세 번째 샷을 홀아래 1m 지점에 붙여놓았고, 리드는 2.4m거리 버디 퍼트를 남겼다. 리드가 퍼트를 한 볼이 홀앞 약 60cm에 다다를 즈음에 한 갤러리가 '치터'(cheater)라고 외쳤다. 리드는 표독한 눈초리로 갤러리 스탠드쪽을 노려봤다. 그 버디 퍼트도 홀을 1.2m나 지나쳐 버렸다. 결국 토마스가 버디 퍼트를 넣어 연장전은 끝이 났다.
리드는 다른 나라도 아닌, 미국 대회에 출전해서도 '사기꾼' 소리를 들어야 했다. 더욱 연장전에서 져 공동 2위에 그쳤으니 그가 받은 스트레스는 곱절이 됐을 법하다.
리드는 2018년 마스터스 골프 토너먼트에서 우승했지만, 그의 행실이 탐탁지 않아 동료선수들은 곁을 주지 않았고 갤러리들한테서도 큰 인기를 끌지 못했다. 그러던 차에 터무니없는 구실로 세계골프계를 떠들썩하게 했으니, 이는 그의 골프 인생에 '낙인'이 될 듯하다.
모래는 퍼팅그린이나 티잉구역 이외 지역에서, 스트로크에 영향을 미치는 상태를 개선하게 될 경우, 제거하거나 누를 수 없다. 리드가 이것을 모르고 연습스윙을 했을 리는 없다. 리드는 규칙에 관한한 똑소리날만큼 잘 아는 선수 축에 든다.
이번 센트리 토너먼트 오브 챔피언스 2라운드 15번홀(파5·길이546야드)에서 그의 두 번째 샷이 깊은 러프에 들어갔다. 자원봉사자들이 함께 나선 덕에 볼을 찾을 수 있었다. 리드는 "자원봉사자가 볼을 찾던 도중 풀을 건드려 내 볼이 더 밑으로 내려갔으니 원위치시켜달라"고 말해 결국 그 요구를 관철했다. 볼이 수평 뿐 아니라 상하로 위치가 바뀌어도 움직인 것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어필이었다.
4라운드 때에도 같은 홀에서 그의 규칙 지식을 가늠할 수 있는 일이 있었다. 이날은 지면이 축축해 로컬룰 '프리퍼드 라이'(E-3)가 적용됐다. 볼이 페어웨이 잔디 길이와 같거나 그보다 짧은 일반구역에 떨어질 경우 '마크하고 집어올려 닦은 후 한 클럽 길이내에 놓고 치는' 로컬룰이다.
그의 두 번째 샷이 프린지에 멈췄다. 그린 가장자리까지 거리는 약 1.8m다. 그 상태에서 퍼터로 치면 적지않은 거리의 프린지를 통과해야 하므로 거리 조절이 만만치 않아보였다. 프린지에는 스프링클러 덮개도 있었다.
여기에서 그의 '영악한' 머리가 돌아갔다. 프린지는 프리퍼드 라이 적용지역이라는 것을 간파한 그는 일단 로컬룰에 의한 구제를 받되 스프링클러 덮개 옆에 볼을 플레이스하기로 했다. 그러고 나서, 이제는 스프링클러 덮개(움직일 수 없는 장해물)에 의한 구제를 받겠다고 경기위원에게 얘기했다. 물론 경기위원은 그러라고 했다.
스프링클러 덮개로부터 한 클럽(드라이버) 길이를 최대한 이용해 구제구역 끝부분에 드롭하니, 볼은 그린 가장자리에서 약 5cm 지점에 정지했다. 원래 위치보다 퍼터로 처리하는데 훨씬 수월해진 것은 두 말할 나위가 없었다. 리드는 그 홀에서 이날 여섯 번째 버디를 기록하며 연장에 들어갈 수 있는 발판을 놓았다.
리드와는 상황이 다르지만, 강성훈과 김아림도 규칙 논란에 휘말려 가슴앓이를 한 사례다.
2018년 7월1일 끝난 미국PGA투어 퀴큰론스내셔널은 상위 네 명에게 그 3주 후 열리는 브리티시오픈 출전권을 줬다. 4라운드 10번홀(길이 560야드)에서 2온을 노린 강성훈의 두번째 샷이 그린앞 물(당시 래터럴 워터해저드, 현재 빨간 페널티구역)에 빠졌다. 강성훈은 "볼이 해저드밖 그린쪽 지면에 먼저 맞은 후 뒤로 굴러 물에 빠졌다"고 주장했고, 마커 조엘 데이먼은 "볼이 다이렉트로 물에 들어갔다"고 우겼다.
명확한 증거가 없어서 경기위원은 강성훈의 말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1벌타 후 물 건너 그린쪽에 드롭한 강성훈은 그 홀에서 파를 했고, 단독 3위를 차지하며 디 오픈에 나갈 수 있었다. 그러나 데이먼은 그 후로도 "속임수를 썼다"며 줄기차게 강성훈을 물고늘어졌고, 이 논란은 동료선수들도 다 아는 일이 돼버렸다.
지난해 KLPGA투어 하나금융챔피언십에서 나온 벙커 해프닝도 당사자들에게는 두고두고 '주홍글씨'가 될 듯하다.
벙커내 급경사면에 아주 깊게 박힌 볼을 확인한 후 리플레이스하는 과정에서 경기위원이 "반만 묻고 쳐라"고 말해 그대로 했을 뿐인 김아림에게는 1차적인 잘못이 없다. '볼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모래를 움직였을 경우 반드시 모래에 놓여있던 원래의 라이를 다시 만들어놓아야 한다'는 기본적인 규칙을 몰랐거나 모른체 한 것밖에 없다. 그런데도 팬들은 오심을 한 경기위원보다는 선수의 행동을 더 나쁘게 바라본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그렇게 했다'고 지레짐작해버리는 것이다.
앞으로 코스에 놓인 볼이 움직인 것과 관련해서도 유사한 사례가 나올 수 있다.
경사지에 멈춘 볼이 선수가 다가가자 움직이는 일이 잦다. 바람없는 날에, 선수가 연습스윙을 하거나 클럽을 볼 뒤에 갖다 댄 후에 볼이 움직였다면 그것은 선수가 움직인 것으로 봐야 한다. 그러나 당사자는 한사코 "내가 움직인 원인을 제공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자신이 움직였다고 하면 1벌타가 따르기 때문이다. 경기위원은 선수의 말을 믿고(자연의 힘이 움직인 것으로 간주하고) 벌타없이 볼이 멈춘 곳에서 플레이를 속개하라고 판정한다.
그런데 나중에 녹화테입을 돌려보니 선수가 볼을 움직인 원인을 제공한 것이 사실상 확실하다. 이 경우 선수에게는 2벌타가 부과된다. 선수가 경기위원에게 잘못된 정보를 제공해 잘못된 재정으로 유도했기 때문에 움직인 볼을 리플레이스하지 않은데 대한 페널티가 내려진다. 정직하지 않았다가 낭패당한 케이스라 할만하다.
지금은 매체가 많아져서 선수들의 일거일동이 낱낱이 드러난다. '아무도 안 보겠지!'라고 생각하고 엉뚱한 행동을 하면 그것으로 선수 생명이 끝날 수 있다.
골프의 근간이라 할 양심이 요즘처럼 강조된 적은 없다. ksmk7543@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