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리고 위협하고...공권력 도전 하루 30번
부상당한 경찰관 하루에 1명 발생
가해자는 벌금형 혹은 집행유예
"엄정한 법 집행 없이 온정적 관점 한계"
[서울=뉴스핌] 이학준 기자 = 술에 취해 경찰관의 뺨을 때린 60대 남성이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경찰 공권력이 도전을 받는 상황이지만 가해자들에 대한 처벌은 대부분 벌금형이나 집행유예에 그치면서 공권력 경시 풍조의 주요 원인이 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서울남부지법 형사7단독 이재경 판사는 경찰관을 폭행해 공무집행방해 혐의로 기소된 박모(61) 씨에게 징역 4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했다고 9일 밝혔다.
서울남부지법 / 뉴스핌DB |
◆ 욕설에 폭행해도 벌금 혹은 집행유예 불과
박씨는 8월 18일 서울 구로구 경인로 인근에서 택시 기사와 요금 문제로 말다툼을 벌이고 있었다. 서울 구로경찰서 소속 정모(34) 경장은 112 신고를 받고 출동했고 박씨를 제지했다.
그러자 박씨는 "나한테 한 대 맞아볼래"라는 등 욕설을 퍼부으며 손바닥으로 정 경장의 얼굴을 가격했다.
법정에서 박씨는 당시 술에 취해 있어 심신장애 상태였다고 항변했지만 재판부는 "범행 당시 의사를 결정할 능력이 상실되거나 미약한 상태에까지 이르렀던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다만 재판부는 "공무집행방해죄는 국가의 법질서 기능을 저해하는 범죄로서 엄중한 처벌이 필요하다"면서도 박씨가 반성하고 있는 점, 경미한 벌금형 외 별다른 범죄전력이 없는 점 등을 양형요소로 참작해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정 경장 사례처럼 공무집행 중 주취자 등으로부터 폭행을 당하거나 위협을 받는 경찰관은 비일비재하다.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공무집행방해·특수공무집행방해·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 등 혐의로 검거된 인원은 1만818명이다. 한 달에 901번, 하루에 30번씩 공권력이 도전받고 있는 셈이다.
경찰 로고. [뉴스핌DB] |
이로 인해 부상을 당하는 경찰관은 하루에 1명꼴로 나온다. 지난해 범인피습에 의해 공무 중 부상(공상)을 당한 경찰관은 503명으로 전체 공상 경찰관 1633명 중 30.8%를 차지했다.
◆ 과잉진압 논란에 법원 관대한 태도까지 겹쳐 공권력 약화
현행법상 공무집행을 방해하면 5년 이하 징역이나 1000만원 이하 벌금형에 처해질 수 있다. 하지만 가해자 대부분은 벌금형이나 집행유예 선고를 받고 있는 상황이다.
대법원에 따르면 지난해 공무집행방해·특수공무집행방해·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 등 혐의로 1심 판결을 받은 인원은 8808명이었다. 이중 징역형 선고는 1214명(14%)에 그쳤다. 집행유예가 4194명(48%)로 가장 많았고, 벌금 납부 등 재산형 선고는 3006명(34%)으로 뒤를 이었다.
[사진 게티이미지뱅크] |
미국은 경찰관을 포함한 공무원의 공무를 방해할 경우 징역 5년 이하 혹은 5000달러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진다. 한국과 비교해 법정형에는 큰 차이가 없으나 미국은 집행 자체를 엄격하게 한다. 특히 상해와 폭행 등 행위가 있다면 구속수사가 원칙이다.
경찰관 명령에 불응하거나 허락 없이 차에서 내리는 행위, 주머니에 손을 넣는 행위, 문을 열어주지 않는 행위도 공무집행방해로 판단해 단호히 대응한다. 영국은 경찰관의 공무집행을 방해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즉결심판으로 처리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경찰을 폭행할 경우 기본 3개월, 최대 7개월까지 구금이 가능하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은 보고서를 통해 "공권력에 대한 경시 풍조 배경에는 인권과 기본권을 너무 강조한 나머지 법을 집행할 수 있는 공권력의 권한 약화와 공무집행방해 사범에 대한 법원의 관대한 태도 등을 들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법집행 공무원에 대한 공무집행방해나 무고 등 범죄에 대해 단호하고 엄정한 법집행 없이 단지 온정적 관점으로만 대처하는 것은 한계에 도달했다고 볼 수 있다"고 강조했다.
hakjun@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