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것은 지나가고 새것이 되어라, 얍!”
◇원 테이블 식당/유니게 지음/문학과지성사 /1만1000원
[서울=뉴스핌] 정태선 기자=어려움에 처한 친구가 오직 나에게만 의지해 삶을 버텨내고 있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나 역시 미래가 불안하고, 성장 과정에 있는 청소년이라면 어떻게 해야 할까? 유니게 작가의 장편소설 '원 테이블 식당'은 그런 입장에 놓인 소녀의 갈등 상황을 감동적으로 그려낸 작품이다.
진정한 가족의 의미에 대해 묻고 있는 '우리는 가족일까'와 절망의 순간에 만난 ‘그 애’를 통해 정체성을 찾아가는 '그 애를 만나다' 이후 세번째 성장소설. 그간 작가가 천착해온 인간과 삶의 깊이에 대한 성찰이 돌올하면서도 입체감이 더했다는 평을 받는다.
'원 테이블 식당'은 엄마 아빠를 동시에 잃고 ‘종이 인형’처럼 반수면 상태에 빠진 친구를 홀로 내버려 둘 수 없는 소녀의 심리를 찬찬히 따라간다. 게다가 그 친구의 엄마가 모성의 결핍을 대리로 충족시켜주던 존재이고 보면, 주인공의 갈등과 고민은 예견되고도 남을 터.
‘나’(홍세영)는 아줌마와의 추억이 깃든 ‘원 테이블 식당’에서 만들어지던 요리들의 레시피를 재현하자는 의견을 내고, 친구(김희수)는 그제야 생기를 되찾는다. 그러나 열여섯에서 열여덟 살 나이는 과거에만 침잠해 살아갈 수 없는 때. 새로 사귄 친구들과 미래를 위한 열망 앞에서 나는 희수가 부담스럽기만 하고, 그 때문에 죄책감에 짓눌려 지낼 수밖에 없다.
우선 '원 테이블 식당'은 ‘착한 아이 콤플렉스 극복기’로 읽힌다. ‘착한 아이 콤플렉스(good boy syndrome)’란 “타인으로부터 착한 아이라는 반응을 듣기 위해 내면의 욕구나 소망을 억압하는 말과 행동을 반복하는 심리적 콤플렉스”를 뜻한다.
아직 청소년인 깜냥으로는 힘에 겨운 이 역할에 사로잡힌 주인공은 고군분투하는데, 아이러니하게도 그 콤플렉스를 벗어나는 순간이 껍질을 깨고 나오는 계기가 된다. 그간 ‘착한 아이 되기’를 중요한 교훈으로 여겨온 세태로 보자면 성장소설의 숨은 영역 하나를 제대로 짚어낸 셈이기도 하다.
그래서 작가는 "아이들에게는 어른이 필요하고, 인간에게는 신이 필요했다."고 얘기한다. 아무려나 주인공인 나의 방황은 아름다운 성장의 중요한 지점들이다. 홀로된 친구의 잠을 깨우기 위해 애쓰는 우정이 그렇고, 스스로 죄책감에 얽매이는 순수함이 그렇고, 그 틀을 과감히 깨고 나오는 용기가 그렇다. 여기에는 가장 아픈 상처를 받아들이고 “다시는 주저앉지 않겠다”라고 약속을 하는 희수의 성장과 비로소 자책에서 벗어나 “나무로 자라날 시간”을 준비하는 김시현의 성장도 함께한다. 떠 '원 테이블 식당'은 ‘남을 돕는 일의 어려움’에 대한 탐구다. 남을 돕는 일에도 한계를 그어야 할 때가 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가 하면 '원 테이블 식당'은 이미 어른인 ‘엄마의 성장소설’로도 읽힌다. 충분한 모성을 베풀지 못했다는 자괴감에 빠져 있던 커리어 우먼 엄마가 열여덟 살 딸아이의 “서툰” 엄마로 다시 태어나는 모습은 감동의 켜를 더한다. 나를 대신해 희수의 병실을 지켜주는 모습이나 제자리에서 묵묵히 최선을 다하다가 뒤늦게야 오래된 부채 의식을 덜어내는 엄마의 모습은 성장소설의 또 다른 영역을 보여준다.
가볍지 않은 주제에도 불구하고 경쾌하게 읽힌다. 자극적이지 않지만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문장과 장면들. 엄마가 차려준 ‘집밥’처럼 부담 없는 맛이면서도 꼭꼭 씹고 있자면 목 안에서 눈물의 짠맛이 느껴지는 그런 맛이다. 어느 순간 가볍게 울컥하는 맛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