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2일, 정기국회 개회
문 의장, 여야에 쓴소리
[서울=뉴스핌] 이지현 기자 = 문희상 국회의장이 여야간 극한 대립으로 얼룩진 20대 국회에 쓴 소리를 남겼다. 온갖 사안마다 대립과 혼란으로 출구가 보이지 않는 20대 국회에 대한 답답함을 토로했다.
문 의장은 그러면서도 촛불민심의 제도화를 완성하지 못한 가장 큰 책임은 국회에 있으며, 이에 대해 책임을 통감한다고도 강조했다. 또한 '90년생이 온다' 책을 거론하며 지금 청년 세대가 '공정'의 가치에 주목하고 있는 현실에서 정치권은 이를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문 의장은 2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제 371회 정기회 개회사에서 "6선의 국회의원을 하면서 지금처럼 무력감과 자괴감을 느낀 일은 흔치 않았다"면서 "도대체 우리 국회는 무엇을 하자는 것인지 답답할 뿐"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지금 우리 국회는 사안마다 현안마다 온갖 대립과 혼란으로 출구가 보이지 않는다"며 "마지막 정기국회가 더욱 극렬한 대치와 정쟁으로 얼룩질 것이라는 불안함을 감출 수 없다. 3년 3개월의 임기를 보낸 지금 시점에서 어떤 성과를 근거로 다시 일할 기회를 달라고 할 것이냐"고 지적했다.
문 의장은 그러면서 촛불 민심을 완성하지 못한 국회의 책임을 통감했다.
그는 "촛불혁명 직후 정부와 20대 국회에는 촛불 민심을 제도화 할 수 있는 동력과 힘이 있었지만, 우리는 그 기회를 놓쳤고 개헌도 개혁입법도 아무것도 이루지 못했다"고 말했다.
문 의장은 "국민은 어느 특정세력의 집권을 바란 것이 아니라 촛불혁명을 계기로 한국사회의 시스템 전반에 대한 대전환을 요구했다"며 "그런데도 진영논리와 이분법의 시각으로 촛불정신을 전유물인양 독점하려거나 혹은 부정하며 배격하려 한다면 크나큰 오판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문 의장은 또한 청와대는 청와대답게, 여당은 여당답게, 야당은 야당답게 본분을 다해야 한다며, 지금 청년 세대의 외침을 정치권이 외면해서는 안 된다고 거듭 호소했다.
그는 그러면서 특히 외교안보 분야에 있어서는 여야가 있을 수 없다며, 국가와 민족을 위해 초당적 외교를 하고 국민 통합의 기초를 국회가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울=뉴스핌] 이형석 기자 = 문희상 국회의장이 12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접견실에서 취임 1주년을 맞아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 2019.07.12 leehs@newspim.com |
다음은 문희상 국회의장의 정기국회 개회사 전문이다.
대한민국은 기회와 위기의 갈림길, 국민통합으로 혼신의 힘을 다해 위기를 극복합시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국회의원 여러분!
김명수 대법원장, 유남석 헌법재판소장, 이낙연 국무총리, 최재형 감사원장, 그리고 국무위원 여러분!
오늘은 제20대 국회의 마지막 정기국회가 시작되는 날입니다. 먼저 국내외로 어려움이 깊어가는 시기에 지쳐있을 국민 여러분께 깊은 위로의 말씀을 드립니다.
◆20대 국회, 다시 일할 기회 달라고 할 수 있겠나
저는 오늘 마지막 정기국회의 개회사를 준비하며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현재 국회는 여야의 끊임없는 대립과 갈등이 지속되는 매우 어려운 정국입니다. 그렇더라도 이번 정기국회를 통해 앞으로는 잘될 것이라는 희망을 말씀드리고 싶었습니다. 그동안 민생을 돌보는데 많이 부족했지만, 마지막 정기국회에서는 최선을 다해 잘해보겠다고 말씀드리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정치가 실종되고 국민의 신뢰가 무너진 상황에서 희망을 얘기하는 것이 공허한 것도 사실입니다.
6선의 국회의원을 하면서 지금처럼 무력감과 자괴감을 느낀 일은 흔치 않았습니다. 도대체 우리 국회는 무엇을 하자는 것인지 답답할 뿐입니다.
지금 우리 국회는 사안마다 현안마다 온갖 대립과 혼란으로 출구가 보이지 않습니다. 마지막 정기국회가 더욱 극렬한 대치와 정쟁으로 얼룩질 것이라는 불안함을 감출 수 없습니다.
8개월 후 2020년 4월 15일은 제21대 국회를 구성하는 총선일입니다. 대다수의 국회의원들이 유권자에게 다시 일할 기회를 달라고 할 것입니다. 3년 3개월의 임기를 보낸 지금 시점에서 어떤 성과를 근거로 다시 일할 기회를 달라고 할 것입니까.
◆촛불민심 제도화 완성 못한 제1책임은 국회에 있어
- 대통령과 청와대, 정부도 자유로울 수 없어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국회의원 여러분!
2016년 5월 30일 임기를 시작한 제20대 국회는 국민의 선택에 따라 협치라는 희망을 품고 시작했습니다. 전반기에는 ‘비선실세에 의한 국정농단’을 심판하기 위해 대통령 탄핵을 실천했습니다. 촛불혁명을 헌법적 절차에 따라 완성했습니다. 역사적인 기록으로 남을만한 일이었다고 생각합니다. 300명의 국회의원 중에 234명이 국민의 뜻을 받들었던 ‘국민의 국회’였습니다. 현 정부 또한 얼마나 큰 국민의 기대와 희망 속에서 출범한 정부였습니까.
당연히 현 정부와 국회에는 촛불민심의 제도화를 완성해야 하는 책무가 지워졌습니다. 숙명입니다. 촛불혁명 직후 정부와 20대 국회에는 촛불민심을 제도화할 수 있는 동력과 힘이 있었습니다. 사회 전반의 시스템을 개혁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얻은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기회를 놓쳤고 개헌도 개혁입법도 아무것도 이루지 못했습니다.
제도화를 완성 못한 가장 큰 책임은 국회이며, 그 중에서도 여당과 제1야당의 책임이 우선입니다. 국회를 대표하는 저의 책임도 분명하게 통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대통령도 청와대도 정부도 그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개혁입법 제도화 절호의 기회를 정치권이 걷어차
역사적으로 우리 국민은 사회적 모순이 극에 달하고 정치 시스템이 복구 불능에 이르면 분연히 일어났습니다. 2016년 겨울, 광장의 촛불 또한 국민이 일어나 나라를 바로잡고 대한민국의 방향을 제시한 것입니다.
국민은 어느 특정세력의 집권을 바란 것이 아니라, 촛불혁명을 계기로 한국사회의 시스템 전반에 대한 대전환을 요구한 것입니다. 그런데도 진영논리와 이분법의 시각으로 촛불정신을 전유물인양 독점하려거나, 혹은 부정하며 배격하려 한다면 크나큰 오판이 될 것입니다.
정치권은 합심하여 촛불정신을 제도화하고 완성하는데 온힘을 다했어야 합니다. 제도화는 입법으로 실현됩니다. 청와대는 급선무로 국회의 손을 잡고 나섰어야 합니다. 여당은 포용의 정치로 야당을 아울러서 함께 갔어야 합니다. ‘촛불혁명 이전에 구성된 국회’라서 개혁입법을 못했다고 말할 게 아니라, 오히려 ‘234명이 동참해 탄핵을 의결한 국회’였다는 것에 주목했어야 합니다. 야당은 반대를 위한 반대가 아니라, 개혁입법에 협조하며 새로운 기치를 세웠어야 합니다.
개혁의 제도화는 정부여당과 야당 모두가 실천했어야 할 국민에 대한 마땅한 도리였습니다. 그러나 현 정부가 출범한 지 2년여의 시간이 지나는 동안 정치는 실종위기에 처했습니다. 촛불민심의 요청에 아무도 답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절호의 기회를 정치권 모두가 합작해서 걷어찬 것이나 다름없다고 생각합니다. 매우 안타깝고 개탄스러운 대목이 아닐 수 없습니다.
◆靑靑與與野野, 국민통합으로 나아갈 때 ‘나라다운 나라’ 완성할 수 있어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국회의원 여러분!
‘靑靑與與野野, 청와대는 청와대다워야 하고, 여당은 여당다워야 하며, 야당은 야당다워야 합니다.’ 이 말은 야당 대표시절부터 줄곧 해왔던 말입니다. 여당 출신의 국회의장이 되었다고 해서 저의 입장은 결코 변하지 않습니다.
여당은 국회의 첫 번째 구성요소입니다. 국회의 일원으로 당당하게 청와대를 비판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여당이 청와대의 거수기 소리를 듣는다면 삼권분립이라는 시스템이 무너지고, 이는 국가 기강이 무너지는 결과를 초래합니다. 또한 가난한 집의 맏형처럼 양보하고 독려하며 야당을 안고 가는 모습을 보여야 합니다. 그것이 여당다운 여당입니다.
야당의 제1책무는 비판과 견제에 있습니다. 이를 소홀히 하면 존재감을 잃게 됩니다. 또한 강력한 야당의 존재는 대통령과 여당에게도 꼭 필요한 것입니다. 견제 받지 않는 권력은 스스로 주체하지 못하고 실패의 길을 걷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야당의 비판과 견제는 반대를 위한 반대가 아니어야 합니다. 발목잡기가 아니어야 합니다. 정부여당이 잘할 때는 시원하게 칭찬하고 국익을 위해서는 힘을 합쳐야 합니다. 대안세력으로서 비전을 제시해야 합니다. 그것이 야당다운 야당의 모습입니다.
대통령과 청와대는 현 헌법체제하에서 모든 가치의 총화이자, 국정의 최종 결정권자이며 최고책임자입니다. 지금 이 시점에서 대한민국이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은 국민통합입니다. 국민의 저력과 국력을 한데 모으는 통합능력이 민주적 리더십의 기본이며, 국가경영의 원동력입니다. 국민과 소통하고, 야당과 소통하고 그 후에 여당과 소통하며 국민통합을 제1의 목표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 청와대와 여야, 국회가 그 본분을 다하며 국민통합으로 나아갈 때 비로소 ‘나라다운 나라’를 완성할 수 있다는 것을 가슴 깊이 새겨야 하겠습니다.
◆청년세대가 추구하는 가치가 대한민국의 핵심가치
- 지도자, 責人恕己의 우를 범하지 않도록 성찰해야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국회의원 여러분!
한국사회가 진화하고 발전하는데 있어서, 시대를 꿰뚫는 핵심가치는 늘 존재했습니다. 전쟁의 폐허를 딛고 일어서기 위해서 근면성실이 최고의 가치였던 시대가 있었습니다. 독재에 맞섰던 자유의 가치, 군사정권에 맞섰던 민주의 가치가 한 시대의 핵심가치였습니다.
우리 국민은 시대마다 핵심가치를 획득했고 이를 통해 산업화, 민주화, 선진화를 이루어냈습니다. 그 과정이 쌓이며 대한민국은 놀라운 발전을 거듭해왔습니다.
현재 베스트셀러인 ‘90년생이 온다’의 지은이는 지금 우리 청년세대가 주목하는 가치가 ‘공정’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촛불정신’이 제시한 방향이기도 합니다. 한국사회에서 청년들이 공유하고 추구하는 가치는 매우 무겁고 중요하게 받아들여져야 합니다. 이는 지금 당장, 아니면 머지않은 시기에 우리 대한민국의 핵심가치가 ‘공정’이 된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2030세대는 부당함을 참지 않고 저항하며, 정의와 공정의 가치에 대해 끊임없이 묻고 확인하고 분노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이러한 의문과 요구는 더욱 거세질 것입니다. 기성세대, 특히 정치권은 이 물음에 언제든지 답할 준비를 해야 합니다. ‘공정’에 대한 감수성을 최대한 곤두세우지 않으면 도태 된다는 위기의식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중국 북송시대의 명신, 범순인(范純仁)은 ‘책인서기(責人恕己), 비록 어리석은 사람도 남을 꾸짖음에는 밝고 비록 총명한 사람도 자신을 용서함에는 어두우니, 남을 꾸짖는 마음으로 자신을 꾸짖고 자신을 용서하는 마음으로 남을 용서하라’고 했습니다. (人雖至愚 責人則明 雖有聰明 恕己則昏, 責人之心責己 恕己之心恕人). 대인춘풍 지기추상(待人春風 持己秋霜)과 일맥상통하는 말입니다. 여야를 통틀어 적어도 지도자를 꿈꾸는 사람이라면 ‘책인서기’의 우를 범하지 않도록 주위를 돌아보고 성찰해야 하겠습니다.
◆외교안보에 여야가 따로 있을 수 없어
- 국가와 민족의 미래 내다보는 초당외교 기대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국회의원 여러분!
앞서 말씀드린 대로 오늘은 제20대 국회의 마지막 정기국회가 시작되는 날입니다. 국민에게 다시 일할 기회를 달라고 성과를 통해 호소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입니다. 저에게는 정치인생 마지막 정기국회이기도 합니다. 감회가 남다르지만 사사로운 감상에 젖을 여력조차 없습니다.
밀려있는 계류 법안이 1만 5천여 건에 달하고 있습니다. 양극화가 심화되고 저성장은 일상화되어 민생의 고통이 가중되고 있습니다. 내년 한해 국민이 먹고 살아야할 예산심사는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습니다. 밖으로는 당장 아베 내각의 경제보복에 대처하기 위해서 전력을 다해 국론을 모아야 할 절체절명의 시기입니다.
여러분, 외교안보에 있어서만큼은 여야가 따로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아시겠지만 여소야대였던 제6공화국 시절, 당시 정부여당은 북방정책을 추진했습니다. 이는 현 정부의 新북방정책, 한반도 新경제지도 구상과도 맞닿아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시기 제1야당의 김대중 총재는 ‘초당외교’ 방침을 천명했습니다. 야당대표임에도 불구하고 북방정책에 대한 국제사회의 협력을 도모하고자 유럽순방에 나서는 등 적극 지원했습니다. 국가와 민족의 미래를 내다본 통찰력과 혜안이 아닐 수 없습니다. 여야의 초당적이고 일치된 모습은 한국외교가 한 단계 도약하는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고 생각합니다.
◆국민통합으로 위기 극복에 혼신의 힘을 다합시다
존경하는 제20대 국회, 국회의원 여러분!
지금 대한민국은 그 어느 시기보다 엄중한 순간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한반도를 둘러싼 외교안보적 상황이 위기감을 쌓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극즉반(極則反), 극에 달하면 반전하게 된다고 했습니다. 지금의 위기는 반대로 국민의 저력을 모으고, 대한민국의 힘을 보여줄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대한민국은 기회와 위기의 갈림길에 섰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있습니다.
제20대 국회 마지막 정기국회를 통해 이 국면을 뚫고 위기를 극복합시다. 국론을 모아 국민통합으로 대한민국이 한 단계 도약할 수 있는 길을 터주기를 기대합니다. 마지막 정기국회에 혼신의 힘을 다해주시기를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jhlee@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