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O 협약서에 담겨야할 가장 중요한 문제가 불평등"
"ILO 핵심협약 비준 늦어지면서 국제적 수세에 몰려"
"최저임금 보완대책 마련…입장 밝히긴 조심스러워"
[세종=뉴스핌] 정성훈 기자 = 한국의 노동분야 중 ‘양성평등·산업안전·비정규직 보호’가 최대 약점으로 손꼽혔다. 이는 국제노동기구(ILO) 100주년 총회를 위해 13일(현지시간) 스위스 제네바 현지로 나가 있는 이상헌 ILO 고용정책국장의 소견이다.
이상헌 국장은 고용노동부 출입기자단과의 인터뷰를 통해 “한국의 경제수준, 국민 의식, 사회적 발전 등 전체적으로 고려해 상대적으로 좀 처진 분야가 양성평등, 산업안전, 노동자 보호 등 3가지를 꼽을 수 있다”고 언급했다.
먼저 양성평등 분야와 관련해서는 “최근 많은 노력과 논의가 있지만 적어도 지표상으로는 아주 갈길이 멀다”며 “(양성평등 관련) 정책을 좀 더 과감히 추진해야 하지 않나 생각된다”고 말했다.
[서울=뉴스핌] 정일구 기자 = 이상헌 국제노동기구(ILO) 고용정책국장이 7일 오후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 국제회의장에서 열린 'ILO 일의 미래 보고서' 노사정 포럼에서 발제를 하고 있다. 2019.03.07 mironj19@newspim.com |
산업안전과 관련해서는 “사실 한국인이지만 산업안전 문제만 나오면 부끄럽다. 동료들이 왜 그러냐고 자꾸 물어보는데 부끄러울 정도로 산재사망률이 너무 높다”며 “산업안전 관련 사고 빈도수도 높을 뿐 아니라 사망률이 특히 높은 만큼, 치명적인 게 많다”고 설명했다.
비정규직 보호와 관련해서는 “노동자의 목소리를 경청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국장은 “기본적으로 비정규직이나 취약계층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제도적 장치나 지원이 부족하다. 이런 것들에 좀 더 우선순위를 둬야 하지 않을까 싶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비정규직을 보호하자는데 노사, 정부 할 것 없이 다들 공감하면서도 왜 이분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장치를 안 만드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는 또 “이번 ILO 협약서에 담겨야할 가장 중요한 게 불평등”이라고 밝혔다.
이상헌 국장은 “한국 노동시장의 불평등은 노동시장 문제가 아니라 경제정책의 문제라고 생각한다”며 “노동시장 불평등을 다루려면 경제, 거시정책, 산업정책 등이 전향적으로 바꿔야 노동시장 개혁에 숨통이 트일 것”이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정부가 ILO 핵심협약 비준안을 국회 제출하는 안과 노동법 개정을 통한 정식 절차를 밟는 투트랙 전략 과정에 대해 “방법론의 문제”라고 표했다.
이 국장은 “사실 노동계든 정부든 어떤 식이로든 협약 비준을 위해 관련법 개정이 어느 정도 필요하다는 데는 이미 공감대가 있는데, 개정을 어떤 식으로 하냐가 문제”라며 “이에 대해서는 정부나 노동계에서 고려하는 요소가 조금씩 다른 것 같다”고 말했다.
같은 요소라도 정치적 판단이 조금씩 다른 것 같은데 ILO 입장에선 국내에서 정치적 과정을 통해 판단할 방법론적 문제지 이게 옳다, 저게 옳다 이야기하기는 좀 힘들다는 게 이 국장의 생각이다.
다만 “올해 ILO 총회 100주년을 기념으로 모든 회원국가가 최소한 한 개 이상 협약을 비준하자는 것이 기본 캠페인이기 때문에 가능하면 올해 한두 개라도 협약을 비준하고, 가능하면 빨리 핵심협약을 비준하는 게 저희로서는 환영할 일 아닐까 싶다”고 설명했다.
현재 유엔(UN) 산하기구인 ILO는 결사의 자유·강제노동 금지·아동노동 금지·차별 금지에 관한 8개 협약을 노동권 보장을 위해 기본적인 핵심협약로 분류하는 등 회원국에 비준을 촉구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결사의 자유(제87호·제98호)와 강제노동 금지(제29호·제105호)에 관한 4개 핵심협약 비준을 미루고 있다. 정부는 이중 강제노동 제105호를 제외한 3개 협약에 대해 올 가을 정기국회에서 비준 절차를 밟을 계획이다.
정부의 ILO 핵심협약 비준이 늦어지는 등 협약 후진국으로 지목될 수 있는 우려에 대해 “한국이 국제노동외교에서 직면한 가장 큰 숙제가 아닐까 싶다”면서 “비준빈도나 횟수, 그런 것 때문에 한국이 국제노동문제에서 수세적 입장에 놓여있다”고 분석했다.
이어 “약간 과도기란 느낌도 든다. 이번 정부에서 덜하긴 하지만 아직은 한국이 낡은 주장에 의지해 수세적 입장을 계속 수호하려고 하는데 대표적인 게 한국의 특수성”이라며 “그 특수성이 70년대 정도면 많이 인식되지만 지금의 한국 상황에서는 이런 주장을 하기는 어렵다”고 강조했다.
무엇보다 “한국이 아직 개도국이란 생각인데 경제 규모 10위권 국가가 아직까지 개도국이라고 이야기하기가 곤란하다”며 “예전에는 이런 게 가장 큰 논리였는데 이제 국제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정도가 예전보다 훨씬 낮은 상태라서 좀 전향적으로 생각해봐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국내 최저임금 정책과 관련해서는 “알맹이가 빠졌다”고 꼬집었다. 이상헌 국장은 “단계적으로 한국의 최저임금 논의도 많이 되고 최저임금 인상 시 어느 정도 영향이 있을 것으로는 대부분 예상했던 일”이라며 “문제는 최저임금만 앞서고 나머지 산업구조 정책이나 경제 정책은 빠져있는 것인데 이 때문에 최저임금만 홀로 외롭게 앞서고 있는 측면이 있다”고 내다봤다.
최근 2년간 오른 최저임금 인상에 대해서는 “상황을 폭넓게 봐야하는데 속도가 빨랐다고 했을 때는 상대적으로 뭔가 기준이 있어야 하는데 정상적인 인상속도에 대해선 아무도 정확히 얘기하지 않는다”며 “최저임금 인상 시 그에 걸맞은 보완대책이 빨리 따라붙었다면 하는 인상이 든다”고 답했다.
더불어 “중요한건 최저임금 속도가 빨랐다고 판단한건 전제했던 여러 보조정책이 없는 상황에서 최저임금만 노출됐기 때문”이라며 “때문에 최저임금 속도가 빨랐다고 이야기하기엔 사실 좀 조심스럽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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