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화재원인 25% 전기적 요인…노후 전선 영향 커
산불 발화지점 전선, 설치 13년…강원 산지 전선 수명은 10년
전선 교체 등 관련 규정 없어…한전 "상시적 점검 통해 대응, 문제 없어"
[편집자주] 강원도 고성과 속초 산불로 전봇대가 여론의 도마에 올랐습니다. 아직은 추정 단계지만 노후된 전신주에서 발생한 불꽃이 산불의 발화점으로 지목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경찰 및 소방당국의 조사를 통해 이 추정이 사실로 밝혀지면 이번 산불은 ‘천재’가 아닌 ‘인재’로 규정될 공산이 큽니다. 고압전류가 흐르는 전선과 통신선이 뒤엉킨 채 방치되고 있는 우리 주변의 전봇대, 어떤 문제를 안고 있는지 뉴스핌이 들여다 봅니다.
<목차>
①노후 전선 우려 커지는데…관련 규정은 전무
②거미줄 전신주, 안전 위협하는 통신선
③전선 지중화 하면 좋은데…막대한 예산이 관건
[서울=뉴스핌] 황선중 기자 = 강원 고성에서 발생한 이번 산불의 발화지점이 전신주 개폐기 전선으로 추정되면서 노후 전선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지난해 전국에서 발생하는 화재 중 약 25%가 노후 전선을 포함한 전기적 요인에서 비롯된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전선 안전 관리에 관한 규정이 사실상 전무한 것으로 드러나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자료=소방청> |
10일 소방청에 따르면 전선 노후화는 대표적인 화재원인 중 하나로 꼽힌다. 지난해 전국에서 발생한 화재 총 4만2337건 중 전기적 요인으로 인한 화재는 1만471건(24.7%)으로 집계됐다. 이는 부주의로 인한 화재 2만352건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수치다. 누전·합선·과부하·손상 등 전기적 요인들이 모두 노후 전선 때문이라고 여길 수는 없지만 노후 전선의 영향이 상당하다는 것이 소방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일각에서는 이번 고성 산불 역시 노후화 된 전선에서 비롯된 '인재'(人災)라는 지적이 나온다. 일반적으로 전선의 수명은 환경에 따라 달라진다. 햇빛이나 수분에 노출되지 않는다면 30년까지도 사용 가능하지만 환경이 혹독한 곳에서는 10년 정도에 불과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하지만 산불 발화지점으로 추정되는 강원 고성군 토성면 원암리의 고압 전선은 지난 2006년 처음 설치된 것으로 나타났다. 혹서(酷暑·혹독한 더위)와 혹한(酷寒·혹독한 추위)으로 대표되는 강원도 산골 환경을 13년이나 겪은 셈이다.
더 큰 문제는 전신주 전선에 대한 명확한 교체 및 수리 규정이 없다는 점이다. 한 전선업계 관계자는 "(전선 교체와 관련해) 명문화 된 규정이 따로 없기 때문에 문제가 나타나면 교체하는 구조"라며 "전선 수명 등 관련 정보도 대부분 일본 논문 등을 참조해 정립한 것"이라고 말했다. 전선에 대해 전면적인 실태조사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오는 이유다.
한국전력 측은 전국 230여개 사업소를 통해 상시적으로 전선을 점검하고 있어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월 1회 이상 실시하는 육안검사와 연 1회 이상 실시하는 정밀검사 결과를 토대로 전선 교체 여부를 결정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번에 고성 산불 전선은 지난 3월 27일 안점점검을 받았고 문제가 발견되지 않았다고 한전은 전했다.
[고성=뉴스핌] 이형석 기자 = 5일 오후 고성 산불의 최초 발화지점으로 알려진 강원도 고성군 토성면 원암리에 위치한 전봇대 개폐기의 전선이 끊어져 있다. 2019.04.05 leehs@newspim.com |
한전의 정밀검사에 한계를 지적하는 목소리도 있다. 올 1월 기준 전국에 설치된 전신주의 수는 약 940만개. 전신주에 설치된 전선의 길이는 49만3331서킷킬로미터(c-km)에 달해 한전의 자체 점검만으론 부족하다는 의견이다. 심지어 도심 속 전선 주위에는 전선에 통신선까지 거미줄처럼 얽혀 있어 정밀한 점검이 더욱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실제로 한전에서 관리하는 전선 관련 점검 통계 역시 전무한 것으로 드러났다.
전문가들은 이번 산불을 계기로 보다 체계적인 전선 안전 관련 규정을 정립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한국전기안전공사 관계자는 "일반적으로 전기 관련해서는 안전공사의 검사를 받게 돼 있지만 전선 등 배전설비는 한전에서 자체적으로 점검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전선 관련 규정을 만들어 전선을 체계적으로 운영할 필요가 있다"고 꼬집었다.
sunjay@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