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석희 측 "17세 때부터 성폭력 당해" 폭로
엘리트체육 병폐 지적 목소리 높아
'파벌주의' 빙상 종목, 선수 인권 사각지대
[편집자주] 쇼트트랙 국가대표 심석희 선수가 만 17세인 2014년 이후 조재범 전 코치로부터 지속적으로 성폭행을 당했다고 법무법인 세종을 통해 폭로하면서 파장이 커지고 있습니다. 성적지상주의에 함몰돼 어린시절부터 '금메달'을 위해 감독과 코치로부터 주종관계가 당연시되는 한국엘리트체육의 단면을 드러낸다는 한탄도 나옵니다. 터질 것이 터졌다는 체육계와 사회 각계의 분위기 등 한국엘리트체육의 한계를 긴급진단해 봅니다.
[서울=뉴스핌] 구윤모 기자 = 쇼트트랙 국가대표 심석희(22·한체대)가 조재범 전 대표팀 코치로부터 상습적인 폭행도 모자라 성폭행까지 당했다고 밝히면서 국내 엘리트 체육의 병폐가 터졌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심석희 측 법률 대리인인 법무법인 세종은 지난 8일 "지난해 12월13일 심석희 선수와 심층 면담을 진행한 결과 만 17세의 미성년자였던 2014년경부터 조재범이 무차별적 폭행과 폭언, 협박 등을 수단으로 하는 성폭행 범죄를 2018 평창올림픽 직전까지 4년간 상습적으로 저질러왔다는 진술을 듣게 됐다"고 밝혔다.
이어 “선수들이 지도자들의 폭행에 너무나 쉽게 노출되어 있음에도 전혀 저항할 수 없도록 얼마나 억압받는지 등을 잘 보여주고 있다”고 덧붙였다.
특히 세종은 심석희가 조 전 코치로부터 한국체육대학교 빙상장 지도자 라커룸, 태릉 및 진천선수촌 빙상장 라커룸 등 국가가 직접 관리하는 시설에서 성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조 전 코치 측 변호인은 같은 날 언론을 통해 성폭행 혐의를 전면 부인했지만 조 전 코치를 비난하는 여론은 더욱 들끓고 있다.
이미 조 전 코치는 지난해 1월16일 훈련 중 심석희를 주먹으로 수차례 때려 전치 3주의 상처를 입히는 등 2011년부터 올해 1월까지 4명의 선수를 폭행한 혐의로 기소된 상태다.
이번 사태를 두고 일각에서는 “터질 것이 터졌다”는 반응이 지배적이다. ‘성적 지상주의’에 갇혀 정작 선수 개개인의 인권에 대한 보호책이 부족했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높다.
대한민국 체육은 프로선수가 되거나 올림픽 등 세계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내기 위한 ‘엘리트 체육’으로 대변된다.
보통 어린 시절부터 운동을 시작하는 엘리트 체육 선수들에게 지도자들이 끼치는 영향은 막대하다. 각종 대회 출전은 물론, 좋은 학교로 진학하기 위해서도 지도자들의 입김이 무척 중요하기 때문이다.
지도자와 선수가 ‘사제관계’가 아닌 ‘주종관계’로 변질될 가능성이 높은 이유다. 더욱이 은퇴가 빠른 운동선수 특성상 은퇴 이후 지도자 생활이 중요한데, 지도자의 눈밖에 날 경우 불이익을 받을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고등학교 1학년 때까지 엘리트 농구선수 생활을 했던 A(30)씨는 “어린 선수들에게 지도자는 공포의 대상이지만 동시에 잘 보여야 하는 존재”라며 “심석희 선수뿐만 아니라 여전히 많은 선수들이 지도자의 폭압에 노출돼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실력이 좋은 선수가 지도자에게 뒷돈을 안 줘서 경기에 뛰지 못한 경우도 흔한 일”이라며 “이런 환경에서 어떻게 선수가 지도자에게 순응하지 않을 수 있겠나”라며 대한민국 엘리트 체육의 현실을 설명했다.
특히 이번 심석희 사태의 경우 대한민국의 전통적인 메달밭인 ‘쇼트트랙’ 종목이었고, 국내에서 열리는 동계올림픽을 앞둔 만큼 ‘성적 지상주의’가 더욱 강하게 작동했을 것으로 분석된다.
조 전 코치 등 지도자들의 불법행위가 더욱 묵인될 수 있었던 환경이 조성됐던 셈이다. 더욱이 빙상은 고질적인 ‘파벌주의’로 인해 지도자들의 권력이 절대적인 종목이다.
문제가 불거져도 '꼬리자르기'식의 미온적 대처로는 해결이 불가능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경렬 체육시민연대 사무국장은 "이런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반복되는 이유는 지도자나 협회에서 선수 기용 등 장악력이 강하기 때문이다"며 "감독이나 코치에 대해 복종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데다, 항상 꼬리자르기식으로 가해자에 대해서만 징계를 내린 것이 문제"라고 강조했다.
이경렬 사무국장은 "가해자뿐 아니라 가해자의 상위 단체나 기관에 대해서도 처벌해야 한다"며 "이번 건도 대한체육회 선수촌장이 사퇴해야 한며 징계를 받아야 한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관리 감독자의 책임 강화 차원에서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 사무국장에 따르면 미국에서는 이런 식으로 처벌하고 있다. 미국 체조 국가대표 주치의였던 래리 나사르의 경우, 지난해 성폭력으로 법원에서 선고를 받고 관련 학교나 협회 전부 징계 받고 사퇴했다. 한국도 개인뿐 아니라 체육계 전반의 문제라는 책임감 가질 수 있도록 하는 필요성이 제기된다.
이 사무국장은 "한국은 여전히 엘리트 체육 선수들은 어렸을 때부터 성적을 내기 위해 폭력을 당하는 것이 비일비재하고 되물림되고 있다"며 "체육계에서 폭력·성폭력 문제가 최소 10년 전부터 지적돼 왔지만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iamkym@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