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부터 하도급 계약 맺고 구두 저부작업 제공
대법 "계약 형식에 관계 없이 실질적으로 판단해야"
[서울=뉴스핌] 이학준 기자 = 구두 제조업체와 하도급 계약을 맺고 ‘개인사업자’로 등록돼 구두를 만든 제화공들을 자영업자가 아닌 실질적 근로자로 인정해야 한다는 취지의 첫 판례가 나왔다.
대법원 2부(주심 노정희 대법관)는 지난달 29일 구두 제조업체 '소다'가 고모 씨 등 하도급계약 근로자들을 상대로 낸 상고를 기각하고, 이들 근로자에게 퇴직금을 지급하라고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20일 밝혔다.
[서울=뉴스핌] 최상수 기자 = 20일 오전 서초구 대법원의 모습. 2018.11.20 kilroy023@newspim.com |
대법원은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에 해당하는지 여부는 계약의 형식이 고용계약인지 도급계약인지보다, 근로자가 실질적으로 임금을 목적으로 종속적인 관계에서 사용자에게 근로를 제공했는지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대법원은 "비록 소다가 원고들로부터 근로소득세를 원천 징수하지 않았고 4대 보험에 가입하지 않았더라도 원고들의 근로자성을 부정할 사유는 되지 못한다"며 "원고들은 임금을 목적으로 소다에 종속되어 근로를 제공한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고 씨 등은 1998년부터 1년 동안 소다에 고용돼 근로자로서 구두 저부작업을 해왔다. 저부작업은 구두 틀에 봉제된 가죽을 씌우고 건조하는 작업을 일컫는다.
소다는 2000년을 전후해 이들을 도급계약 형태로 전환하기로 결정하고, 이들과 제작물공급계약 등을 체결했다. 해당 계약서에는 "제작물을 공급함에 있어 지휘감독을 받지 않는다", "취업규칙 및 제규정을 적용받지 아니한다", "소다의 장소를 사용한다고 해서 소다에 전속되는 것은 아니다" 등의 내용이 담겼다. 이에 따라 고 씨 등은 저부작업을 계속해왔다.
그러나 계약 체결 이후에도 근로 조건은 이전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이에 2016년 5월 고 씨 등은 "실질적으로 임금을 목적으로 종속적인 관계에서 소다에게 근로를 제공했으니 퇴직금을 지급하라"며 소송을 제기했다.
그러나 1심 재판부는 "소다가 제공한 작업지시에 따라 작업이 이루어지는 등 소다가 원고들의 작업을 관리하였음이 인정된다"면서도 "원고들이 종속적인 관계에서 소다를 위한 업무를 수행하여 왔다는 징표에까지 해당된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
출퇴근 시간이 정해지지 않았고, 업무에 구체적으로 개입하면서 원고들의 업무를 통제했다고 보기 어려워 소다가 근로계약상 지휘·명령을 하지 않았다는 판단이었다.
1심 판결에 불복한 고 씨 등은 항소했고, 2심 재판부는 1심 판결을 뒤집었다. 2심 재판부는 "소다가 업무 내용을 정하고 상당한 지휘 감독을 하였으며, 원고들은 소다의 취업 규칙에 준하는 정도로 계약 관계에 구속되었다"며 "원고들은 피고 회사에 근로자로 근무하다 퇴직했으므로 퇴직금을 지급할 의무가 있다"고 판시했다.
또 2심 재판부는 고 씨 등의 근무 장소가 소다 회사 공장으로 고정되지 않은 점, 독립하여 사업을 영위하지 않은 점, 실질적으로 근로의 대가인 임금의 성격을 가진다는 점 등을 근로자성 인정의 이유로 들어 "제작물공급계약의 내용과 관계 없이 원고들은 소다의 근로자로 근무하다 퇴직하였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원심의 판단이 옳다고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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