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3월, 성폭행 피해 주장하며 부부 동반자살
원심 “강간 위험 예상했음에도 조치 취하지 않았다”
대법 “사력 다해 반항 안했다는 이유로 무죄 단정 안돼”
[서울=뉴스핌] 고홍주 기자 = 대법원이 친구 아내를 성폭행한 혐의로 기소된 폭력조직원에 대해 무죄를 선고한 원심 판결을 파기했다. 성폭행 피해자의 진술에 모순이 없거나 허위로 진술할 만한 동기나 목적이 없다면 함부로 배척할 수 없다는 최종 판단을 내린 것이다.
서울 서초동 대법원 sunjay@newspim.com |
대법원 1부(박정화 대법관)는 강간 및 특수상해 등으로 기소된 박모(37) 씨의 상고심에서 강간 혐의를 무죄로 판결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유죄 취지로 다시 대전고등법원에 돌려보냈다고 31일 밝혔다.
재판부는 “성행위 당시 폭행이나 협박이 있었는지 여부는 내용과 정도는 물론 사건의 경위, 가해자와 피해자 사이의 관계, 행위 당시와 그 후의 정황 등 모든 사정을 종합해 판단해야 한다”며 “사후적으로 판단해서 피해자가 범행 현장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거나 사력을 다해 반항하지 않았다는 사정만으로 가해자의 폭행이나 협박이 피해자의 항거를 불가능하게 만들지 않았다고 쉽게 단정 지어서는 안 된다”고 판결했다.
이어 재판부는 “성폭행 사건을 심리할 때는 그 사건이 발생한 맥락에서 성차별 문제를 이해하고 양성평등을 실현할 수 있도록 ‘성인지 감수성’을 잃지 말아야 한다”며 “성폭행 피해자가 처해 있는 특별한 사정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채 피해자 진술의 증명력을 가볍게 배척하는 것은 논리와 경험의 법칙에 따른 증거판단이라고 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박 씨는 자신과 어린 시절부터 알고 지냈던 고향 친구의 아내를 폭행하고 강간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박 씨는 친구가 국외로 출장을 간 사이 피해자에게 지속적으로 만남을 요구하고 모텔로 데려가 자신의 요구에 응하지 않으면 가족에게 위해를 가할 것처럼 협박해 강제로 성관계를 한 혐의를 받고 있다.
1심 재판부는 “피해자가 민감한 개인사나 이혼 등에 대한 얘기를 피고인과 나눴는데, 이는 어느 정도 친분을 쌓고 신뢰 있는 사이에서 할 만한 대화이지 협박범에게 말할 수 있는 내용은 아니다”라며 무죄 판결을 내렸다.
또 “피해자가 모텔에 끌려갈 때 강간에 대한 위험을 충분히 예상하고 이를 피하기 위해 나름대로 수단과 방법을 동원했을 것인데 그에 대한 피해자의 진술은 없다”며 성폭행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피해자 부부는 이에 성폭행 피해를 주장하며 지난 3월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이들 부부는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밖에 없음을 이해해달라”며 “가해자 박 씨에 대해서는 죽어서도 복수하겠다”는 유서를 남긴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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