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폭력 특성상 피해자 지속적 폭력에 노출돼
'전담법원 설치', '반의사불벌죄 폐지' 등 요구
[서울=뉴스핌] 김준희 기자 = 수십 년간 폭력을 일삼은 남편을 살해했지만 정당방위는 인정되지 않았다. 지난 7월 2일, 37년간 가정폭력에 시달리다 남편을 살해한 60대 여성에게 대법원은 징역 4년을 확정했다. “연락을 받지 않았다”며 모임에서 돌아온 아내의 머리채를 잡고 유리잔을 던지던 그였다. 남편이 집어던진 장식용 돌로 머리를 수차례 내리치고서야 아내는 남편의 사망사실을 깨달았다.
남편의 매질은 결혼 첫 해부터 시작됐다. 만삭 상태에서 삽으로 두들겨 맞기도 했다. 남편이 휘두른 흉기에 찔린 양쪽 가슴엔 당시 상흔이 남아있다. 이혼하고 싶을 때마다 두 아들을 떠올렸다. 남편의 폭력에 지속적으로 시달려왔던 아내의 공포와 분노는 피해자를 가해자로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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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해자-피해자 격리 없인 ‘가정폭력’ 해소 어려워
가정폭력의 비극적 결말은 이 뿐만이 아니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11일 “가정폭력은 장기간 지속될 수밖에 없다”며 “학대치사사건만 봐도 이전에 신고·인지됐던 가해자 사건인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이 때문에 가정폭력이 더 큰 범죄로 이어지기 전에 가해자와 피해자를 격리시켜야 한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이 교수는 “가정폭력은 피해자가 원치 않으면 가해자를 처벌할 수 없는 반의사불벌죄가 팽배하다”며 “가해자가 가정에 다시 돌아가면서 피해자가 다시 장기간 가정폭력에 노출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고 분석했다.
변현주 한국여성인권진흥원 가정폭력방지본부장은 “가정폭력에 오래 노출된 여성들은 폭력 남편을 처벌해달라고 말할 수 없는 구조에서 살아왔다”며 “보복이 두려워 참고 살면서 가정폭력은 반복된다”고 안타까워했다.
전문가들은 △가정폭력사건 전담법원 도입 △반의사불벌죄 폐지 등을 가정폭력 해결방안으로 제시했다. 법원에 재량권을 줘 판사가 반의사불벌을 양형판단에 기준 정도로만 참고할 수 있게 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 "형사처벌 강화" 요구... 차선책은 현행법 보완
가정폭력에 대한 형사처벌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뜨겁다. 가정폭력을 중범죄로 보고 강력 처벌하는 미국 등 선진국의 방식을 따라야 한다는 의견이 제시됐다.
미국은 가정폭력 전담법원을 두고 있다. 형사처벌 권한이 없는 국내 가정법원과 달리 미국에선 전담법원이 형사처벌까지 내릴 수 있다. 또 가정폭력 사건에 체포의무규정을 두고 사안이 중하거나 물리적 위험이 우려될 경우 경찰이 피해자 의사와 상관없이 가해자를 즉시 체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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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교수는 “영미법 국가들은 가정폭력 예방 교육을 제대로 이수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형사처벌을 할 수 있다”며 “경미한 보호처분부터 엄중한 무기징역까지 주는 수준”이라고 덧붙였다.
변 본부장은 “미국처럼 가해자를 우선 체포하면 이 사건이 중대하다는 것능 가해자 스스로 인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가해자가 유치된 동안 피해자는 안전하게 피신을 하거나 안정적인 상담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며 ”사건현장에 있는 피해자 보호를 더 중시하며 시범운영을 해볼 수 있다면 좋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당장 전담법원을 설치하거나 반의사불벌죄를 폐지하지 않더라도 현행법 내에서 보완이 필요하다는 당부도 이어졌다.
변 본부장은 “경찰조사를 지나 검찰조사 단계로 넘어가면 이미 사건 발생 시점이 상당히 지난 경우가 많다”며 “검찰이 기소여부를 결정하기 전에 피해자의 상담을 지원하고 전문가 의견을 들을 수 있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 교수도 “장기로 이어지는 가정폭력 특성상 예후를 평가해야 한다”며 “단순히 판결 후 끝낼 것이 아니라 재판부가 3개월·6개월 후 상황을 확인할 수 있는 권한을 줘야 한다”고 조언했다.
zunii@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