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을 위하여"... 피해자 90% 폭력남편과 동거
'쉬쉬하는 문화', '느슨한 처벌' 문제로 지적
[서울=뉴스핌] 김준희 기자 = 지난해 10월 경찰관 A씨는 한 가정집 앞에서 5시간을 서있었다. “남녀가 싸운다”는 112 신고 때문. 현관문 밖에선 남자가 소리를 지르고 물건을 던지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A씨는 수차례 현관문을 두드렸지만 돌아오는 건 욕설과 고성뿐이었다. 3시간 만에 문을 연 남자는 “돌아가라”며 A씨를 때릴 듯이 을렀다. 2시간 만에 나온 여자도 같은 말을 반복했다. “아무 일 없으니까 가세요.”
가정폭력 신고는 급등세지만 처벌은 쉽지 않다. 경찰관들은 “남의 가정사에 함부로 끼어들기 어렵다”고 호소한다. 가정폭력이 여전히 사적인 영역으로 치부되고 있다는 방증이다.
한 경찰 관계자는 “피해 여성이 남편 처벌을 원치 않는 경우가 많아 구두 경고만 반복된다”며 “한번 신고가 들어온 집은 계속 들어와 주소만 들어도 알정도”라고 혀를 찼다.
또 다른 경찰 관계자는 “옆집의 소음신고에 현장에 가보면 실제 신체폭행이 발생하지 않은 경우가 대다수다. 고성이 있었단 사실 만으론 폭력을 입증하기도 쉽지 않다”고 털어놨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
◆ “우리 집 일” 쉬쉬하다 덩치 키우는 가정폭력
가정폭력이 가정 내 문제로 인식되며 폭력을 쉬쉬하는 피해자가 적지 않다. 배우자나 자녀로부터 학대 받은 피해자 전원이 경찰이나 주변에 도움을 요청하지 않았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여성가족부가 발표한 2016년 가정폭력 실태조사에 이런 현실이 잘 드러나 있다. 학대 경험 당시 주위에 도움을 요청하지 않은 가장 큰 이유는 ‘가족이라서’(61.1%)였다. ‘창피하고 자존심이 상해서’(23.3%), ‘그 순간만 넘기면 되어서’(15.6%)가 뒤를 이었다.
가족을 개인의 소유물로 보거나 통제하려는 가부장적 의식이 가정폭력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한국사회에서 남성성은 여전히 주도하는 위치에 있거나 다른 것들을 통제·지배하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통상 가해자들은 직장 등 가정 밖에서 감정을 잘 표출하지 않는 대신 가정에서는 분노를 쉽게 드러낸다. 아내와 자녀 등 가족을 자신의 소유물로 인식하고 통제 가능한 범위 내에 있다고 인식하는 탓이다. 이 때문에 가해자가 정한 기준에 맞지 않으면 폭력으로 힘과 권력을 과시한다는 분석도 있다.
◆ ‘가정 유지’ 우선... 뒷전으로 밀린 피해자 보호
현행 가정폭력처벌법은 ‘가정 유지 및 보호’를 주목적으로 한다. 가해자를 형사 처벌하기보단 보호 처분함으로써 가정폭력 방지와 피해자 보호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9일 대검찰청에 따르면 2012년 14.8% 수준이던 가정폭력 사범 기소율은 2016년 8.5%까지 떨어졌다. 신고된 가정폭력 사건 대부분이 불기소처분을 받거나 상탐위탁 등 보호처분으로 종결됐다.
재판에 넘겨진 가해자가 피해자와 격리된 경우도 흔치 않다. 경찰청에 따르면 가정폭력 사건에서 접근금지 등 긴급 임시조치가 취해진 비율은 10건 중 1건에 불과하다. 가정폭력 피해자 10명 중 9명은 가해자의 위협에 지속적으로 노출되는 것이다.
서울중앙지법 2018.04.06 leehs@newspim.com <사진=이형석 기자> |
가정폭력 피해자들은 양육비와 주거지 마련의 어려움, 자녀에게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을 고려해 가해자와의 적극적인 격리를 망설이고 있다. 수차례 가정폭력으로 기소된 전 남편을 옹호하기도 한다.
최근 이혼한 전 부인 집 앞에서 두 차례 소란을 피운 50대 남성이 서울의 한 지방법원에서 징역 7월을 선고받았다. 집행유예 기간에 법원의 임시보호명령을 두 차례 위반한 결과다. 지난해 1월엔 부인 B씨를 폭행한 전적도 있지만 B씨는 “양육비를 지원받아 두 딸을 키워야 한다”며 선처를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가정폭력은 반의사불법죄라 처벌이 쉽지 않다"며 “경제력이 없는 여자들이 남편을 다시 돌려달라 하며 다시 가정폭력에 노출되는 악순환이 지속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zunii@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