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원격의료시장 2021년 46조원대 전망
미·일·중은 정부가 적극 육성하는데 한국은 18년째 답보
[편집자주] 한국경제가 벼랑 끝에 서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청와대에 일자리 현황판까지 걸고 고용 창출을 외치지만 고용지표는 악화일로다. 미국발 무역전쟁이 확산되면서 경제 버팀목인 수출도 암운이 짙어지고 있다.그러나 정부는 일자리 생산주체인 기업에 활력을 주는 정책은 외면한 채 ‘소득주도성장’만 고집하고 있다. 경제 현실을 제대로 파악하고 올바른 정책을 펴야 문재인 정부가 힘을 받고, 한국경제도 살아난다. 이에 뉴스핌은 현장 르포와 전문가 진단을 통해 경제 회생의 길을 찾는 [이제는 경제다] 시리즈를 연재한다.
[서울=뉴스핌] 김근희 기자 = #유전자 분석업체 쓰리빌리언은 올해 전 세계 최초로 4000여개 이상의 희귀 유전질환을 유전자 분석으로 한 번에 진단하는 서비스를 출시했다. 하지만 출시 국가에서 한국은 제외됐다. 우리나라에서는 개인이 병원을 거치지 않고 직접 기업에 유전자 검사를 의뢰해 질병을 진단할 수 없기 때문이다.
#스마트 헬스케어 기업 네오펙트는 환자가 원격의료를 통해 집에서도 재활 치료를 할 수 있는 의료기기를 한국이 아닌 미국에 판매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원격의료가 금지된 탓이다. 미국 내 600여명의 환자가 이 회사의 의료기기를 이용 중이다. 올 상반기 이 기기를 통한 렌탈사업 매출은 전년동기 대비 3배 이상 증가했다.
바이오산업이 규제에 묶여 성장하지 못하고 있다. 규제 개혁 논의가 되풀이되고 있지만, 답보 상태다. 규제 완화를 기다리던 업체들은 이제 한국이 아닌 해외 시장에 집중하고 있다. 한국 기업이 만든 의료 기술의 혜택을 정작 우리 국민이 누리지 못하는 것이다.
환자가 집에서 네오펙트 재활의료기기를 이용해 재활훈련을 하고 있다. [사진=네오펙트] |
[이제는 경제다 시리즈]
25) "IT서비스를 보라", 기업중심 혁신성장이 '답'
26) "바빠도 알바 못써요"…가난 부추기는 소득주도성장
29) R&D 투자 3년째 제자리걸음…세액 감면도 후퇴
31) 4차 산업으로 키운다더니…규제에 묶인 DTC 유전자 검사
32) 벤처 기업 제한 풀고 육성, 재기 지원하자
◆ DTC·원격의료, 해외선 유망사업…국내선 성장 못 해
소비자가 기업에 직접 유전자 검사를 의뢰하는 '소비자 의뢰 유전자검사(DTC)'는 대표적인 4차 산업으로 꼽힌다. 유전체 분석을 통해 암, 치매, 뇌졸중 등 질병을 예측·예방할 수 있고, 맞춤형 의료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시장조사 전문기관인 크리던스 리서치에 따르면 전 세계 DTC 시장 규모는 2022년 4000억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해외와 달리 국내 DTC 시장의 성장은 답보 상태다. 유전체 분석기업의 DTC 사업 분야 평균 매출은 연 1억원 수준이다. 검사할 수 있는 항목이 혈압, 탈모, 피부탄력 등 12가지로 제한됐기 때문이다. 소비자들의 수요가 많은 암, 뇌졸중, 당뇨 등은 검사할 수 없다.
유전자 분석업체 관계자는 "해외 DTC 규제는 엄격하지 않기 때문에 한국 소비자가 해외 업체에 유전자 질병 검사를 의뢰할 수 있지만, 정작 한국 업체에서는 할 수 없다"며 "국내 업체들도 자구책으로 해외법인 등을 설립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국에서 아예 막혀 있는 원격의료는 해외에서 유망사업으로 분류된다. 전 세계 원격의료시장 규모는 2015년 20조원(180억1000만달러)에서 2021년 46조원대(412억달러)까지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미국, 영국, 일본, 중국 정부 등은 원격의료 활성화에 적극적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국내 업체들이 충분한 기술력을 확보했지만, 규제에 막히면서, DTC 등 시장 성장에 한계가 있다"고 토로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
◆ 규제 개혁 외치지만 여전히 제자리
업계의 지적이 계속되자 정부도 규제개혁을 외치고 있다. 문제는 바이오 분야 규제 개혁이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원격의료는 2000년 강원도 보건소에서 처음으로 의사와 환자 간 시범 사업을 시작했다. 그러나 18년이 지난 지금도 원격의료는 여전히 불가능하다. 현행법 내에서는 매우 제한된 조건 내에서 의료인 간 원격의료만 할 수 있다.
DTC 규제 개선의 경우 정부는 지난 6월30일 고시를 통해 검사 항목을 당뇨, 고혈압, 뇌졸중 등을 포함해 157가지로 늘릴 예정이었다. 그러나 규제 완화의 조건으로 기존 신고제를 인증제로 전환하는 내용이 포함되면서 계획이 연내로 미뤄졌다. 인증제를 포함하기 위해서는 법 개정 등을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이종은 디엔에이링크 대표는 "인증제 마련을 위한 연구용역, 법 개정, 시범사업 등 일련의 과정을 거치다 보면 또 DTC 규제 완화는 늦어질 것"이라며 "안타까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 "규제 틀 바꿔야…사회적 합의도 필수"
업계에서는 규제의 틀을 바꿔야 한다고 주장한다. 규제의 방향을 특정 항목만 불허하고 나머지는 허용하는 네거티브 방식으로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미국 등 해외에서는 DTC 관련해 네거티브 정책을 펼치고 있다. 중국과 일본 등은 관련 규제가 없다.
전문가들도 이러한 규제 방향 전환에 대해서 대부분 동의하는 분위기다. 다만 생명과 관련돼 있고, 그와 관련된 법 규정도 복잡한 만큼 신중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명화 과학기술정책연구원(STEPI) 연구기획팀장은 "규제의 방향을 허용을 기본으로 하되, 예외적인 부분을 금지하도록 바꿔야 한다"며, "다만 법적인 규정들을 고려했을 때 전면 네거티브 규제화는 어렵다"고 말했다.
특히 원격의료 등 해묵은 규제를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사회적 합의가 중요하다는 조언이다. 의료와 바이오 규제의 경우 환자, 의사, 기업의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있기 때문이다.
이 팀장은 "지금까지 규제 개선을 위한 과정에서 각 이해 당사자들 간의 합의나 동의가 충분히 이뤄지지 않았다"며 "규제 개선을 하기 위해서는 사회적 합의의 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keun@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