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ABC "문재인 순간 '방심'…중요 발표 없을 것"
"문재인, 협상자 아닌 중재자"…비핵화 관련 한미 '시각차'
전문가들 "김정은, 핵 포기하지 않는다"
[서울=뉴스핌] 김성수 기자 = 27일 남북정상회담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대외적 이미지 개선에는 도움이 됐지만, 회담 결과에 대한 기대가 다소 부풀려졌다고 주요 외신들이 지적했다.
남북 정상회담은 5월 말~6월 초 북미 정상회담을 앞둔 리허설에 불과해 중요한 발표가 나올 가능성이 낮은 데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핵을 순순히 포기하지는 않을 것이란 이유에서다.
27일 문재인 대통령(우)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좌)을 만나 비무장지대(DMZ) 군사분계선을 넘고 있는 모습 [사진=로이터 뉴스핌] |
◆ 호주 ABC "문재인 순간 '방심'…중요 발표 없을 것"
호주 ABC방송은 문재인 대통령이 군사분계선(MDL)을 넘어간 장면에 주목했다.
방송은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남쪽 군사분계선을 넘은 후, 예상치 못했던(unexpected) 일이 벌어졌다. 김정은 위원장이 문 대통령에게 다시 북쪽으로 넘어가자고 제안했다"며 "노련한 한국 지도자가 잠시 방심한(off guard) 것처럼 보였다"고 전했다.
이어 "문 대통령이 머뭇거리자, 나이가 더 어린(the younger) 김 위원장이 문 대통령의 손을 잡고 함께 군사분계선을 넘었다"며 "그러자 박수가 터져나왔다. 남한 정상이 북한 땅을 밟은 것은 2007년 남북 정상회담 이후 처음"이라고 설명했다.
방송은 "각본에서 휙 벗어나는 희귀한 장면 같았다"며 "해외에서 오랫동안 캐리커쳐로 묘사되던 젊은 지도자 김 위원장이 긴장감 높은 상황에서 자신의 세련된 면모(sophistication)를 보여준 것"이라고 평가했다.
다만 방송은 "남북 정상회담에서 중요한 발표가 나올 것이란 기대는 특별히 높지 않다"며, 대다수 전문가들은 남북 정상회담은 북미 정상회담이라는 중요 행사(main event)가 시작되기 전 앙트레(entree, 식당이나 만찬에서 주요리 앞에 나오는 요리)에 불과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 "문재인, 협상자 아닌 중재자"…비핵화 관련 한미 '시각차'
뉴욕타임스(NYT)와 영국 일간지 인디펜던트는 남북 정상회담에 이르기까지 한국이 미국에 의존해왔다는 점을 지적했다.
인디펜던트에 따르면 한국 정책 입안자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군사 행동에 나서겠다며 북한에 위협을 가한 것이 김 위원장의 변화를 이끄는 데 예상보다 큰 효과를 발휘했다고 평가했다.
또 한국 관료들은 남북 정상회담을 앞두고 북한 정부보다는 트럼프 행정부와의 의견 조율에 더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투입했다고 신문은 전했다. 허버트 맥매스터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보좌관과 렉스 틸러슨 미 국무장관이 잇따라 물러나는 등 미국의 주요 외교안보 라인에 공백이 발생한 것도 일부 영향을 미쳤다.
다만 신임 미 국무장관으로 지명된 마이크 폼페이오가 김 위원장을 직접 면담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이번 정상회담이 이전 회담처럼 소득없이 끝나지는 않을 것이라고 신문은 전망했다.
NYT 신문은 문 대통령이 스스로를 '협상자(negotiator)'라기 보다는 '중재자(mediator)'로 인식하고 있다고 전했다. 김 위원장과 직접 협상하는 당사자가 아니라, 핵 협상 경험이 없는 트럼프 대통령과 글로벌 무대에 선 경험이 없는 김정은 위원장 사이를 오가며(shuttling) 양쪽의 간극을 메워주는 역할이라는 뜻이다.
이 밖에도 한국과 미국은 북한 비핵화에 대해서도 미묘한 시각차를 보인다고 인디펜던트는 분석했다. 문 대통령은 북한이 핵무기를 폐기하면 매 행보마다 경제적 보답을 받는 식으로 '한 걸음 한 걸음(step-by-step)'씩 진전되기를 원하지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북한이 즉시(6개월 내) 핵무기를 폐기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사진=노동신문] |
◆ 전문가들 "김정은, 핵 포기하지 않는다"
관건은 문 대통령이 북한이 비핵화에 대한 일정을 세우도록(set a timetable) 김 위원장을 설득하는 것이다. 비핵화 약속만으로는 충분치 않으며, 정확히 언제 비핵화를 할 것인지가 트럼프 대통령과의 회담에서 중요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리비아는 2003년 말 핵개발 장비 대부분을 미국으로 보내는 데 몇 주가 걸렸고, 이란은 핵 프로그램을 분해하고 재료의 97%를 선적하는 데 6개월이 넘게 걸렸다. 북한과 차이점이 있다면 리비아와 이란은 핵 '시설'은 있지만 핵 '무기'는 없었다는 점이다.
북한은 20~60개에 이르는 핵무기를 보유한 것으로 추정된다. 정확한 숫자가 얼마인지는 미국 정보기관에서도 의견이 엇갈린다. 다만 김 위원장이 핵을 보유함으로써 트럼프 대통령과 만날 기회까지 얻게 된 상황에서, 그가 쉽사리 핵무기를 포기할 가능성은 낮다는 게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김 위원장은 문 대통령을 만나 한반도 비핵화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논의하자고 말했다. 그러나 김 위원장이 주한미군 철수와 한미 합동 군사훈련 이슈를 짚었다는 점을 고려할 때 그가 미국에 강도 높은 양보를 요구할 것이라고 인디펜던트는 논평했다.
윌리엄 페리 전(前) 미 국무장관은 "북한이 핵무기를 포기하도록 일방적으로 합의할 방법은 전혀 없다고 본다"며 "우리는 북한이 얼마나 많은 핵무기를 갖고 있거나 만들고 있는지, 또 핵 시설이 어디에 있는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1990년대 클린턴 행정부 시절 북한과 협상을 담당했던 개리 사모어 핵확산 전문가는 워싱턴포스트(WP)와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정상회담이) 다 (김 위원장의) 장난이란 걸 알지 않냐. 김 위원장은 핵무기를 포기할 의도가 없다"고 주장했다.
이지영 아메리카대학교 한국학 교수는 "김 위원장이 우리를 수차례 깜짝 놀라게 했지만 근본적인 변화의 신호라고 평가하기엔 아직 이르다"며 "아직 작전의 한 과정이라고 풀이된다. 우리는 정책 변화 신호에 너무 흥분하지 않아야 한다"고 말했다.
sungsoo@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