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평균인의 성적 도의관념에 반하면 성추행”
미투 운동 후속..피해자 소송도 급속 확산 전망
[뉴스핌=김기락 기자] 서지현 검사의 폭로가 기폭제가 된 ‘#미투(Me Too·나도 당했다)’ 운동이 교육계, 문화예술계, 연극계 등 사회 전반으로 번지는 가운데 성추행 범죄에 대한 대법원 판례가 눈길을 끌고 있다.
5일 대법원과 법조계에 따르면 성추행 피해자의 수치심 여부가 대법원의 유무죄 판결에 중요하게 작용하고 있다.
서울의 한 초등학교 5학년 담임교사였던 K씨는 2014년 피해자의 옷 속으로 손을 집어넣어 속옷을 만지는 등 10세 전후의 학생 7명을 30여 차례 성추행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1·2심 재판부는 “피고인에게 성폭력 범죄의 습벽(습성·버릇)과 범죄를 다시 범할 위험성이 있다”며 징역 6년을 선고했다. 이에 K씨는 재판에서 피해자의 나이 등을 이유로 신빙성이 없다고 맞섰으나 대법원도 징역 6년을 확정했다.
피고인의 재범 우려와 초등학생 저학년 학생들의 피해 진술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판결로 해석된다.
게티이미지뱅크 |
교사가 학생의 허리를 감싸 안아도 성추행에 해당된다.
강원도의 한 여고 교사 J씨는 2015년 자신의 반 여학생 7명을 교무실 등으로 불러내 허리를 감싸 안거나 엉덩이를 손으로 친 혐의 등으로 기소됐다.
1심은 성추행의 고의가 있다고 판단해 벌금 700만원을 선고했다. 반면, 2심에선 “신체 접촉을 통해 친밀감과 유대감을 높이려는 교육철학에서 비롯됐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며 무죄를 선고, 1심 판결을 뒤집었다.
하지만, 대법원은 “허리를 감싸 안거나 엉덩이를 치는 등의 행위는 객관적으로 친분을 쌓기 위한 행동이라고 보기 어렵고 일반인에게 성적 수치심이나 혐오감을 일으키게 하는 행위”라며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신체 접촉이 친밀감 등을 위한 것이더라도, 피해자가 성적 수치심을 느낄 가능성이 존재한다면 성추행에 해당된다는 게 대법원 판단이다.
학생들에게 ‘진맥’ 해준다며 가슴을 만진 초등학교 교사도 1심과 2심에선 무죄를 받았으나, 대법원은 피해자의 수치심을 기준으로 성추행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초등학교 교사 L씨는 자신을 찾아온 여학생들을 책상 위에 눕혀 혈자리를 누르다가 학생들의 가슴을 만졌다. 이에 대해 한 학생이 만지는 것이 싫다고 말했고, 같은 자리에 있었던 친구들도 성적 수치심을 느꼈다.
공연예술계 위드유 집회에서 한 참석자가 피켓을 들어보이고 있다. <사진=김준희 기자> |
대법원은 “성적 수치심이나 혐오감을 일으키고 성적 정체성 형성에 부정적 영향”을 지적하며 성추행으로 인정했다.
구체적으로 대법원은 ‘성적 수치심이나 혐오감을 일으키는 것’에 대해 “피해자에게 단순한 부끄러움이나 불쾌감을 넘어 인격적 존재로서의 수치심이나 모욕감을 느끼게 하거나 싫어하고 미워하는 감정을 느끼게 하는 것으로, 사회 평균인의 성적 도의관념에 반하는 것”이라고 판시했다. (대법 2008.9.25 선고)
성적 수치심의 경우 대법원이 피해자와 같은 성별과 연령대의 일반적이고 평균적인 사람들을 기준으로 해 그 유발 여부를 판단하는 만큼, 급속도로 번지는 미투 운동은 앞으로 소송 등 법조계에서 상당한 파장을 일으킬 것으로 예상된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4일 3·8 세계 여성의 날을 맞이해 열린 제34회 한국여성대회에 축사를 통해 “최근 우리 사회는 미투 운동과 함께 중요한 변화의 한가운데 있다”며 “용기 있는 행동에 호응하는 분명한 변화를 만들어내겠다”고 말했다.
[뉴스핌 Newspim] 김기락 기자 (peoplekim@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