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들어 기아차·현대모비스·만도 잇단 패소
법원 "순이익 많아 통상임금 추가지급 문제없다"
[뉴스핌=한기진 기자] 기업들이 최근 통상임금 소송에서 잇따라 패배하고 있다. 노조가 임금단체협상(임단협) 합의를 무시하고 상여금을 통상임금으로 요구한 것은 '신의성실의 원칙(신의칙)'을 깬 것이라는 법리로 맞섰지만, 법원이 전혀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2013년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기준으로 제시한 신의칙이 문재인 정부의 '친노동'정책으로 무시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9일 법원과 자동차업계에 따르면 서울고법 민사2부(부장판사 권기훈)는 만도 근로자 43명이 회사를 상대로 '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해 법정수당을 재산정해달라'며 낸 항소심에서 1심과 달리 원고 일부 승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통상임금에 추가할 액수에 따라 달라질 법정수당의 규모를 회사의 매출액과 영업이익, 당기순이익 등에 비춰봐 회사가 단기적으로는 어느 정도 경영상의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은 있다"면서도 “중대한 경영상의 위험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만도에 앞서 올해 기아자동차, 현대모비스 등도 통상임금 소송에서 사측이 졌다. 통상임금 재판의 핵심 쟁점인 근로자들의 청구가 신의칙 위반에 해당하느냐의 싸움에서 패한 것이다. 신의칙은 민법 2조 1항에 ‘권리 행사와 의무 이행은 신의에 좇아 성실히 해야 한다’고 표현된 민사법의 대원칙이다. 계약의 당사자는 서로 이익을 배려하고 형평성에 어긋나거나 신뢰를 저버리면서까지 권리를 행사해선 안 된다는 것이다.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2013년 갑을오토텍 통상임금 사건에서 노사합의에 따른 통상임금은 근로기준법 위반이라고 해도 “예측하지 못한 새로운 재정 부담으로 회사에 중대한 경영상 어려움이 초래되거나 존립이 위태롭게 된다면 신의성실의 원칙을 위반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이를 근거로 기업들은 노사합의를 깨고 노조가 상여금을 통상임금으로 요구하는 것은 기업 경영에 예상외의 위험을 초래하므로, 신의칙의 원칙을 위반했다는 법리로 소송에 대응했다.
그러나 법원은 “인건비 급증이 중대한 위험은 아니다”라는 한결 같은 논리로 노조의 손을 들어줬다. 만도의 경우는 “연간 2000억원대 적자로 R&D 투자에 지장을 초래할 것”이라는 주장을 받아들여 신의칙을 인정한 지난해 1월 1심 판결도 뒤집었다.
지난달 20일 현대모비스 퇴직노동자 17명이 제기한 상여금 통상임금 소송에서 서울중앙지법 민사 42부(재판장 김한성)도 “우발채무액 부담액이 2015년 말까지 전체 근로자에 3198억원, 2016년부터 2020년까지는 4790억원으로 피고가 새로운 재정적 부담을 지게 될 가능성이 있다"고 인정했다.
그렇지만 “현대모비스가 2011~2015년 매년 지속적으로 상당한 당기순이익을 거둬 매년 9조~16조원의 이익잉여금을 보유해 재무안정성 지표가 크게 악화되지 않을 것”이라며 근로자의 손을 들어줬다. 지난 8월 기아차가 패소한 통상임금 소송에서 적용한 법리를 그대로 따른 것이다.
노동계가 잇단 상여금 통상임금 소송에서 승소하며 기세를 높이고 있다. <사진=뉴시스> |
주요 통상임금 소송에서 노조측 대리인으로 나선 김기덕 변호사(법률사무소 새날)는 “(통상임금 패소로) 추가임금이 당기순이익을 초과해도 기업의 지급여력이 충분하다면 중대한 경영상의 어려움을 초래한다고 볼 수 없다”고 했다.
반면 재계 관계자는 “법원이 과거 순이익이 있기 때문에 예상 밖의 통상임금이 기업경영에 악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것은 장기 비전을 보고 투자와 인건비를 지급하는 기업경영의 원리를 이해하지 못한 것”이라며 “잇단 패소가 앞으로 임금체계개편으로 이어져 산업계 전체의 인건비 부담이 늘어나는 악영향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뉴스핌 Newspim] 한기진 기자 (hkj77@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