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체점검’에 맡긴 조사…감사보고서에 의존할 수밖에
[뉴스핌=이지현 기자] 정부가 채용비리 근절을 위해 칼을 빼들었다. 금융당국 역시 금융공공기관과 시중은행의 채용비리를 조사하겠다고 나섰다. 하지만 점검 기준도, 증거도 부족한 탓에 채용비리가 뿌리뽑힐 수 있을지 의문이라는 목소리가 많다.
3일 금융권에 따르면 현재 금융당국은 이달 말까지 금융공공기관과 시중은행의 과거 채용을 조사한다. 금융위원회는 금융공공기관을, 금융감독원은 14개 시중은행을 조사한다.
금융위는 이를 위해 특별점검반을 구성하고 7개 산하 금융공공기관과 5개 금융관련 공직유관단체의 채용업무 전반의 시스템을 점검하기로 했다. 지난 5년 간의 채용을 전수 조사한다. 금감원은 14개 시중은행에 대해 11월 말까지 과거 채용에 대한 자체점검을 하도록 할 계획이다.
문제는 금융당국의 이 같은 조사가 채용비리를 적발해내는 데 실효성이 있는가다. 특히 시중은행의 자체 점검이 제대로 이뤄질지 의문이다. 금감원은 시중은행의 채용절차를 직접 검사하거나 감독할 수 없다. 민간기업의 자율적인 의사결정과정이기 때문이다. 금감원은 시중은행들의 인사 내규가 잘 정비돼 있는지 정도만 조사할 수 있다.
김용범 금융위 부위원장은 1일 정부서울청사에서 금융공공기관·은행권 합동 '금융권 채용문화 개선회의'를 열었다.<사진=금융위원회> |
이번 채용점검 과정에서도 금감원은 은행에 자율적으로 조사할 것을 요구했다. 채용점검 기간이나 채용비리로 분류되는 기준 등도 제시하지 못한 것. 아무런 기준도 없이 은행에 자체 감찰을 요구할 경우 은행에서는 기존에 해오던 주기적인 감사 자료를 활용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기존 자료를 재검토하는 방식으로는 의심 가는 채용비리를 적발해내기가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 은행 관계자는 "당국으로부터 얼마 동안의 채용을 어떤 기준으로 조사하라는 등의 기준을 제시받지 않았고, 은행 자체적으로 감사실을 통해 이뤄지고 있다"면서 "아마 감사실에서 주기적으로 해오던 감사 자료를 기반으로 다시 점검하는 식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더욱이 기존의 서류도 대부분 남아있지 않다. 채용절차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에 따라 채용을 진행한 구인자는 채용전형이 모두 끝난 날로부터 180일 이내에 개인정보가 담긴 서류는 모두 파기해야 한다. 채용 전형 과정에서 발생한 시험지나 면접 점수표 등의 자료는 5년 정도까지는 보관하는 경우가 있지만, 법적 제한이 없어 불합격자의 경우 이마저도 파기하는 경우가 많다. 이는 공공기관 역시 마찬가지다.
결국 조사 과정에서 의혹이 나오거나 의심쩍은 사례가 제보된다 하더라도 이를 증명해낼 만한 증거가 부족한 것이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시중은행은 민간기업이기 때문에 금감원에서 인사 절차를 조사하고 이에 대해 지적을 할 수 없는 구조"라면서 "게다가 관련 서류도 일정 기간이 지나면 파기해야 하다 보니 채용비리를 은행이나 금융당국 선에서 적발하기는 어렵고 결국 검찰 조사로 갈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금융권 공동 채용박람회가 구직자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함 <사진=김학선 기자 yooksa@> |
5년이라는 짧은 기간의 채용비리를 조사한다고 해서 채용비리가 근절될 수 없다는 회의적인 시각도 있다. 채용청탁은 오래전부터 이어져온 잘못된 문화에서 비롯됐는데, 지난 5년의 사례만 조사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는 것.
한 금융권 관계자는 "채용 청탁이나 비리가 끊임없이 나온다는 건 그만큼 금융권의 잘못된 문화 자체가 오랫동안 이어져온 것"이라면서 "5년 정도의 조사를 가지고는 채용비리를 모두 적발하거나 앞으로 예방하는데 한계가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한편 금융위는 앞으로 금융공공기관에서 채용비리가 발생하면 기관의 예산편성과 경영평가에 불이익을 주기로 했다. 또 금융공공기관 채용비리 신고센터를 설치해 구체적인 제보가 접수되면 기간과 관계없이 이를 철저히 조사한다는 계획이다. 금감원은 시중은행들로부터 받은 자체 감찰 보고서를 살펴보고 추가 조사가 필요한 부분은 검찰에 넘길 예정이다.
[뉴스핌 Newspim] 이지현 기자 (jhlee@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