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우수연 기자] "자본시장통합법 제정을 통해 영국이 했던 '금융 빅뱅'보다 훨씬 더 강도 높은 개혁을 단행할 겁니다. 정부가 규제에 맞서 싸우겠습니다."
김석동 당시 재정경제부 차관보는 기자들 앞에서 힘줘 말했다. 정부가 자본시장통합법을 공식적으로 처음 언급한 것은 지난 2005년. 증권업과 은행업, 보험업 등 자본시장 관련 업종의 장벽을 없애겠다는 의지를 담아 법안의 이름도 '자본시장통합법'이라고 명명했다.
당시 노무현 대통령의 임기 한가운데인 2007년, 해당 법안은 국회를 통과됐고, 그 해 8월 제정됐다. 대신 은행과 보험권의 반대에 부딪혀 법안의 이름은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자본시장법)'로 바뀐다. 적용 대상도 증권 업종으로 제한됐다. 대신 포괄주의(네거티브) 규제, 기능별 규율 체계 같은 개혁적인 내용은 포함됐다.
하지만 2008년부터 찾아온 글로벌 금융위기의 어두운 그림자는 '규제 완화'라는 단어를 감히 입밖으로 내지도 못하게 만들었다. 위험한 순간에 규제마저 없다면 금융시장 불안감은 걷잡을 수 없다는 우려가 컸다.
결국 자본시장법은 무늬만 '포괄주의'일 뿐 실상은 구체적인 자율규제를 적용해 '열거주의'나 다름없게 됐다. 포괄주의란 모든 사항을 자유화하고 제한하거나 금지하는 사항을 나열하는 반면, 열거주의는 모든 것을 금지하는 가운데 예외적으로 허용하는 사항을 나열하는 방식이다. 규제 측면에서는 포괄주의가 훨씬 자유롭다.
여전히 업계에서 체감하는 자본시장 규제는 여전히 원칙 중심보다는 규정 중심으로 설계돼 있다. 금융위기와 정권 교체탓에 자본시장법 제정의 취지를 지난 10년간 두 번의 정부에선 제대로 살리지 못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최근에는 정부도 이 같은 점을 인식하고 자본시장법을 고치려는 노력을 꾸준히 해오고 있다. 네거티브 규제로의 전환, 즉 규제 완화라는 큰 틀에서는 모두들 동의한다. 다만 문제는 정부와 국회가 이를 별도의 법률을 새롭게 만들어 해결하려고 한다는데 있다.
지난 2015년에는 금융회사지배구조법을 자본시장법에서 떼내 별도의 법률로 만들었고, 향후에도 정부는 금융소비자보호법, 사모펀드법 제정 및 신탁업법 분리를 추진하겠다는 입장이다.
특히 신탁업법 분리는 자본시장법의 존립 자체를 위협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2009년 신탁업의 기능이 금융투자업과 유사하다고 생각해 자본시장법 아래 묶였는데 이제와서 신탁업을 분리해 낸다면 종합금융업이나 선물업, 간접투자자산 운용업도 같은 맥락에서 법안 분리 주장을 펼칠 수 있기 때문이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별도의 법률을 제정해 현재 자본시장법의 문제점을 해결하려고 하다보면 자본시장법은 앙상한 가시만 남게 될 것"이라며 "누더기 법안을 만들지 말고 당초 취지를 살려 법 개정으로 해결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자본시장법의 초안이 마련되던 2007년은 문재인 대통령이 노무현 전 대통령의 비서실장으로 정부의 안팎의 살림을 챙기던 때다. 그가 10년만에 다시 나라를 이끌게 됐다.
당시 법안 마련에 참여했던 주요 인사들이 이번 정부의 금융관련 인사 명단에 오르내린다. 자본시장역시 새로운 금융 수장과 정부 기대감이 큰 이 때, 누가 수장이 되든 자본시장법 제정 당시의 취지를 다시 한번 떠올려보길 바란다.
[뉴스핌 Newspim] 우수연 기자 (yesim@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