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글 장주연 기자·사진 이형석 기자] 배우 정만식(43)을 떠올렸을 때 도무지 매치되지 않는 장르가 있다면, 그건 휴먼 드라마일 가능성이 크다. 따뜻하고 다정한 면모를 보여주지 않았다는 의미는 아니다. 다만 그와 상반된 캐릭터들의 인상이 너무나도 강렬해 또렷하게 각인됐다. 굵직하고 거친 (때때로 나쁜) 상남자 이미지 말이다.
그런데 갑작스레 심경의 변화가 생긴 걸까. 정만식이 오랜만에 방향을 틀었다. 지난 15일 개봉한 ‘그래, 가족’을 통해서다. 월트디즈니가 배급한 첫 한국 영화로 핏줄이고 뭐고 모른 척 살아오던 삼 남매에게 막냇동생이 예고 없이 나타나면서 벌어지는 치열한 가족의 탄생기를 그렸다.
“사실 영화가 아기자기한 맛은 있지만, 큰 임팩트가 없잖아요. 심심할까 봐 걱정이 컸죠. 근데 예상외로 반응이 뜨거워서 당황스러워요(웃음). 와이프도 많이 울었죠. 물론 저도 이런 장르 좋아해요. 늘 말하지만, 전 거칠고 무서운 호로나 스릴러 잘 안 본다니까요! 만화, 다큐멘터리, 드라마를 좋아하죠. 근데 왜 이런 영화에서는 저를 안 부를까요? 하, 정말 슬픈 일이에요(웃음).”
모처럼 만난 따뜻한 영화에서 그가 맡은 역할은 오씨 남매의 장남 성호. 다섯 살 쌍둥이까지 있지만, 번듯한 직장 하나 없는 철부지 가장이다. 한때 국가대표 유도선수를 꿈꿨으나 부상과 함께 찾아온 아버지의 빚으로 모든 걸 포기했다.
“이 친구도 나름의 전사가 있어요. 사고도 많이 치고 가족들에게 해를 많이 끼친 거죠. 나이가 들면서 그걸 모르진 않았을 거예요. 자기도 아니까 동생들 앞에서 작아지는 거죠. 그것까지 모르면 그게 인간이겠어요?(웃음) 근데 주눅이 든 상태에서 뭐라도 해보려고 했는데 그 찰나에 사기를 당한 거죠. 운동하던 사람이라 직장 생활도 어려웠던 거고요.”
정만식은 성호에 대한 설명을 곁들이며 “나와 닮은 구석이 은근히 많은 캐릭터”라고 덧붙였다. 즉흥적으로 행동하는 부분이나 몸보다 주먹이 먼저 나가는 불같은 성격들이 그렇다.
“즉흥적인 부분은 똑같아요. 물론 전 성호처럼 무작정 행동하진 않아요(웃음). 다만 내가, 혹은 내 명의로 뭐가 잘못되면 괜찮은데 그 피해가 가족들에게까지 미치면 정말 큰 일 나는 거죠. 또 제가 정의롭지는 않지만, 상식에서 벗어나는 걸 못 참거든요. 그래서 어렸을 때는 말보다 몸이 먼저 나가던 날이 많았어요. 10년 전만 해도 무조건 액션이 바로 나왔어요.”
변한 이유를 묻자 세월과 결혼을 꼽았다. 사실 정만식은 연예계 소문난 애처가(그는 지난 2013년 일본에서 활동한 1살 연하의 연극배우 전린다와 4년 열애 끝에 결혼했다)다. 아내 자랑은 기본, 결혼 4년 차인 지금도 여전히 양 손에 커플링과 결혼반지를 하나씩 끼고 다닌다.
“아직도 엄청난 변화를 겪고 있어요. 사랑의 힘이죠. 그래서 그녀는 제게 종교고요. 요즘에는 그녀 때문에 다시 영어 공부를 하는데 머리가 좋아지고 있는 기분이죠. 또 워낙 말을 조리 있게 잘해서 그 영향도 받았어요. 예전에는 다 욕이었거든요. 지난 생일에는 제 후배들 불러서 음식도 해줬어요. (조)진웅이가 구절판을 보고 ‘저 양반이 이런 대우를 받는 건 반칙’이라고 했죠. 애들이 (부러워서) 미치려고 해요(웃음).”
인간 정만식의 인생에 가장 큰 변화를 준 이가 아내 전린다라면, 배우 정만식에게 큰 영향을 끼친 이는 류승완 감독이다. 아무도 보지 못한 자신의 새로운 면을 봐준 류승완 감독은 그의 존경하는 형이자 든든한 조언자다.
“영화에서 평범한 캐릭터 만난 시작점이 승완이 형의 ‘부당거래’(2010)죠. 제게서 시골 청년의 순박하고 착한 이미지를 봤대요. 그런 사람은 정말 처음이었어요. 게다가 선하고 악한 연기가 다 된다는 좋은 말도 해주고요. 최근에는 너무 세고 무거워진다고, 얼굴이 굳어가는 것 같으니까 푸는 연습을 하고 편하게 가보라고 조언해줬죠. 이번 ‘그래, 가족’ 출연도 말하니까 잘했다더라고요.”
좋은 사람들이 곁에 있기 때문일까. 요즘 정만식은 그야말로 탄탄대로를 달리고 있다. ‘그래, 가족’ 개봉이 무섭게 오는 3월 신작 ‘보통사람’ 개봉을 앞두고 있으며, 얼마 전에는 ‘대장 김창수’ 촬영을 끝냈다. ‘대장 김창수’는 명성황후 시해범 살해죄로 수감된 청년 김창수가 독립운동가 ‘대장 김창수’로 거듭나기까지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다.
“진짜 뜨겁게 만들었고 의미 있는 작업이었어요. 그분의 20대 이야긴데 어떻게 나올지는 모르겠어요. 성인군자로 그리기보다 평범한 인물로 그가 교육에 대해서 이 나라에 무엇이 필요한지를 처음 느끼는 시절을 담백하게 그리려고 노력했죠. 또 이게 배우들이 굉장히 잘 뭉쳤어요. 우리 ‘음주’ 조진웅 선생의 종례시간이 있거든요. 항상 그 방에 모여서 술을 마셔야 끝이 났죠(웃음). 정말 즐겁게 한 작업이라 더 기대되네요.”
[뉴스핌 Newspim] 글 장주연 기자 (jjy333jjy@newspim.com)·사진 이형석 기자(leehs@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