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아이의 "형, 누나들을 잊지 않겠습니다" 부터
희생자 부모 "사랑한다는 말 수천번 해도 아쉽고 아쉬워"
친구들의 애끊는 그리움까지...줄잇는 추모 행렬
[뉴스핌=김규희 기자] “우리는 너희를 절대 잊지 않을게. 꼭 기억할게.” “꿈에 나와달라고 간절히 빌면서 잠을 자기도 한다.”
7일 새해 첫 광화문 촛불집회에 참석한 세월호 참사 생존 학생들은 친구들을 이렇게 그리워했다.
'살아 나온 것이 죄'가 돼버린 생존학생들의 친구들은 지금도 18살이다. 2014년 4월 16일 단원고 2학년 학생을 실은 세월호가 진도 팽목항에서 침몰한 이후 단원고 2학년 교실의 시간은 멈춰버렸다.
세월호 참사 1000일을 맞은 9일 오전 추모객들이 경기도 안산교육지원청에 마련된 단원고 기억교실을 찾아 내부를 둘러보고 있다. <사진=김학선 사진기자> |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지 1000일이 된 9일 오전 많은 이들이 안타깝게 세상을 떠난 아이들을 위로하기 위해 단원고 기억교실을 찾았다.
안산교육지원청 단원고 4·16 기억교실에 발을 들이자 처음 눈에 보이는 것은 방명록이었다. 지난 주말 한 가족은 함께 이 곳을 찾아 글을 남겼고, 한 어린아이는 삐뚤빼뚤한 글씨로 '형, 누나들을 잊지 않겠습니다. 세월호 잊지 않겠습니다'고 썼다. 사람들은 길게 줄서서 각자의 슬픔을 방명록에 남겼다.
교실은 추모 글귀로 가득했다. 교실 맨 앞 커다랗게 놓인 칠판은 추모객들의 글로 꽉 채워졌다. ‘준민아 보고싶다’ ‘동진아 사랑해’ ‘위에서도 같이 야구하자. 주장이라 불러줘서 고마워’ 추모객들은 칠판에 가득한 문구들을 바라보고 눈물을 흘렸다.
천안에서 왔다는 이 모씨는 “꼭 한 번 와서 추모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며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지 1000일이 돼서야 아이들을 찾아오게 돼 짐을 덜게 됐다”고 말했다. 이 씨는 “아이가 아프기만 해도 가슴이 찢어질 것만 같은데 하늘로 떠나보낸 유가족들은 오죽하겠냐. 희생자 유가족께 위로의 말씀을 드리고 싶다”고 말하며 끝내 눈시울을 붉혔다.
세월호 참사 1000일 째를 맞이한 9일 오전 경기도 안산교육지원청에 마련된 단원고 기억교실. <사진=김학선 사진기자> |
교실 속 시간은 멈춰버린 듯 했다. 한 책상 위엔 제주도 수학여행을 안내하는 가정통신문이 놓여있었다. 시간을 먹어버린 듯 통신문 귀퉁이가 누렇게 변했지만 수학여행을 떠날 생각에 신났을 아이들의 모습이 선했다. 단원고 학생들은 섭지코지와 용머리해안, 오름 등 제주도에서 여행을 즐길 예정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제주도 땅을 밟지 못했다.
책상 위엔 아이들의 얼굴이 나온 사진이 놓여있었다. 얼굴 옆엔 좋아하던 과자들과 꽃, 그림들이 수놓아져 있었다. 친구들이 보낸 편지들 속에는 사랑한다는 속삭임들로 가득했다. 특히 아이에게 해준 것이 없어 하염없이 미안하다고 스스로를 자책하는 부모의 편지가 눈에 띄었다.
이영만 학생의 어머니는 편지를 통해 “엄마가 보내준 새 운동복 한 벌 잘 받았지? 그 예쁜걸 (너) 있을 때 입혀줬으면 좋았을텐데 어찌나 후회되고 아쉬운지”라며 “아들, 엄마 걱정하지 말고 그 곳에서 아들만 행복하고 편히 잘 쉬고 있길 바랄게. 사랑한다는 말 미안하다는 말 수천번을 해도 아쉽고 아쉬워”라고 했다.
세월호 참사 1000일 째를 맞이한 9일 오전 경기도 안산교육지원청에 마련된 단원고 기억교실. <사진=김학선 사진기자> |
2학년 6반 교실 앞에서 만난 박범석 염광고등학교 교사는 “정말 안타깝다. 하루 빨리 세월호의 진실이 규명돼야 한다”고 말했다. 박 교사는 답답해 하면서도 조금이나마 세상이 바뀌는 것 같다며 희망을 말했다.
그는 “처음엔 사회 이슈나 세월호 문구를 교실에 붙여놓으면 나도 모르게 떼어졌고 반발하는 교사들도 있었다. 시간이 흘러 관심이 없던 아이들이 스스로 촛불집회에 참석하고, 세월호 진상규명 요구가 활발해지면서 아이들이 세월호 참사를 진심으로 대하게 됐다”고 전했다.
[뉴스핌 Newspim] 김규희 기자 (q2kim@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