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부산=글 장주연 기자·사진 김학선 기자] 스크린과 브라운관을 종횡무진 오가며 활약하고 있는 배우 한예리(32)가 이번엔 부산국제영화제(BIFF)를 찾았다. 출연작 ‘춘몽’이 제21회 BIFF 개막작으로 선정된 것. 장률 감독의 10번째 장편 연출작 ‘춘몽’은 예사롭지 않은 세 남자 익준, 정범, 종빈과 보기만 해도 설레는 그들의 여신 예리가 꿈꾸는 그들이 사는 세상을 담았다. 배우들의 본명을 그대로 가져온 이 영화에서 한예리는 예리를 열연했다.
“영화 찍으면서는 어떤 기대도 안했죠. 17회 차 중 17회 차를 찍었고(웃음), 감독님께 뜻깊은 작품으로 남았으면 좋겠다 싶었어요. 개인적으로는 너무 행복하게 촬영해서 그것만으로도 만족했던 작품이에요. 근데 이렇게 좋은 시기, 좋은 장소에서 ‘춘몽’을 개막작으로 선보일 수 있어서 영광스럽다는 생각이 크죠. 그리고 영화를 본 소감을 묻는다면 굉장히 만족스러워요. 생각만큼 되게 사랑스럽고 가슴 찡하게 나온 듯하죠.”
앞서 소개됐듯 예리는 세 남자의 여신이다. 하지만 막상 예리의 삶에 들어가 보면 고단하고 힘든 나날의 연속이다. 수색역 건너편 DMC 한국영상자료원에서 보는 무료영화가 그의 유일한 낙. 한예리는 자신의 마음을 그 모든 것을 다 담고 괜찮은 척하는 예리의 모습을 보면서 “참 마음이 짠했다”고 말했다. 그 탓에 눈물을 흘릴 날도 많았다.
영화 '춘몽'에서 함께 연기 호흡을 맞춘 배우 한예리(왼쪽부터), 윤종빈, 양익준, 박정범 <사진=㈜스톰픽쳐스코리아> |
“전 예리가 모두의 꿈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초반에 좀 더 나른한 느낌을 가져가고 싶었죠. 동시에 감정은 지나칠 수 있을 정도로 미묘하고 얇게 그리고자 했어요. 예리가 꿈이 되려면 흩어지는 느낌이어야 한다고 생각했죠. 꿈은 꿀 때는 또렷하지만 깨고 나면 기억이 안나잖아요. 예리도 그랬으면 했죠. 익준, 정범, 종빈에게 본인의 매력이나 표현할 때도 한 번에 쏟아놓지 않고 조금씩 보여주잖아요. 나쁜 표현일 수 있는데(웃음) 흘리는 느낌을 중간중간 보여주고 싶었어요.”
예리에게 마음을 뺏긴 익준, 정범, 종빈 역을 맡은 이는 양익준, 박정범, 윤종빈. 사실 세 사람은 배우이기 이전에 수준급 연출 실력을 인정받은 감독들이다. 문득 배우가 감독을 상대로 대사를 주고받는다는 건 어떤 기분일지 궁금했다. 그것도 한 명도 아니고 세 명씩이나.
“전부터 잘 알던 사이라서 부담은 없었어요. 오히려 세 분이 정말 많은 준비를 하셨더라고요. 정말 훌륭한 배우라고 생각했죠. 물론 연기도 정말 잘하시고요. 또 다른 작품으로도 뵙고 싶어요. 감독과 배우, 어떤 롤도 만나도 너무 좋을 듯하죠. 셋 중 한 명을 고르라면요? 다 똑같아요. 찍으면서도 한쪽에 치우치지 말고 엄마처럼 공평하게 애정을 주자고 생각했거든요. 그리고 셋이 함께라서 더 좋은 게 아닐까요? 패키지 선물 꾸러미처럼. 만약 한 명이라도 없으면 아쉬울 듯해요. 극중 예리도 셋하고는 살아도 한 명하고는 같이 안살 거예요(웃음).”
한예리는 이처럼 모두가 한마음이 돼서 촬영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따로 있다고 했다. 바로 이 작품을 진두지휘한 장률 감독이다.
“이야기는 충분히 나누되 선택은 배우가 하게끔 해주세요. 모든 스태프와 배우에게 각자 스케치북을 나눠주고 ‘네 마음대로 그려봐라’고 하는 느낌이죠. 그래서 재밌고요. 똑같이 따라 그리는 게 아니라 내가 하고 싶은 걸 표현하라고 해주시니까요. 감독님은 배우가 어떤 지점까지 빨리 오기 바라시기보다 잘 찾아오길 바라시는 듯해요. 그래서 더 감사했고 더없이 즐거운 현장이었죠. 상대방의 말을 진심으로 들을 수 있는 편안한 시간이었어요.”
장률 감독의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한예리는 ‘춘몽’이라는 스케치북에 다양한 그림을 그려갔다. 그중 뇌리에 깊이 남은 건 한예리의 춤.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한국무용을 전공한 한예리는 전작 ‘최악의 하루’에 이어 또 한 번 춤 실력을 뽐낸다.
“‘최악의 하루’에서는 동작이 분명하고 무용을 한 사람의 느낌이라면 여기선 조금 더 율동에 가깝죠. 하지만 어쨌건 예리가 춤과는 먼 사람이 아니라는 느낌을 주고 싶었어요. 그리고 마지막은 좀 더 꿈같길 바라서 몽환적인 두세 동작을 반복적으로 구성해서 췄죠. 보통 춤은 현장에서 느껴지는 감정으로 만들어요. 그때는 (유)연석 씨가 예리의 이상향으로 나와서 ‘님아’라고 붙여서 세 동작 정도를 만들었죠.”
춤은 배우 한예리만이 가진 또 다른 강점. 한예리 역시 그걸 모르지 않는다. 더욱이 춤을 향한 한예리의 애정은 연기 못지않다. 배우 활동 틈틈이 무용수로 무대에 오르는 이유도 바로 이 애정에서 비롯된 것. 올 10월 예정된 공연이 취소돼 아쉬웠다던 한예리는 올해 안에 꼭 공연하겠노라 다짐했다.
“올해 안에는 어떻게든 하려고 해요. 어쩌다 보니 올해는 좀 바쁘게 보냈어요. 올해 목표가 가볍게 생각하고 많은 걸 해보자여서 이렇게 됐죠(웃음). 어쨌든 부지런히 움직였고 만족스러운 시간이었어요. 더욱이 그 안에서 저의 다양한 매력을 봐주신 분들이 많아서 기분도 좋죠. 예전에는 센 역할만 할 수 있는 배우라고 생각해주셨다면, 이제는 여성성 같은 또 다른 매력을 봐주시는 듯해요.”
봄부터 가을까지, 누구보다 바쁜 시간을 보낸 한예리의 차기작은 미정이다. 바쁜 일정 속에서도 소중한 사람과 함께 하는 시간, 스스로를 점검하는 시간도 놓고 싶지 않다고 했다.
“차기작은 아직 정하지 않았어요. 이번 추석 때 모처럼 쉬어서 여동생이랑 일본으로 휴가를 갔어요. 잠도 많이 자고 쉬면서 스스로 점검하는 시간이 됐죠. 그리고 그 시간이 참 중요하다는 걸 알았고요. 좋아하는 사람, 소중한 사람과 시간을 보내는 것도 마찬가지죠. 차기작을 정하진 않았지만, 올 한해 그랬듯 또 한 번 이기적으로 선택하지 않을까 해요. 제가 하고 싶은 것, 호기심이 생기는 영화나 드라마 말이에요.”
[뉴스핌 Newspim] 부산=글 장주연 기자 (jjy333jjy@newspim.com)·사진 김학선 기자 (yooksa@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