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둔화·시장조성자 부족 등 거시 요소 변화"
"미스프라이스 발생 가능성도 봐야"
[뉴스핌=김성수 기자] 최근 국제유가와 뉴욕 증시가 동반 하락하면서 높은 상관관계를 갖는 것은 과거 경험에 비추어 보면 이례적이지만, 이는 비정상적인 것이 아니라 큰 그림에서 봤을 때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2일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지난달 국제유가와 주식시장의 상관계수가 0.9를 넘어 완벽한 동조에 가까웠다면서, 이는 26년 만에 최고 상관관계라고 분석했다.
◆ 26년 만에 최고 상관관계
상관계수는 두 변량 사이의 상관관계를 나타내는 수치로 마이너스 1에서 플러스 1 사이에서 움직인다. 마이너스 1이면 완벽한 음의 상관과계를, 플러스 1이면 양의 상관관계를 보여주는 것이다. 무상관일 경우 상관계수는 제로(0)가 된다.
평소 국제유가와 미국 주가는 음(-)의 상관관계를 보인 경우가 많은데, 현재와 같은 불안장세에는 높아진 경기 우려에 따라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는 특성이 있다. 2008년의 경우에도 상관계수가 0.8까지 치솟았다.
즉 유가 하락이 주가 하락을 촉발하고, 이는 다시 유가 하락을 초래하면서 악순환의 고리를 형성하고 있다는 게 일부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이 같은 해석이 맞다면, 유가와 주가의 커플링은 곧 이별을 예고하는 것이기도 하다는 분석이 힘을 얻는다.
하지만 최근에 양쪽 시장이 같이 하락하는 것은 유가와 주가 둘 만의 상관성 때문이라기 보다는 시장 전반에 영향을 주는 요소들 때문이라는, 새로운 '뉴노멀'의 특징이라는 분석도 제기된다.
최근 1년간 서부텍사스산원유(WTI) 추이(주황색)와 S&P500지수 수익률 추이(파란색) <사진=블룸버그통신> |
모하메드 엘-에리언 알리안츠 수석 경제고문은 지난 1일 자 파이낸셜타임스(FT) 기고문에서 최근에 유가와 주가가 같은 방향성을 보이는 데는 세 가지 이유가 있다면서 이러한 새로운 시각을 제시했다.
◆ 양자 관계보단 거시적 배경 변화를 보라
우선 중국 등 신흥국 우려에 따른 글로벌 성장둔화 전망이 주 원인으로 꼽혔다. 성장이 둔화될 경우 원유 수요가 줄어들 뿐만 아니라 기업 실적에도 부정적 충격을 줄 것으로 예상돼 두 시장 모두에 하락 요인이 된다.
다음, 각각의 시장에 안전망 역할을 하는 주체가 없어진 것도 유가와 주가의 '커플링'의 배경이 됐다는 분석이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가 약 10년 만에 기준금리를 올리기 시작하면서 주식 투자자들은 중앙은행의 양적완화와 초저금리 기조에 더 이상 기댈 수 없게 됐다. 또 원유 시장에서도 세계 최대 석유 생산국 사우디아라비아 주도의 석유수출국기구(OPEC)가 감산 합의에 잇따라 실패하면서 가격 조정자 역할을 맡을 주체가 사라진 상태다. 이렇게 해서 주식과 원유에 대한 투자 심리를 더 부정적으로 만드는 요소가 되고 있다.
마지막으로 시장이 과열되거나 위축되었을 때 이를 해결하기 위해 나설 만한 큰 손이 없다는 데 있다. 금융위기 후 정부 규제가 강화되면서 은행이나 브로커 딜러 등 이전에 시장조성자(마켓메이커) 역할을 하던 세력들이 시장에 영향력을 미치지 못하게 됐다.
노르웨이 국부펀드 등 대형 기관 투자자들도 금융위기 트라우마로 이전과 달리 여유 현금을 보유하지 않고 있다.
결국 유가와 주가가 동반 하락하는 것은 어느 한 쪽이 하락하며 다른 한 쪽에 충격을 전염시키기 때문이라기 보다는, 두 가지 자산을 모두 약세장으로 이끄는 거시적 요인들의 변화 때문이라는 게 엘-에리언 고문의 설명이다.
그는 "원유와 주식 트레이더들은 (최근 약세장에 대해) 상대방을 탓하기 보다 큰 그림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며 "시장 변동성이 확대되면서 하락장이 발생하는 것이나 이는 장기 수익률을 얻을 기회로 역이용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 거시, 유가, 주가 모두 미스프라이스?
최근 1년간 서부텍사스산원유(WTI) 추이 <사진=블룸버그통신> |
암리타 센 에너지애스팩츠 원유 부문 수석 애널리스트도 미국 경제방송 CNBC와의 인터뷰에서 BP가 20년래 최악의 손실을 기록한 후 석유 관련주가 폭락한 것은 있을 법한 일이지만 그 때문에 유가가 하락하는 것은 설득력이 떨어진다고 지적했다.
센 애널리스트는 "석유 업체들은 실적 악화 때문에 프로젝트를 연기하거나 취소하면서 인력 감축에도 나서고 있다"며 "이는 유가가 반등하기 위한 바닥 다지기로 봐야 하는데, 원유 트레이더들은 이를 악재로 오해하고 유가 하락 쪽에 베팅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유가 하락이 수요 감소보다는 주로 공급 과잉에 의한 것이라는 점에서 유가와 주가의 상관관계가 지나치게 높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이럴 경우 주식시장 내에 일부 종목들은 과매도 상태에 진입했을 수 있다는 얘기다.
실제로 유가는 경기침체를 제대로 예측하거나 따라가지 않는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세계경제가 침체에 돌입했을 때에도 유가는 되레 상승했다. 또 1986년 사례에서는 4개월 만에 유가가 70%나 폭락했지만, 미국 경제는 그 전후로 꾸준히 성장했다.
[뉴스핌 Newspim] 김성수 기자 (sungsoo@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