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옥으로부터의 사색' 등 신 교수가 남긴 명문들
[뉴스핌=강필성 기자]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담론’ 등의 저서로 사랑받아온 신영복 성공회대학교 석좌교수가 15일 암으로 별세했다. 향년 75.
그는 2014년 희귀 피부암진단을 받은 후 투병생활을 하다 다른 장기로 암이 전이되면서 이날 9시 30분께 서울 북동 자택에서 숨을 거뒀다.
신 교수는 1941년 생으로 서울대 경제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한 뒤 군사 독재 시절, 육군사관학교 경제학 교관으로 일하다 이른바 ‘통일혁명당’ 간첩단 사건에 연루돼 1968년 투옥됐다.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신 교수는 1988년 8·15특사로 풀려나기 전까지 20년간 감옥생활을 했다.
그의 저서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은 옥중에서 느끼고 고뇌했던 230여 장의 편지와 메모를 담았다. 특사로 풀려난 뒤 출간된 이 책은 큰 반향을 일으켰다. 그의 문장은 때로는 가슴을 울리고 때로는 흠뻑 적시는 명문으로 꼽힌다. 그가 저서를 통해 남긴 성찰과 고민이 여전히 오늘날까지 사랑받는 이유다. 신 교수는 이 외에 ‘담론’, ‘강의’, ‘더불어 숲’ 등을 펴냈다.
성공회대는 16일 신 교수의 장례를 학교장으로 진행한다고 밝혔다. 빈소는 성공회대학교 대학성당에 이날 오후 2시부터 18일 오전 11시까지 마련된다. 빈소 운영시간은 16일 오후 2시~저녁 10시, 17일 오전 8시~저녁 10시이며, 18일은 오전 8시~11시까지다. 영결식(발인)은 18일 오전 11시 성공회대학교 대학성당에서 거행된다. 유족으로는 부인 유영순 씨(68)와 아들 지용 씨(26)가 있다.
다음은 신 교수가 남긴 명문들이다.
<사진=더불어숲(신영복 공식 사이트)> |
"없는 사람이 살기는 겨울보다 여름이 낫다고 하지만, 교도소의 우리들은 없이 살기는 더합니다만 차라리 겨울을 택합니다. 왜냐하면 여름 징역의 열 가지 스무 가지 장점을 일시를 무색케 해버리는 결정적인 사실, 여름 징역은 자기의 바로 옆사람을 증오하게 한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모로 누워 칼잠을 자야 하는 좁은 잠자리는 옆사람을 단지 37℃의 열덩어리로만 느끼게 합니다. 이것은 옆사람의 체온으로 추위를 이겨나가는 겨울철의 원시적 우정과는 극명한 대조를 이루는 형벌 중의 형벌입니다." -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여름징역살이’
“옥뜰에 서 있는 눈사람, 연탄조각으로 가슴에 박은 글귀가 섬뜩합니다. ‘나는 걷고 싶다’ 있으면서도 걷지 못하는 우리들의 다리를 깨닫게 하는 그 글귀는 단단한 눈뭉치가 되어 이마를 때립니다. 내일 모레가 2월 초하루. 눈사람도 어디론가 가고 없고 먼 데서 봄이 오는 기척이 들립니다.”-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나는 걷고 싶다’
“사회의 거대한 메커니즘 속에서, 지구의 자전처럼 개인이 느낄 수 없는 엄청난 ‘힘’들의 틈바구니 속에서, ‘종이 호랑이’만도 못한 이 서투른 문신이 이들의 알몸을 어떻게 지켜줄 수 있을까…. 생각하면 불행한 사람들의 가난한 그림입니다. 하루의 징역을 끝내고 곤히 잠들어 고르게 숨쉬는 가슴 위에 사천왕보다 험상궂은 얼굴로 눈떠 있는 짐승들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차라리 한 마리의 짐승을 배워야 하는 그 혹독한 처지가 가슴을 저미는 아픔이 되어 가득히 차오릅니다.“ -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보호색과 문신’
“나무의 나이테가 우리에게 가르치는 것은 나무는 겨울에도 자란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겨울에 자란 부분일수록 여름에 자란 부분보다 훨씬 단단하다는 사실입니다. 햇빛 한 줌 챙겨줄 단 한 개의 잎새도 없이 동토에 발목 박고 풍설에 팔 벌리고 서서도 나무는 팔뚝을, 가슴을, 그리고 내년의 봄을 키우고 있습니다. 부산스럽게 뛰어다니는 사람들에 비해 겨울을 지혜롭게 보내고 있습니다.” -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나이테’
[뉴스핌 Newspim] 강필성 기자 (feel@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