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극장’에서 경찰공무원에서 큰 빚으로 바닥까지 내려온 전철 씨의 일상을 소개했다. <사진=인간극장 방송 캡처> |
'인간극장' 경찰공무원에서 '빚쟁이'된 전철씨, 신문배달·고물 주우며 오늘도 달린다
[뉴스핌=대중문화부] ‘인간극장’에서 경찰공무원에서 큰 빚으로 바닥까지 내려온 전철 씨의 일상을 소개했다.
7일 방송된 KBS1 TV ‘인간극장’ ‘전철은 달린다’ 4부에서는 빚쟁이 신세로 고향을 떠난 지 13년 만에 고향에 방문한 전철 씨의 모습이 그려졌다.
대구에서 경찰 공무원으로 파출소 경감까지 지냈던 전 철(68)씨. 22년간 공직생활을 하면서 생활이 어려운 청소년들을 위해 야간학교도 개설하며 ‘불우근로 청소년의 대부’로 여러 상도 받고, 청와대로 초청돼 노태우 대통령과 오찬을 즐기는 등 소위 잘나가는 경감이었다.
중학교 영어 선생님이었던 아내 우은숙(67) 씨를 만나 100평이 넘는 정원이 있는 집에서 두 아들을 낳고 단란한 가정을 꾸렸다. 젊은 날 그는 무슨 일이든 승승장구했다.
그러던 어느 날, 명예퇴직을 선언하고 뜻한 바가 있어 건설 회사를 차렸다. 의욕과 욕심이 너무 컸던 탓일까? IMF가 시작될 무렵, 사업은 큰 실패로 거액의 빚을 얻고, 가족들은 뿔뿔이 흩어지게 됐다.
그때부터 돈 빌리러 다니는 빚쟁이 신세로 3년을 버틴 전 철 씨. 자신의 퇴직금은 물론 아내의 퇴직금과 쌈짓돈, 논밭 수천 평에 선산까지 은행 빚 경매로 다 날리고, 그 와중에 아버지는 화병으로 돌아가셨다.
전 철 씨는 영등포에서 노숙자 생활로 방황하기도 하며 몇 번을 죽음의 문턱과 마주했지만, 어머니에게 진 빚 때문에 차마 죽을 수 없었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여동생의 남편, 매제를 찾아가 그의 도움으로 인테리어 회사 창고지기 일을 시작한 전 철 씨. 창고에서 먹고 자며, 전국각지로 필요한 물품이나 자재를 배달했다.
이외에도 빚을 갚기 위해 본업 외에 돈이 될 수 있는 일은 악착같이 찾아서 하기 시작했다.
365일 중 360일은 하루 한 끼 라면이 주식이다. 새벽 1시에 일어나 신문배달부 중 최고령이지만 항상 1등으로 출근해 신문을 돌리고, 신문배달이 끝나면 동네를 돌며 고물을 줍기 시작하는 전 철 씨. 고물을 줍다보면 음식물 쓰레기나 오물을 뒤집어쓸 때도 있지만, 그럴 때면 울고 싶고 주저앉고 싶은 마음이 통쾌해질 때까지, 더 크게 웃는다.
고물 양이 많은 날엔, 고깃배가 만선한 기분이 들만큼 뿌듯하다.
한땐 사람들의 이목과 체면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그는 그간 쓰고 있던 허위의 철가면을 벗게 된 것만으로도 고난을 지나온 충분한 보상을 받았다고 말한다.
이제는 작은 일에서 얻는 가치를 알았고, 30여 년 허송세월을 보냈기에 1분 1초도 헛되이 보낼 수가 없다.
명문여대 출신의 영어교사였던 그의 아내 은숙 씨. 사모님 혹은 선생님 소릴 들으며 남부럽지 않았던 은숙 씬 곤두박질 친 현실에서 버텨내려 안 해본 일이 없었다.
학교를 그만둔 채 정수기 외판원부터 식당 일, 텔레마케터까지, 생업에 뛰어들어 고생스러운 일을 도맡아하며 두 아들과 시어머니 그리고 삼십여 년 전 시어머니가 양녀로 데려온 시누이(지적장애2급)까지 건사했다.
남편 전 철 씨가 빚을 거의 다 갚아 이제 숨을 돌릴 때도 됐지만, 부창부수라고, 은숙 씨도 여전히 요양보호사 일을 하고 있다. 그리고 퇴근 후엔 남편을 위한 따뜻한 밥상을 차려내는 변함없는 현모양처다.
또 한 사람. 전 철 씨에겐 보배요, 은숙 씨에겐 수호천사라 불리는 전 철 씨의 사촌 여동생 연숙(51) 씨도 가족의 일원. 지적 장애 2급인 그녀는, 여덟 살 무렵 전 철 씨의 어머니가 양녀로 데려왔다.
그 후 줄곧 어머니 곁에서 살다 지난 해 돌아가시기 전까지 어머닐 지극정성으로 챙겨준 은인이다. 현재는 혼자 창고지기를 하는 오빠의 보조역할도 톡톡히 해내고, 은숙 씨의 집안일도 곧잘 거든다. 어머니에게 그랬듯, 이젠 부부에게도 없어선 안 될 존재다.
공부를 곧 잘하던 전 철 씨의 두 아들. 형편이 어려워지며 아버지의 경제적 지원을 전혀 받지 못한 자식들이지만, 아버지가 가진 마음의 빚을 덜어주듯 두 아들은 번듯하게 성장했다.
첫째아들 덕호(37) 씨는, 제법 인기 있는 인디밴드의 보컬 가수로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살고 있고, 둘째아들 두호(36) 씨는 아버지의 뜻대로 법대를 나와 변호사가 되었다.
아버지의 뜻에 따라 주말이면 창고 옆 컨테이너에서 동네 사람들을 위한 무료법률상담도 하고 있다.
가장의 과오를 묵묵히 참아 준 가족들에게 큰 빚을 졌다고 생각하는 전 철 씨는 오늘도 빚 갚는 심정으로 달리고 또 달린다.
전 철 씨는 5억에 가까웠던 빚을 현재 거의 청산한 상태지만, 마지막 빚이 남아있다.
오래 전 야간학교의 제자가 고맙게 빌려준 2천만 원 중에서 백여만 원 가까운 돈이 조금 남았다.
그 빚은 지금 당장이라도 갚을 수 있는 액수지만, 그는 두고두고 갚고 싶다. 빚 그 이상의 고마움까지 평생을 갚아야 하기 때문이다. 은인을 만나러, 도망치듯 떠나왔던 고향 길을 그가 이제 당당하게 달려간다.
누군가는 하루 네 가지의 이상의 일을 하는 그에게 염려어린 시선을 보내지만, 이 년 후면 칠순을 바라볼 나이에 전 철 씨는 아직 일을 멈출 수 없다. 아직 그가 꿈꾸는 인생의 반전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전 철 씨의 ‘보배’ 여동생 연숙 씨가 인간의 존엄함을 갖고 살아갈 수 있도록 터전을 마련해 놓으려는 이유가 그 한 가지다.
그리고 종자돈이 마련된 후의 창업도 계획하고 있어 일을 하는 하루하루가 신바람이 난다.
은혜를 원수로 갚는다는 말도 있지만, 그는 거꾸로 원수를 은혜로 갚으려 한다. 처음엔 자신에게 치욕과 모멸감을 준 사람들에게 복수할 심정으로 칼을 갈며 살아왔지만, 이제는 자신을 가장 낮은 자세로 일하며 땀 흘려 번 돈의 가치를 깨닫게 한 그들에게 감사한다. 그들을 향해 최고 멋진 복수를 한 예순 여덟의 노장 전 철 씨는 “반전이 있고 역전이 있어 멋진 게 인생”이라고 말한다.
[뉴스핌 Newspim] 대중문화부(newmedia@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