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삼성가 영결식 참석해 애도...이재현 회장, 상중 두 차례 부친 찾아 오열
[뉴스핌=함지현 기자] 삼성가(家) '비운의 왕자' 고(故) 이맹희 CJ명예회장이 파란만장했던 삶을 뒤로 하고 영면에 들었다. 생전 고인의 삶은 가족과 떨어져 외로웠지만 마지막 만큼은 가족 품에서 마감했다.
故 이맹희 CJ그룹 명예회장의 위패를 든 이재환 재산커뮤니케이션즈 대표아들 이호준과 영정사진을 든 손녀 사위 정종환이 20일 오전 서울 중구 CJ 인재원에 영결식을 위해 들어서고 있다. <이형석 사진기자> |
20일 오전 8시. 서울 중구 필동 CJ인재원에서는 이 명예회장에 대한 영결식이 진행됐다. 위패는 이 명예회장의 손녀사위인 정종환씨(장남 이재현 CJ그룹 회장의 딸 이경후씨 남편)가, 영정은 고인의 손자인 이호준씨(차남 이재환 재산커뮤니케이션즈 대표의 아들)가 들었다.
목탁소리를 시작으로 약 한시간 동안 진행된 이날 영결식에는 직계가족들 뿐만 아니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이서현 제일모직 사장 등 범삼성가 일가친척들이 함께 추모를 했다. 다만 장남인 이재현 CJ회장은 영결식에 참석하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와 정대철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 손병두 박정희대통령기념재단 이사장, 임태희 전 대통령실 실장, 최경환 경제부총리 등 외빈도 함께 모였다.
영결식은 김동건 아나운서가 진행하고 추도사는 김창성 전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이, 조사는 장례위원장인 이채욱 CJ그룹 대표이사가 맡았다.
김 전 회장은 추도사에서 "호방한 성품과 과감한 결단력을 겸비하였던 경영인, 가족들에게 한없이 미안한 마음을 간직하고 마지막 가는 순간까지 가슴 아파했던 아버지이자 아들, 항상 유쾌하고 격의 없이 친구들을 대했던 다정했던 나의 친구"라고 고인을 기억한 뒤 "그 동안의 힘들었던 삶을 내려놓고 평안히 쉬시라"고 말했다.
이 대표이사는 조사를 통해 "고독한 자리에서 오래도록 수많은 억측과 오해에도 개의치 않고 의연함을 잃지 않는 기개와 담담한 모습으로 오히려 우리에게 보이지 않는 힘과 교훈을 주셨다"며 "이제 우리는 명예회장님께서 이루시지 못한 꿈과 열정을 아드님이신 이재현 회장과 함께 이뤄 나가겠다"고 말했다.
영결식이 끝난 뒤 이 명예회장은 장지로 결정된 경기도 여주 CJ 일가 사유지에 안치됐다.
◆ '비운의 삼성가 황태자', 그의 파란만장했던 삶
이 명예회장의 삶이 처음부터 '비운'으로 시작한 것은 아니었다.
그는 본래 삼성가의 장남으로써 '차기 총수'로 불릴만큼 고 이병철 삼성 창업주의 1순위 후계자였다. 실제 그룹 내에서 삼성전자, 삼성물산, 제일제당, 중앙일보, 성균관대 등 총 17개 직책을 맡았던 실세기도 했다.
하지만 지난 1966년 터진 '한국비료 밀수 사건'의 여파로 야인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이병철 삼성 창업주는 밀수 사건으로 인해 회장자리에서 물러나고 이 명예회장이 공식 후계자 행보를 시작했다. 그런데 이병철 창업주는 이 명예회장이 밀수사건을 청와대에 투서하는데 연루됐다고 의심을 했다.
이 명예회장은 의심을 풀어보려 애썼지만 사이는 틀어지고 말았다. 결국 이 명예회장은 아버지의 뜻대로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후계자에 오르는 모습을 지켜봐야만 했다.
그는 이 회장이 삼성전자를 상속받고, 다른 남매가 각 기업 계열사를 상속받는 과정에서 아예 배제됐다. 현 CJ제일제당의 전신인 제일제당 역시 이 명예회장이 아닌 아들인 이재현 CJ그룹 회장이 물려받았다.
이 명예회장은 이병철 창업주 사후 제일비료를 설립, 재기를 노렸지만 성공하지 못했고, 결국 해외와 지방을 오가며 가족과의 교류도 없이 은둔생활을 이어갔다.
그러던 2012년 그는 이건희 회장을 상대로 상속소송을 벌이며 다시 세간의 관심을 끌었다. 2심까지 패한 이 명예회장은 주변의 만류로 상고를 포기하고 이 회장과 화해를 시도하려 했다. 하지만 이 회장이 급성심근경색으로 쓰러지면서 이 뜻마저 이루지 못했다.
그는 이 비슷한 시기에 폐암 2기를 진단받고 폐의 3분의 1을 절제하는 수술을 받게된다. 일본과 중국을 오가며 치료를 받았지만 결국 완치되지 않았고 지난 14일 중국에서 운명을 달리했다.
이 명예회장의 장지는 삼성가의 선영인 용인 에버랜드가 아닌 여주로 결정됐다. 결국 아버지가 묻혀있는 땅에 함께 눕지 못하게 된 것이다.
◆이재현 회장, 감염 우려에도 부친 찾아 마지막 가는길 '오열'故 이맹희 CJ그룹 명예회장의 운구차량이 20일 오전 서울 중구 CJ 인재원에 영결식을 위해 들어서고 있다. <이형석 사진기자>
이 명예회장의 장자인 이재현 CJ회장은 중국에서 이 명예회장의 시신이 운구된 지난 17일과 발인 전날인 19일 두 차례 입관식을 찾았다.
이 회장은 운명을 달리한 아버지를 처음 지켜본 17일 입관식에서 관이 닫히는 순간 끝내 참았던 눈물을 터뜨리며 크게 오열했다고 한다. 발인 전 마지막으로 아버지를 만나는 19일에는 입관실내 시신안치실에 있던 아버지의 관을 수차례 쓰다듬으며 눈물을 삼켰다.
다만 건강상의 문제로 빈소를 계속 지키지는 못했다. 그는 아버지의 빈소를 본인이 치료받고 있는 서울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 꾸리고 자신의 위치한 병동에 국한된 주거제한 변경신청까지 하면서 상주의 마지막 역할을 하려고 했지만 감염의 우려가 있어 입관식에만 참석했다.
이 회장은 지난 2013년 수천억원대의 횡령·배임·탈세혐의로 구속기소됐지만 신부전증이 악화되자 신장 이식수술을 받기 위해 구속집행정지 신청을 했다. 그런데 조직거부 반응이 일어나며 지금까지 서울대학교 병원에서 치료와 감염관리를 받아오고 있다. 뿐만 아니라 말초 신경 및 근육이 위축되는 유전병 '샤르콧-마리-투스'도 악화된 것으로 알려졌다.
두 부자는 평소 살가운 사이는 아니라고 전해진다. 야인과 같은 생활을 오래 한 이맹희 명예회장이 암에 걸린 이후에는 일본과 중국을 오가며 치료를 받았다. 때문에 물리적으로도 잦은 교류가 어려웠던데다 두 사람 간의 관계에 대해서도 많이 알려져 있지 않아 더욱 그렇게 느껴진다.
하지만 부자는 서로 살갑게 대하진 않았더라도 서로에 대한 애틋함을 갖고 있었다는 게 CJ측 설명이다.
이 명예회장은 자신의 회고록 '묻어둔 이야기'에서 "내가 보수적인 사람이어서 그런지 모르지만 아무래도 대할 때 마음이 늘 푸근한 것은 딸보다는 아들, 그 중에서도 맏아들"이라며 "'누구의 아들'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일생을 살아본 나는 재현이가 '누구의 맏손자'라는 이름으로 일생을 살아가게 된다는 점에서 애비로서 늘 가슴이 아팠다"며 아들에 대한 애틋함을 표현한 바 있다.
이 회장은 최근까지 이 명예회장의 생활비와 병원비를 상당수 지원해주기도 했다.
[뉴스핌 Newspim] 함지현 기자 (jihyun0313@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