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장주연 기자] 데뷔 3년 차 배우 김고은은 ‘제2의 전도연’ ‘포스트 전도연’이라 불린다. 범상치 않은 필모그래피 때문이다. 배우일 때만큼은 연기가 최우선인 그는 언제나 쉽지 않은 길, 새로운 길을 개척한다. 그리고 이 말은, 험난한 도전을 즐기는 ‘원조’가 바로 전도연이라는 거다.
언제나 파격적인 변신으로 관객을 즐겁게 해온 배우 전도연(42)이 또 한 번 새로운 칼을 뽑았다. 13일 개봉한 신작 ‘협녀, 칼의 기억’은 칼이 곧 권력이던 고려 말, 왕을 꿈꿨던 한 남자의 배신과 18년 후 그를 겨눈 두 개의 칼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무협 멜로다.
전도연은 대의와 복수를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한 맹인 검객 월소을 열연했다. 권력에 눈이 멀어 백성과 동료를 배신한 유백(이병헌)과 자신의 손에 무너진 대의를 완성하기 위해 18년에 걸쳐 검객을 기르는 인물이다.
“영화를 보고 당황스러웠어요. 아무 말도 못하겠더라고요. 감독님께서는 제 반응이 궁금해서 어떻게 봤냐고 여쭤보셨는데 묵묵부답했죠. 뭐라고 할 말이 없었고 제가 제 모습에 너무 당황했거든요. 아무래도 처음 보는 거라 저를 집중적으로 보는데 맹인 연기, 액션 연기할 때 단점이 도드라지더라고요. 안 좋은 것들이 극대화돼서 보였죠. 정말 어떡하지 싶었어요(웃음).”
그는 그렇게 자신의 부족한 점을 하나하나 짚어갔지만, 사실 월소의 검을 든 전도연은 액션도 맹인 연기도 뭐 하나 흠잡을 데 없이 해냈다. 물론 거저 얻은 건 아니다. 분명 그만큼의 땀과 눈물을 쏟았다. 액션신을 위해 무술·검술·와이어부터 고전 무용까지 배웠고 촬영하는 동안은 이쑤시개로 눈을 찌르는 통증을 참아냈다.
“해도 해도 안 되니까 좌절감도 생겼죠. 특히 맹인 연기 같은 경우는 정말 고통스러웠어요. 한두 시간 촬영하는 게 아니라 참는 데 한계가 있었죠. 점점 견딜 수 있는 초는 짧아지는데 계속 울고 이러니까 커트마다 얼굴이 달라 보여서 신경도 쓰였고요. 감정적인 소모와 육체적인 고통이 함께 왔어요. 나중에 눈이 잘못되지 않을까 싶더라고요. 정말이지 맹인 연기도 액션도 한번 경험해 본 거로 충분해요(웃음).”
계속되는 그의 진심 가득한 투정(?)에 이렇게나 고통스러운 길을 왜 선택했는지 묻지 않을 수 없었다. 더군다나 전도연은 ‘협녀, 칼의 기억’을 준비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박흥식 감독에게 과거 약속(두 사람은 ‘인어공주’ 촬영 당시 여자 검객에 대한 이야기를 함께하자고 했다)을 상기시킨 장본인이다. 혹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고 싶은 마음이었을까.
“그건 아니에요. 연기로 표현해야 하는데 제가 오히려 한계에 부딪힌 거죠. 드라마의 강렬함 때문에 그런 부분에 대해 안일하게 생각한 거예요. 근데 전 그 지독한 사랑 이야기가 너무 좋았어요. 굉장히 강렬했죠. 유백이 운명적인 사랑을 받아들이고 모든 걸 내려놓는 장면이 특히 좋았어요. (이병헌)오빠도 ‘내 마음의 풍금’ 때는 멋있다, 잘생겼다는 생각을 안했는데 이번 작품을 하면서는 정말 멋있다는 생각을 했어요.”
전도연의 마음을 흔든 이 사랑 이야기는 사실 영화의 관전 포인트이자 핵심이기도 하다. 하지만 전도연의 말처럼 눈빛으로 압도하는 이병헌과 혹은 애잔한 스토리가 전부는 아니다. 여기에는 분명 전도연이라는 가장 큰 이유가 있다. 전도연이라 함은 어떤 장르, 어떤 이야기의 영화에도 ‘사랑’을 녹일 수 있는, 힘이 있는 배우니까.
“그건 가장 큰 장점이자 단점이죠. 전 제가 다양하지 못한 배우라고 생각해요. 한군데만 갇혀서 쫓아가니까. 근데 그냥 제가 그래요. 사랑 없이 살 수 없는 사람이죠. 그러다 보니 어떤 유형이건 사랑 이야기에 끌리고요. 하지만 일부러 어두운 이야기를 찾는 건 아니에요. 이야기를 푸는 방식과 처한 상황이 무겁게 포장됐을 뿐이지 옛날이나 지금이나 더 비극적인 걸 찾진 않아요. 로코요? 가벼운 사랑은 들어오지도 않고(웃음). 개인적으로는 그거보단 블랙코미디에 호기심이 있어요.”
사랑이 많은 사람답게 다음 작품 역시 멜로로 정했다. 공유와 함께 호흡을 맞춘 차기작 ‘남과 여’는 눈 덮인 핀란드에서 만나 금지된 사랑에 빠진 남녀의 이야기를 담았다. 당연히 이번에도 마냥 밝고 가벼운 사랑은 아니다. 하지만 정작 또 한 번 험난한 사랑을 앞둔 그의 얼굴에는 환한 웃음이 번졌다.
“25년 동안 제가 이렇게 달려올 수 있었던 건 애정이 있었기 때문이죠. 물론 연기를 할 때가 가장 고통스럽지만, 그 조차도 너무 즐겁고 사랑해요. 지치게 되면 어느 순간 슬럼프일 수 있죠. 그리고 저 역시 슬럼프라는 시간 없이 25년이란 시간을 오진 않았어요. 분명 있었죠. 하지만 그때마다 지치지 않은 애정이 있었기에 이렇게 올 수 있지 않았을까 해요. 앞으로도 그럴 거고요(웃음).”
“딸이 배우 한다면 말리고 싶어요.” |
[뉴스핌 Newspim] 장주연 기자 (jjy333jjy@newspim.com)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