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화 약세 지속 어려워.."100엔당 950원 한계" 전망 많아
[뉴스핌=정연주 기자] 엔/원 환율이 그리스와 중국 연타에 치솟고 있다. 그간 엔화 대비 높은 수준을 유지했던 원화가 부진한 국내 펀더멘털에 발맞춘 정상 행보에 돌입했다는 분석이다. 다만 950원 선을 전후로 엔/원 환율 급등세에 제동이 걸릴 것이란 전망이 제기된다.
지난 27일 엔/원 재정환율(외환은행 고시기준)은 100엔당 944.71원을 기록했다. 이는 연고점이자, 지난해 11월 21일(945.02원) 이후 최고치다. 890원 선까지 추락하기도 했던 엔/원 환율은 지난 6월 26일 905.40원을 기록한 후 한 달 만에 40원이나 급등한 것이다.
7월 한 달간 주요국 통화 중 원화의 약세 속도도 가파르다. 원화 가치는 한 달여 만에 4.3% 하락해 호주 달러화, 헤알화 등에 이어 5번째로 높은 변동성을 보였다. 호주 달러 등이 원자재 통화인 것을 고려하면 사실상 가장 높은 수준의 변동성을 보였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15년 엔/원 재정환율(외환은행 고시기준) 추이 <자료제공=한국은행 ECOS> |
◆ 해외투자자 환헤지 비율 ↑..IMF 엔저 경고도
엔화 대비 원화 약세가 극심해진 계기는 그리스 채무불이행(디폴트) 우려가 불거지며 글로벌 위험자산 회피 심리가 확산했기 때문이다. 더불어 우리나라 수출 등 실물경제에 밀접한 중국의 증시 폭락까지 덮쳤다.
IMF(국제통화기금)가 2015년 한국과 일본의 연례협의 결과 발표에서 엔저를 경고한 점도 엔화 약세를 부담스럽게 하고 있다. 반대로 국내 경기 부진에도 높은 수준을 유지했던 원화가 약세 재료에 민감하게 반응하면서 그간 기술적으로 동조화됐던 엔화(안전자산)와 원화 환율의 간극이 커지게 됐다.
실제로 원화 자산에 투자해 온 해외 투자자들도 환헤지 비율을 높이고 있는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자금이탈 우려도 불거지는 모습이다. 7월 한 달간만 놓고 보면 외국인의 유가증권시장 순매도 규모는 1조7700억원에 달한다.
당국 개입도 당분간 기대하기 어렵다. 올해 엔/원 환율 900원 선 방어에 진땀을 뺐던 외환당국은 오랜만의 원화 약세를 내심 반기는 분위기다.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21일 외신기자간담회에서 "원화 약세를 쏠림으로 보진 않는다"며 최근 환율 분위기를 용인하는 듯한 발언을 내놨다.
◆ 금통위원도 원화절상압력 우려..엔/원 환율 940~950원대 등락 전망
다만 엔/원 환율이 이미 고점에 다다랐다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일시적인 충격에 따른 급등인 만큼 해소될 가능성이 크며, 향후 경상수지 흑자 등 원고(高)를 부추길 요소들이 우세하다는 판단에서다. 국내 경상수지 흑자 규모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8.5%에 달한다.
28일 공개된 7월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 의사록에서도 향후 원화 절상압력이 가중될 수밖에 없다는 금통위원들의 지적이 제기됐다.
A 금통위원은 "경상수지 확대와 주요국의 통화완화 정책 지속 등을 고려하면 원화 절상압력은 다시 두드러질 가능성이 크다"며 "수출 감소에 대해 기업과 정부 차원의 다각적이고 적극적인 대응책 마련이 매우 긴요하고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이에 전문가들은 엔/원 환율이 당분간 940~950원대를 등락하다가 중장기적으로 하락할 것이란 기존 전망을 이어가는 분위기다. 당장 전날부터 이틀간 진행될 미국 7월 FOMC(연방공개시장위원회)가 변곡점이 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이대호 현대선물 연구원은 "위험자산회피 심리에 단기적으로 엔화 대비 원화가 약세를 보였지만 오래가지 않을 것"이라며 "결국 미국 금리 인상 이슈로 넘어가면서 엔화 약세 베팅이 불거질 것이다. 엔화가 움직이기 시작하면 원화 변동 속도보다 더 빠르다"고 지적했다.
그는 "FOMC 결과 발표 이후 엔화가 어떻게 반응하는지가 중요하다'며 "미국 인상 시점으로 예정되는 9월에는 엔/원 환율이 다시 하락으로 가닥을 잡지 않을까 싶다"고 설명했다.
이창선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원화 약세는 좀 더 이어질 여지는 있지만 원화 환율이 상승한다면 환율 측면에서 투자 메리트가 생길 수 있다"며 "미국 금리 인상 이후 불확실성 완화로 달러 강세도 누그러지면서 경상수지 흑자와 원화 강세 요인 등이 부각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뉴스핌 Newspim] 정연주 기자 (jyj8@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