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법 개정안, 전염병과 무관...적용 대상·범위 넓혀야
[뉴스핌=김지유 기자] # 경기도 평택에 거주하며 서울 강남으로 출퇴근을 하는 B씨는 최근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에 걸린 것이 아닌지 불안에 떨고 있다. 평택과 강남구는 메르스 확산의 주요 지역으로 알려졌다. 환절기에 감기를 자주 앓는 B씨는 최근에도 기침이 잦고 코가 막히거나 열이 나는 등 증세가 나타났다. 하지만 병원에 가지 않았다. '요즘 같을 때 병원을 방문하는 것이 더 위험하다'는 말이 돌고 있기 때문이다.
# 메르스 확진 판정을 받은 한 경찰관이 최종 판정 전까지 병원 4곳을 옮겨 다닌 것으로 드러났다. 119번 환자인 A경사는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입국한 지인을 만난 후 발열 등 증세를 보여 평택의 한 병원을 찾았다. 이 병원은 다른 메르스 확진자가 진료를 받은 곳이다. A경사는 1차검사에서 양성판정을 받아 서울의료원에 격리됐다가 2차 검사에서 음성이 나왔다. 이후 지하철과 기차를 이용해 귀가했다. 그러나 증상이 개선되지 않아 아산 소재 병원에 재입원했다. 이후 상태가 악화돼 천안 소재 대학병원으로 옮겨졌고 메르스 확진판정을 받았다.
메르스가 주로 병원에서 감염된 것으로 드러나자 병원을 방문하지 않고도 치료를 받을 수 있는 '원격진료'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새누리당은 원격진료의료시스템을 도입하기 위한 '의료법 개정' 논의를 촉구하고 있다. 반면 의료계와 야당은 반대하고 있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메르스 사태를 언급하며 "이럴 때 원격의료시스템이 시작됐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밝혔다.
유승민 원내대표도 "이번 메르스 사태를 겪으면서 원격진료와 원격의료의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다"며 "이 문제를 국회 메르스 비상대책특별위원회에서 같이 논의하겠다"고 말했다.
▲ 국내에서 3명이 추가로 메르스 확진 판정을 받아 총 감염자 수가 18명으로 증가한 가운데 서울 종로구 서울대학교병원에 중동호흡기증후근 의심증상 관련 안내문이 설치되어 있다. <사진 = 이형석 기자> |
정부가 지난 해 4월 제출한 '의료법 개정안'이 원격의료시스템과 관련된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러나 법안을 들여다보면 취지와 대상, 범위 등이 이번 메르스와 같은 전염병에 별 도움이 되지 않게 규정돼 있다. 이에 법안 내용을 조정해야한다는 지적이 잇따랐다.
정부가 제출한 개정안의 원격의료 대상 환자는 장기간 진료가 필요한 고혈압·당뇨병 등의 만성질환자, 섬·벽지 거주자, 거동이 어려운 노인·장애인 및 일정한 경증 질환자 등이다. 이들 환자가 재진할 때 원격의료를 이용할 수 있다는 내용이다.
결국 이 개정안에 따르면 메르스와 같은 전염병이 돌 때 환자가 병원에 가지 않고 집에서 원격진료를 받을 수는 없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관계자는 "이번에 메르스와 관련해서 논의될 법안 중 원격의료가 골자인 의료법 개정안은 아직까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정부가 제출한 법안은 이전부터 여권에서 필요성을 제기했던 것으로 현재로서는 메르스 등 전염병과는 무관한 내용"이라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다만 상정해서 법안심사소위에서 논의를 통해 법안 내용을 얼마든지 바꿀 수 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내용을 수정한다고해도 원격의료를 광법위하게 허용해 메르스 사태와 같은 전염병에 대비하는 길은 요원하다는 지적이다. 이해당사자인 의료계가 강하게 반발하고 있고, 야당도 원격의료를 의료영리화로 규정해 반대하기 때문이다.
이종걸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표는 "새누리당이 메르스 위기를 기회로 의료영리화 의지를 밝히고 있다"며 "이는 여야가 이미 합의한 공공의료원 설립과 환자 격리수용을 위한 자원확보를 전면 부정하는 것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공공의료 시스템 강화"라고 지적했다.
전국의사총연합은 "감염성 질환을 원격의료를 통해 진료한다면 의사는 부족한 정보로 인해 결국 혈액 검사나 객담 검사 등을 남발할 수 밖에 없다"며 "이미 시범사업을 통해 만성 질환의 관리에도 문제점이 많다고 지적되는 원격의료를 감염성 질환에 적용한다면 이는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보건복지부는 지난해 9월부터 올해 5월까지 원격의료 시범사업을 운영한 결과 77% 환자가 만족했다는 결과를 발표했다.
[뉴스핌 Newspim] 김지유 기자 (kimjiyu@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