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철환의 문화의 향기<2> 문화의 생성과 고대문화
오늘날 지구상에는 각기 다른 문화적 전통을 지니는 다양한 민족이 살고 있다. 또 실제로 인류의 문화는 다양하게 전개되고 있으며, 그 차이가 경제형태· 물질문화· 사회조직· 종교· 세계관 등 문화의 모든 부문에 걸쳐 나타나고 있다. 그런데 특히 중요성을 띠는 것은 경제의 차이라고 할 수 있다. 경제가 문화에 끼치는 영향은 막대한 것이어서, 일정한 경제형태는 사회조직의 전개에 기본적인 골격을 제공할 뿐만 아니라 종교나 세계관에도 어떤 방향성을 제시하고 있다.
문화의 차이를 발생시키는 요인으로서는 경제형태 외에도 자연환경의 차이, 다른 집단으로부터의 고립, 역사적인 사건 등 여러 가지가 있다. 반대로 문화의 유사성을 가져오게 하는 요인 또한 경제형태, 비슷한 자연환경, 다른 집단과의 밀접한 관계 등을 들 수 있다. 이와 같은 요인들에 의하여 인류의 갖가지 문화유형과 문화영역이 출현한 것이다.
예를 들어보자. 유럽의 문화는 기독교를 바탕으로 하여 발전한 것이어서 전체적으로는 비슷한 모습을 보이고 있기는 하다. 그러나 자연환경에 따라 상당한 차이가 나고 있다. 즉 따뜻한 기후를 지닌 남유럽에서는 집밖에서의 생활이 보편화되어 자유롭게 소리를 지르거나 어디론가 돌아다니는 습성을 지니고 있으며 또 그런 생활에 익숙하다. 그래서 문화예술 작품도 이들의 기질이 반영되어 오페라나 미술작품들이 많이 만들어지게 되었다. 이에 비해 비교적 추운 기후에서 생활해야하는 북부 독일에서는 실내음악이 크게 발전했던 것이다.
기독교 내에서도 이런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기독교는 정통 가톨릭과 그리스정교, 그리고 개신교로 나누어져있다. 이들은 뿌리가 같으며 예수의 복음과 구원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세월을 거치면서 이들은 조금씩 다른 교리를 가지게 되었다. 가톨릭은 정통성과 엄숙한 분위기를 존중하나, 개신교는 복음에 대한 가르침을 좀 더 중시하는 성향을 보이고 있다. 이에 비해 그리스정교는 다소 신비주의 성향을 나타내고 있다. 그런데 이와 같이 각기 교리가 차별화되는 데에는 이를 믿는 민족과 지역성향의 차이도 한몫을 했다.
한편, 모든 인류문화에 공통적인 부분도 있다. 그 일련의 보편적 문화요소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으로서 언어가 있으며, 바로 이것은 인류문화의 기본적인 지주가 되고 있다. 또 어떠한 문화에 있어서도 인류는 음식물을 섭취하고 생식활동을 하며 살아가고 있다. 다만 그 구체적인 형식은 문화유형에 따라서 차이가 나게 된다. 서양 사람들이 밀로 만든 빵과 육류를 주식으로 하는데 비해, 동양인들은 쌀로 만든 밥과 채소 그리고 생선을 주로 먹고 산다. 남녀는 때가되면 결혼을 해 가정을 이루어 살게 된다. 그러나 결혼적령기는 다소 차이가 난다. 또 일부일처제와 근친혼(近親婚)금지가 보편적이나 그렇지 않은 민족과 나라들도 있다.
우리는 문화발전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러나 문화는 역사적 산물이다. 오랜 기간의 숙성과정을 거쳐 어떤 형태를 지닌 문화가 만들어지게 된다. 다시 말해 어느 날 갑자기 하루아침에 문화가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만약 문화의 연속성을 도외시하고 매일 새로운 것을 찾아내려고 한다면, 이상하거나 혹은 외관은 아름다울지 모르나 내용이 빈 것들만 만들어지게 될 것이다. 따라서 문화의 내용을 어떻게 형식적인 그릇에 담아 전달할 것이며, 본질은 무엇인지, 어떻게 소통해야 할 것인지에 대한 깊은 고민이 필요하다. 그리고 문화의 역사적 배경과 전개과정에 대해서도 연구와 고찰을 해오고 있다.
인류사회에 문명이 처음으로 발생한 지역은 티그리스 강과 유프라테스 강 사이의 메소포타미아 지역, 이집트의 나일 강 유역, 인도의 인더스 강 유역, 중국의 황하 강 유역 등 4지역이다. 특히 메소포타미아 지역은 인류최초의 문명의 발상지로, 서구 유럽인들은 이곳을 해가 뜨는 쪽의 땅 즉 ‘오리엔트(Orient)의 세계’로 불렀다.
그런데 이 문명발상지들의 공통점은 모두 큰 강을 끼고 북반구에 위치하고 있으며, 대부분이 기후가 온화하고 기름진 토지를 지닌 지역들이라는 점이다. 특히 강을 끼고 있어 농사를 짓기에 적합하였으며, 교통이 편리해 다른 지역과의 교류가 활발해 문명발생의 근거가 되었다. 기원전 5,000년경부터 이들은 강에서 물을 끌어들여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그리고 농업이 발달하면서 인구가 늘어나게 되었고, 청동기나 철기를 만들면서 농업이 아닌 다른 다양한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들면서 도시가 형성되어 갔다.
이처럼 도시가 형성되면서 신에게 제사를 지내거나 도시를 적으로부터 보호하는 역할을 맡은 사람들이 지배층으로 군림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들은 다양하고 복잡한 사회를 다스리기 위해 군사조직이나 정치조직을 가진 국가를 만들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문자도 만들어졌다. 이렇게 도시가 형성되고 문자를 사용하며 다양한 제도와 관습들이 합쳐져서 고대문명이 되었다. 고대 문명의 발상지에서 나타난 주요 유물과 유적으로는 우르의 지구라트, 수메르의 설형문자, 이집트의 미라를 모신 피라미드와 스핑크스, 중국의 갑골 문자 등을 들 수 있다.
이 4대문명 이후 나타난 주요 고대문명들로는 수메르인들이 세우고 함무라비법전으로 유명한 바빌로니아 문명, 로마알파벳 문자를 처음 만들어낸 지중해 연안의 페니키아문명, 그리고 오늘날 서양문명의 모태가 되는 그리스의 크레타문명과 미케네문명 등이다. 그런데 우리는 이들을 문명이라고 하지 문화라고는 잘 부르지 않는다. 그 이유는 이들이 인간내면의 숭고한 정신문화는 아직 형성하지를 못한 채, 사람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기본적인 물질과 제도, 관습을 만드는데 치중했기 때문이다.
이철환 하나금융연구소 초빙연구위원·단국대 경제과 겸임교수 ('아름다운 중년, 중년예찬'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