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글 김세혁 기자·사진 이형석 기자] 영화 ‘글래디에이터’(2000)의 막시무스로 세계 영화팬에게 커다란 감동을 안긴 배우 러셀 크로우(50)가 감독으로 데뷔했다. 심혈을 기울인 그의 첫 연출작품 ‘워터 디바이너’는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세 아들을 전장으로 떠나보낸 절절한 부정을 이야기한다.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된 이 영화에서 러셀 크로우는 아이들의 주검을 찾아 나서는 아버지 조슈아를 연기하며 배우와 감독 1인2역에 도전했다.
‘워터 디바이너’는 제1차 세계대전 중 8만 명에 달하는 사망자를 낸 갈리폴리 전투에 초점을 맞췄다. 아직 피지도 않은 아들 셋을 입대시켜놓고 생사도 모른 채 4년을 지낸 조슈아는 아내마저 세상을 떠난 뒤 무작정 아이들을 찾아 나선다. 러셀 크로우는 전쟁과 가족, 부성애에 주목한 이 영화가 한국인에게 큰 공감을 주리라 자신했다.
“뉴질랜드에서 태어났고, 4세 때 호주로 건너갔어요. 아시다시피 호주는 제1차 세계대전 당시 강압에 의해 전쟁에 참가해요. 수많은 젊은이들이 낯선 땅에서 피를 흘리며 죽어갔죠. 한국 역시 아픈 역사를 갖고 있죠? 전쟁의 공포와 그에 따른 엄청난 아픔을 아는 한국 관객들이 ‘워터 디바이너’를 보고 많은 부분 공감하리라 믿어요.”
필모그래피를 보면, 러셀 크로우만큼 순풍을 탄 배우도 드물다. 1990년부터 4년간 주로 호주 영화에 출연한 그는 1995년 샘 레이미 감독의 ‘퀵 앤 데드’에서 샤론 스톤, 진 핵크만 등 쟁쟁한 배우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주목 받았다. 단숨에 연기력을 인정받은 러셀 크로우는 ‘요람을 흔드는 손’ ‘리버 와일드’로 유명한 커티스 핸슨 감독의 ‘LA 컨피덴셜’(1997)로 엄청난 인기를 얻었다.
이후 그의 연기 인생은 탄탄대로였다. 마이클 만 감독의 ‘인사이더’(1999), 리들리 스콧 감독의 ‘글래디에이터’(2000), ‘어느 멋진 순간’(2006) ‘아메리칸 갱스터’(2007) ‘바디 오브 라이즈’(2008) ‘로빈 후드’(2010), 론 하워드 감독의 ‘뷰티풀 마인드’(2001)와 ‘신데렐라 맨’(2005) 등 내로라하는 명작에 줄곧 주연으로 출연하며 입지를 다졌다. ‘글래디에이터’와 ‘뷰티풀 마인드’는 그에게 아카데미와 골든글로브 남우주연상을 안겼다.
“리들리 스콧 감독과 다섯 작품이나 했네요. 실은 가장 존경하는 감독이기도 해요. 그의 작업은 정말 대단하거든요. 옆에서 들여다보는 것만으로도 공부가 되죠. 다른 감독들도 마찬가지에요. 연기를 하면서 언젠가 연출을 해봐야겠다는 결심은 거장들의 작업과정을 보며 자연스럽게 피어났죠.”
러셀 크로우 하면 ‘연기파’가 떠오를 만큼 그의 커리어는 대단하다. 하지만 누구나 그렇듯, 그 역시 지금의 자신이 있기까지 남모를 과정을 참고 견뎠다. 딱 봐도 우직해 보이는 그는 20대 시절 셀 수 없이 많은 무대에 오르며 스스로 채찍질했다.
“절대 쉽게 온 길은 아니에요. 아무도 모르는 연습벌레였죠. 영화에 데뷔하기 전 수 백 편의 연극에 출연했어요. 밴드활동도 했고요. 20대 땐 매일 새벽 5시면 공원에 가 솔잎들을 쓸어내고 희망사항을 땅바닥에 적으면서 마인드컨트롤을 했죠. 아무도 없는 공원에서 연기와 발성을 다잡았고요. 아마 호주에서 그렇게 연습한 배우도 드물 거예요.”
연기와 연출, 록밴드 활동 등 못하는 게 없고 다방면에 관심도 많은 러셀 크로우. 그는 놀랍게도 럭비팀을 가진 구단주이기도 하다. 럭비 광팬이라며 눈빛을 반짝인 그는 1980년대 럭비를 하다 앞니가 부러진 적도 있다.
“무명일 때 운동하다 앞니가 부러졌어요. 오디션을 보는 족족 미끄러졌죠. 앞니가 없다며 다들 고개를 저었거든요. 그런데 조지 오길비 감독만 이해해줬어요. 1990년 영화 ‘크로싱’에 주연으로 발탁됐죠. 제 데뷔작이자 연기인생의 터닝포인트에요. 이가 부러질 정도였지만 럭비사랑은 전혀 식지 않았어요. 제가 소유한 팀(사우스 시드니 레비토)은 우승까지 한 강팀이랍니다.”
영화 ‘워터 디바이너’에서 진한 부정을 이야기한 러셀 크로우. 작품 속에서 그는 삶의 전부인 아이들을 찾아 사지를 헤매는 가장의 애끓는 심정을 부모 입장에서 연기했다고 털어놨다. 실제로도 그는 영화 속 조슈아를 넘어서는 가족 사랑으로 유명하다.
“호주에 살고 있는 가족은 제 전부나 마찬가지에요. 가족의 소중함을 알기에 ‘워터 디바이너’의 실제 사연을 들었을 때 ‘아, 이거다’ 확신이 들었죠. 아마 아내와 아이들이 없었다면 지금의 저도 없었을 거라 확신해요. 세계를 돌아다니며 영화에 매진할 수 있는 원동력은 첫째도 가족, 둘째도 가족이죠. 그건 누구나 마찬가지일 거예요. 무엇보다 가족이 필요로 할 때 도움이 되는 가장이고 싶어요.”
[뉴스핌 Newspim] 글 김세혁 기자 (starzooboo@newspim.com) 사진 이형석 기자(hslee@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