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무기강 해이 경종에도 미숙한 언론대응도
[뉴스핌=노희준 기자] 권선주 기업은행장(사진)이 직원들의 근무기강 해이에 경종을 울렸던 것으로 뒤늦게 확인됐다. 자신의 '외유내강' 리더십을 직원들이 오해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의문까지 표했다고 한다. 이례적이라는 반응이 있을 정도였지만, 기업은행은 최근 미숙한 언론대응으로 기자들의 항의를 받아 권 행장의 불호령이 무색해졌다.
26일 기업은행에 따르면, 권 행장은 지난 10월께 임원회의에서 최근 흐트러진 직원들의 근무기강을 바로잡으라고 임원들을 질책했다. 직접적인 계기는 회의 당일 오전에 목격한 직원들의 부적절한 커피 휴식시간이었다. 권 행장은 이날 다른 회의에 참석하느라 오전 9시 20분께야 돼서야 본점 1층 로비를 지나게 됐다. 권 행장의 눈길을 붙잡은 건 그 시간까지 1층 커피숍에서 노닥거리던 직원들이었다.
권 행장은 이날 임원회의에서 이 문제를 꺼내들었다. 근무시간을 엄격히 지키는 게 당연한 자세인데 직원들이 근무시간에 업무에 집중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었다. 이런 근무기강 해이가 일선 현장의 잦은 금융사고로 이어지는 것 아니냐고 우려도 표했다. 특히 본인이 너무 유해 보이기 때문은 아닌지 자문하면서 앞으로 공사구분, 근무시간 준수 등은 분명히 하라고 엄중 경고했다.
이날 권 행장의 옐로카드는 이례적이라는 게 권 행장을 잘 아는 이들의 평이다. 권 행장은 취임 이후 '부드러운 리더십'을 줄곧 강조했기 때문이다. 한 기업은행 임원은 "취임 이후 그런 적이 없었는데, 그때는 정색을 하고 말했다"고 당시 분위기를 귀띔했다. 인사부에서는 이 일을 계기로 부서별로 근무기강 교육까지 한 것으로 알려졌다.
매우 신중하고 사려깊은 평소 스타일상 권 행장이 단순히 직원들의 커피 휴식시간을 문제삼은 것은 아닌 것으로 풀이된다. 실제 기업은행은 '모뉴엘 사태'에 비견할 바는 아니지만, 자잘한 금융사고가 일선 현장에서 이어지고 있는 게 사실이다. 최근에는 직원들이 잇달아 고객 돈을 마음대로 꺼내 쓰거나 거꾸로 자기 돈을 멋대로 빌려주고 이자를 챙기다 적발되기도 했다.
한 지점의 직원은 자기돈 1억1600만원을 거래처에 빌려주고 이자를 챙긴 것으로 드러났다. 다른 직원은 대부업체 대출금을 갚기 위해 현금금고에 보관 중이던 시재금 170만원을 횡령했다 돌려놓기도 했다. 또 다른 직원은 대출 원리금과 신용카드 이용대금 결제를 위해 시재금 300만원을 쌈지돈처럼 쓰다 덜미가 잡혔다. 이런 직원의 시재금 횡령 및 사적 금전거래, 신용카드 특별운용 한도 불철저 등의 금융비리가 밝혀진 것이 올해 국정감사에 보고된 이후 건만으로 총 3억원(2억9670만원)에 이른다. 시재금 횡령(4건)과 유용(1건)은 올해 드러난 것만 다섯번째다.
이번에는 금융사고가 아니라 기업은행의 미숙한 언론대응이 도마에 올랐다. 지난 23일 권 행장의 1주년 기자간담회에서 권 행장이 앉아있던 헤드테이블의 풀(Pool) 기자 취재 내용을 은행 공보실에서 일부 민감한 내용을 누락해 전달했다가 기자들에게 항의를 받았다. '풀 취재'는 장소의 협소함 등의 이유로 물리적으로 모든 기자가 취재할 수 없는 경우 언론과의 협의 속에 이뤄지는데, '풀 기자'를 정해 대표취재를 하고 그 내용을 나머지 언론과 공유한다.
기업은행 관계자는 "(권 행장이 직원들의 근무기강 해이와 금융사고를 연결하는)관점을 보인 것은 맞지만, 주기적으로 하시는 말씀이고 특별한 잘못이 있었기 때문은 아니다"며 "근무기강 교육도 특별히 따로 한 것이 없다"고 말했다.
[뉴스핌 Newspim] 노희준 기자 (gurazip@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