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계돌파'..시험에 강한 인재보다 직무역량 강한 인재 필요
[뉴스핌=이강혁 기자] 삼성그룹이 3급 신입사원 채용시 직무별로 전형을 다양화하고 지원자가 해당 직무에 적합하느냐 아니냐를 먼저 서류로 평가해 삼성직무적성검사(SSAT)를 보도록하는 내용을 골자로 채용제도 개편안을 5일 발표했다.
삼성이 1995년 '열린채용'을 시작하면서 SSAT를 시행한 이후 20년 만에 큰 줄기의 핵심 채용방식이 바뀐 것이다.
삼성 주변에서는 이번 채용제도 개편이 그동안 SSAT에 한해 20만명이 몰리는 등 사회적 비용이 증가한데 따른 해소책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실제 삼성 역시 이같은 문제로 SSAT 과열을 해소할 방안을 오랜기간 모색해 왔다.
그러나 더 중요한 이유는 따로 있다. 20년 묵은 제도의 문제점 개선과 더불어 한계에 직면한 각종 사업의 현실을 감안할 때 이를 돌파하기 위한 인재 확보에 전략적 변화가 필요했던 것으로 풀이된다. 미래 먹을거리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결국 시험에 강한 인재보다는 핵심 사업들에 바로 투입될 수 있는 직무역량이 강한 인재의 필요성으로 나타난 셈이다.
◆ 퍼스트무버, 직무역량 갖춘 창의적 인재 더 많이 필요
삼성이 이날 발표한 채용제도 개편안을 들여다보면 핵심은 ▲채용 전 단계에 걸쳐 전공능력과 직무적성 평가 강화, ▲획일적 시험 대신 직군별로 다양한 전형 절차 도입, ▲직군별 직무역량 평가 중심의 직무적합성평가 도입, ▲면접 전형에도 직군별 특성 반영, 창의성 면접 도입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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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삼성이 채용제도에 변화를 줄 것이라는 입장을 밝히면서 한해 20만명이 몰리는 SSAT의 개선이 이루어질 것이란 전망이 많았다. 결과적으로 SSAT 시험이 핵심일 것이라는 예측은 빗나간 것. SSAT 시행에 따른 과도한 사회적 비용 경감보다는 이번 개편의 주 목적은 연구개발이나 소프트웨어, 영업 등 각 직무에 꼭 필요한 인재를 제대로 뽑기 위한 개편으로 결론났다.
이같은 방향성은 삼성이 신입사원들의 업무성과 요인을 분석한 결과 연구개발직은 전공 능력이, 영업직은 리더십, 팀워크 등 직무적성이 SSAT 성적 보다 더 큰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까지는 직무와 상관없이 지원자 모두 똑같이 SSAT를 봐야 했고, SSAT 성적만으로 면접 대상자를 뽑았다. 때문에 전공능력이나 직무적성이 우수한 지원자라도 SSAT를 통과하지 못해 면접조차 보지 못하는 경우가 있었다.
삼성 관계자는 "SSAT 성적만으로는 각 직무별 특성을 제대로 반영해 평가하기 어려웠다"면서 "채용 제도를 직무별로 다양화함으로써 지원자들이 SSAT에 너무 매달리지 않고 전문성을 더 쌓을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삼성이 패스트팔로워에서 퍼스트무버로 변신하고 있는 상황에서 시험에 강한 근면성실한 인재 뿐만 아니라 직무역량을 충실히 갖춘 창의적 인재가 더 많이 필요하게 된 것도 채용제도 개편의 한 원인으로 분석된다.
삼성은 이에 따라 지금까지는 동일한 면접시간과 방식을 적용했으나 앞으로는 직군별로 다양화하고, 창의적 인재 선발을 확대하기 위해 기존 면접(직무, 임원)에 창의성 면접을 추가하기로 했다.
바뀐 면접은 직무별로 확연하게 다른데, 예를 들어 연구개발·기술직은 실제 프로젝트 수행 능력을 평가하고, 금융 영업직은 종일 면접이나 1박2일 합숙평가 등을 통해 지원자가 영업직에 얼마나 적합한 역량을 갖췄는지 등을 집중 평가한다.
새로 도입되는 창의성면접에서는 주어진 주제를 놓고 지원자와 면접관이 토론을 통해 문제해결 방법을 찾아내는 과정에서 지원자의 창의성을 평가한다.
사실 채용제도 개편에 앞서 삼성이 글로벌 기업들의 채용방식을 벤치마킹한 결과 삼성처럼 일괄적인 채용시험을 치르는 곳은 거의 없었다고 한다. 인력 확보도 신입공채보다는 수시채용이나 분야별 경력 채용이 더 활발했다.
단적으로 구글, 애플 등 글로벌 IT기업들은 아예 채용 시험 자체가 없다.
삼성 관계자는 "글로벌 기업들은 면접을 중시하고 면접 단계에서 창의성을 평가하는데 주력하고 있다"며 "면접 단계도 국내 기업보다 훨씬 복잡했고 면접 방식도 직무별 특성에 따라 다양한 것으로 분석됐다"고 전했다.
◆학력보다 능력 중시 분위기 조성..채용제도 어떻게 변화했나
삼성은 사실 과거에도 파격적인 채용실험으로 대학가와 기업의 채용 관행에 많은 영향을 끼쳐 왔다.
학연이나 지연, 혈연에 의한 채용이 만연했던 1950년대에 이미 그룹 차원의 대졸 공채를 실시(1957년)해 우수한 인재를 폭넓게 구했고, 1993년에는 국내 최초로 여성 전문인력 채용을 실시해 여성 인력에 대한 선입견을 깨는데 앞장섰다.
1995년부터는 채용시 학력제한을 완전 철폐하는 것을 포함한 '열린 채용'을 발표해 사회 전체에 충격을 던졌다. 열린 채용은 학력, 성별 제한없이 능력과 의욕만 있으면 모든 사람에게 문호를 개방하는 것이었고 실제 첫해 최종 합격자 중 대졸 미만 학력자가 꽤 있었다.
삼성은 지금까지도 대졸 신입사원 채용이라는 표현 대신 '3급 신입사원 채용'이라는 명칭을 고수하고 있다. 여전히 대졸 미만 학력자들에게도 똑같이 지원 자격을 주고 있다.
이후 삼성은 2012년 열린채용을 좀더 확대한 개념의 '함께하는 열린채용'을 도입해 능력위주의 '열린채용'에 적극적인 기회균등 실현의 개념을 추가했다. 학력보다 능력을 중시하는 사회분위기 조성에 기여한다는 취지였다.
이에 따라 삼성은 전체 3급 신입사원의 5% 수준을 저소득층(기초생활수급대상자 및 차상위계층) 가정의 대학생으로 채용하고 지방대 출신 선발비율을 35%까지 확대했다. 이같은 비율은 이번 새로운 채용제도에서도 그대로 유지된다.
삼성 관계자는 "채용제도를 개편하더라도 채용과정 전반에 걸쳐 학력, 성별 등의 불합리한 차별없이 누구나 지원 가능하고 실력으로 평가받는 열린채용의 기조는 유지된다"며 "열린채용의 기본정신과 원칙은 유지한다는 게 원칙"이라고 강조했다.
[뉴스핌 Newspim] 이강혁 기자 (ikh@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