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김기락 기자] 이동통신사들의 불법 보조금 지급이 갈수록 지능화되고 있다. 규제 당국인 미래창조과학부와 방송통신위원회가 감시하기 어려운 점을 악용해 ‘선가입 후개통’식의 수법이 최근 기승을 부리는 것이다. 내달 시행을 앞둔 단말기유통구조개선법(단통법)도 이 같은 수법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4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8월 번호이동 시장(알뜰폰 제외)은 40만6590건으로 지난 3월(27만9754건) 이후 가장 낮다. 같은 기간 SK텔레콤은 -4461건, KT는 -1781건인 반면 LG유플러스만 6242건 순증했다. 순증ㆍ순감 단위도 지난 4월 십만에서 수천건으로 쪼그라들었다.
이통 업계에서는 이를 시장 침체 및 안정으로 보고 있다. 번호이동수치가 줄어서다. 신규 시장은 감소세지만 여전히 10만건 단위를 유지하고 있다. 이통사가 번호이동 보다 신규 가입자 모집에 열을 올리는 배경 중 하나다. ‘다마’가 훨씬 크기 때문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판매점 관계자는 “번호이동 시장이 낮아진 점은 맞으나 그게 시장 안정화라고 단언할 수 있겠느냐”며 “불법 보조금 규모는 기기변경 보다 신규 가입자가 훨씬 크다”고 말했다.
신규 가입은 본인 휴대폰 번호를 그대로 쓸 수 있으며 번호이동 조건 보다 30만~40만원 보조금을 더 받을 수 있다는 게 판매점 관계자의 얘기다.
판매점은 불법 보조금 등 판매 조건이 좋을 때 미리 확보된 고객을 상대로 신규 가입을 시켜 개통한다. 이후에 기존 번호를 신규 가입에 씌우는 방식이다. 통신사 변화도 없다.
선가입 후개통 방식인 만큼 불법 보조금 단속을 피하기도 수월하다는 게 현장 분위기다. 기기변경처럼 일정 금액의 보조금을 지급하며 즉시 개통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같은 방식을 현장에선 ‘에이징’이라고 부른다. 에이징은 주로 스피커 에이징을 뜻하는데 새 스피커가 소리를 잘 낼 수 있도록 일정 시간 길들이기하는 것이다. 에이징을 통해 휴대폰을 구입하면 최대 3개월까지 기존 휴대폰을 갖고 있어야 한다.
KT 관계자는 이와 관련 “28일 동안 갖고 있어야 한다, 본인이라면 즉시 개통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에이징은 처음에 휴대폰 판매점의 단골 고객들 위주로 운영되다가 불법 보조금이 커지면서 일반 고객까지 확대된 사례다. 즉시 개통할 경우 불법 보조금 투입 여부를 비교적 쉽게 감시할 수 있으나 신규 가입자 시장은 이 보다 어려운 점을 노린 것이다.
한 마디로 이통사와 소비자 모두 ‘꿩 먹고 알 먹는’ 최적의 판매 수단인 셈이다. 판매점 역시 실적으로 이어지는 것은 두말할 것도 없다.
문제는 이통사와 판매점이 소비자를 불법의 대상으로 보고 있다는 점이다. 보다 많은 보조금을 받고 싶으면 개인정보 등을 미리 판매점에 제공하고, 확보된 소비자의 개인정보를 이용해 선가입시키는 게 일반적이다.
이통사 관계자는 “개통이 안 되는 시간차가 클수록 정부 단속이 어렵게 된다”며 “단통법 도입 후 기기변경 보다 신규 가입자 시장을 중심으로 지능적 경쟁이 심화될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내다봤다.
또 다른 판매점 관계자는 “최근 대규모 보조금 투입이 안 될 뿐 법정 보조금을 초과하는 보조금은 꾸준히 있다”고 귀뜸했다.
[뉴스핌 Newspim] 김기락 기자 (peoplekim@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