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인생의 가을, 중년은 아름다워라
- 아버지의 무게 2
‘가시고기’가 있다. 가시고기는 자식을 위해 희생적이다. 암컷 가시고기는 알을 낳고 떠나버린 후 수컷 가시고기가 알을 보호한다. 수컷 가시고기는 알을 안전하게 지키기 위해 온몸에 상처가 나도 목숨 걸고 지킨다고 한다. 알이 모두 부화한 뒤에야 숨을 거두는데 새끼 가시고기는 숨진 수컷의 살을 파먹는다. 수컷 가시고기는 목숨 걸고 새끼들을 지킨 뒤에도 자기 몸까지 새끼들을 위해 희생한다.
이 가시고기 이야기를 소재로 한 조창인 작가의 『가시고기』라는 소설은 이 땅의 우리 아버지 상을 그린 작품으로 출간 당시 독자들로부터 커다란 반향을 일으켰다. 이런 아버지상은 미국에서도 동일한 것 같았다. 『세일즈맨의 죽음(Death of Salesman)』은 1930년대 대공황시절, 이미 나이 60세가 넘은 시대에 뒤떨어진 미국의 한 평범한 세일즈맨이 실직 후 좌절과 방황 끝에 자살을 택하는 내용을 그린 작품이다. 그는 마지막 순간에도 가족을 생각했다. 가족을 위해 보험금을 남기려고 고의로 자동차사고를 내어 자신의 목숨을 끊는다.
영원히 아이들을 지켜줄 것 같았던 아버지의 넓은 등은 덧없는 세월 속에서 이제 아이들이 지켜줘야 할 만큼 작아졌고, 큰 세상을 바라보던 건장한 남자는 이제 가족만을 바라보는 소시민 아버지가 되어있다.
지금의 중년들이 학창시절을 보낼 그즈음, 암울한 시대환경 속에서 그들은 방황하는 듯 했다. 그러나 그들은 조국과 민족의 앞날을 걱정하는 열정과 패기, 순수함의 소유자들이었다. 수업도 포기한 채 민주화를 외치며 길거리로 나섰다. 그런 가운데서도 젊은이다운 낭만과 멋, 여유를 누릴 줄 알았다. 통기타문화를 만들어냈다. 헷세와 괴테의 문학을 논하며 윤동주, 박인환의 시를 암송하였다. 사람 없는 찻집에 마주앉아 밤늦도록 시대정신에 대하여 토론을 하기도 했다.
그들이 대학을 졸업한 뒤 산업현장에 뛰어들었을 때 우리는 여전히 가난했다. 그들은 한번 잘살아 보겠다며 열심히 몸부림쳤다. 밤낮없이 일하였다. 자신의 젊음을 몽땅 일에 저당 잡힌 채. 마침내 그들은 해내었다. 그러나 그들의 육신은 많이 지쳐 있었다. 세계화와 정보화란 급속한 변화물결에도 제대로 적응하지 못해 방황하고 있다. IMF 경제위기를 맞으면서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 일했던 정든 직장에서 쫓겨나는 수모를 당하기도 했다.
그래도 그들은 자신들의 삶을 사랑한다. 지나온 삶에 대한 자존심과 긍지 그리고 보람을 지닌 채 오늘도 그들은 자신의 주어진 삶에 최선을 다하며 묵묵히 살아가고 있다. 새로운 앞날에 대한 설계도 해보면서...
*저자 이철환 프로필
-재정경제부 금융정보분석원장
-한국거래소 시장감시위원장
-현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초빙위원
-현 단국대 경제학과 겸임교수(재직)
*저서- 과천청사 불빛은 꺼지지 않는다, 한국경제의 선택, 14일간의 경제여행, 14일간의 (글로벌)금융여행 등 다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