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장윤원 기자] ‘영원한 2인자’, ‘질투의 화신’, ‘열등감으로 뭉친 사내’. 역사 속 살리에리에 대한 세간의 평가를 재고해 볼 기회가 왔다.
지난 22일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에서 뮤지컬 ‘살리에르’가 개막했다. 동시대에 살았던 천재음악가 모차르트에게 가려져 대중의 기억 속에 단편적인(더군다나 부정적인) 인상으로 남아 있는 살리에르가 주인공이다.
원작은 러시아 대문호 푸시킨의 희곡 ‘모차르트와 살리에리’. 원작의 마지막은 모차르트가 독배를 마시고 죽는 장면으로, 살리에리는 죽어가는 모차르트에게 레퀴엠 연주를 부탁한다. 살리에리는 레퀴엠을 연주하고 죽어가는 모차르트를 뒤에서 지켜보며 눈물을 흘린다. 그리고, 이 장면이 뮤지컬의 모티프가 됐다. “‘그 장면을 어떻게 관객들에게 전달할 수 있을까’라는 대전제가 있었고, 우리 창작진은 그걸 목표로 달려왔다”라는 김규종 연출의 설명이다.
무대는 처음부터 강렬한 시작으로 집중도를 높인다. 환영에 시달리듯 광기 어린 모습의 살리에르, “살리에르가 모차르트를 죽였대”라고 수군거리는 군중은 이제부터 펼쳐질 위태로운 이야기를 축소시킨 듯하다.
관객이 모두 음악 전공자가 아니라는 전제 하에, 모차르트의 신이 내린 재능을 모든 관객이 알아볼 길은 없다. 그렇기 때문에 모차르트를 향한 살리에르의 불타는 질투 역시 이해하기 어렵게 된다. 이런 한계를 깨고, 살리에르의 강한 질투와 절망에 절절히 공감하게 만드는 것은 배우들의 감정이 듬뿍 담긴 넘버다. 살리에르 역의 최수형은 완벽하게 살리에르로 분해 무대를 휘젓고 심금을 울린다.
무대의 전체적인 분위기는 어둡다. 살리에르라는 인물에 중점을 둔 만큼 음울한 작품 분위기는 어쩔 수 없지만, 이런 느낌이 ‘너무’ 일관되게 유지돼 지겨워진다. 중간중간 관객들을 한숨 돌리게 하는 장면도 있긴 하다. 하지만 모차르트와 그 외 등장인물들이 만들어낼 수 있는 장면들이 더 재미있고, 더 화려하고, 더 극단적으로 그려진다면 어땠을지 아쉬움을 남긴다.
소소한 아쉬움을 잊게 만드는 것은 살리에르의 내면을 표현하는 장치들이다. 넘버와 대사뿐 아니라 무대 장치, 앙상블과의 조화, 조명과 음악 등이 살리에르의 속마음을 정교하게 비춘다.
살리에르의 내면을 이야기 할 때 빠질 수 없는 것은 ‘젤라스’인데, 이 새로운 인물은 “당신에게 늘 편지를 썼어요”라며 살리에르의 눈 앞에 나타난다. “만나는 날만을 기다렸다”면서 미저리 느낌마저 약간 풍기는 젤라스는 사실 살리에르의 내적 자아가 형상화된 인물. 이성과 통제로 점철된 살리에르가 “정말 그렇게 생각해요?”라고 끊임 없이 되묻는 젤라스와 어떤 대화를 나누는지, 두 사람의 기이한 조화를 눈여겨 본다면 극의 재미가 두 배가 될 듯하다.
‘노력한다면 가장 찬란하게 빛나리’를 외쳤지만 살리에르는 끝내 그토록 바라던 영광을 얻지 못했다. 그렇지만 이 작품이 2인자의 극단적인 악행을 변명하거나, 천재에게는 감히 덤비지 말라는 일침을 가하는 것은 아니다. 그저 살리에르라는 한 인간의 이야기, 평범한 우리의 이야기를 전할 뿐.
‘모차르트와 살리에르’라는 상상을 자극하는 이야기와 관련해 또 하나의 고정레퍼토리가 탄생한 것이 아닌지 기대해 본다. 최수형, 정상윤이 살리에르 역을 맡는다. 모짜르트 역 박유덕 문성일, 젤라스 역 조형균 김찬호, 테르지아 역 이민아, 카트리나 역 곽선영 등이 함께 한다. 25일까지 열리는 프리뷰공연에 이어, 오는 8월31일까지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에서 공연된다.
러시아 대문호 푸시킨의 희곡 ‘모차르트와 살리에리’(1830)는 18세기 실존 음악가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와 안토니오 살리에리의 이야기를 다룬다. 모차르트의 죽음 이후 당대 사람들은 살리에리가 그의 죽음에 연관돼 있을 거라고 굳게 믿었는데, 푸시킨 역시 마찬가지였던 듯 그의 작품에서는 모차르트를 독살하는 살리에리의 모습을 볼 수 있다. 하지만 살리에리가 실제로 모차르트를 독살했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으며, 모차르트를 죽음으로 몰고 간 병이 무엇인지는 아직까지 명확히 밝혀진 바 없다 푸시킨 이후 연극 ‘에쿠우스’의 작가로 유명한 영국의 극작가 피터 세퍼(Peter Shaffer)도 살리에리가 모차르트를 시기해 살해했다는 이야기를 다룬 연극(1979)을 발표했다. 이 이야기는 1984년 밀로스 포먼 감독이 영화 ‘아마데우스’를 공개하면서 널리 알려졌다. 영화 ‘아마데우스’에도 모차르트를 향한 질투에 눈이 먼 안토니오 살리에리가 등장하는데, 영화가 공개된 이후 극단적인 2인자의 심리상태를 이르는 용어로 ‘살리에리 증후군’이란 말이 쓰이기 시작했다. [사진=영화 ‘아마데우스’ 스틸컷, 안토니오 살리에리 역의 F.머레이 아브라함] |
사진=HJ컬쳐
[뉴스핌 Newspim] 장윤원 기자 (yunwon@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