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금상승률 거의 '제자리'.. 자발적 퇴직 늘었지만 호황 반영 아냐
[뉴스핌=김윤경 국제전문기자] 이머징 금융 시장이 한바탕 동요한 이후 금융 시장 전문가들은 한결같이 미국의 행보를 바라봐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의 행보란 좁게 볼 때 연방준비제도(Fed)가 예정대로 돈풀기(양적완화)를 축소할 것인지 여부이며, 양적완화 축소를 합리화할 만한 경제지표를 확인해야 한다는 말이었다.
따라서 다들 구체적인 시장 전망치까지 쥐고 기다린 것이 지난 7일(현지시간) 발표된 1월 고용 보고서였다. 새 일자리가 얼마나 늘었는지, 또 실업률은 얼마나 떨어질 것인지가 관심사였는데, 일자리는 예상보다 적게 만들어졌고 실업률은 하락 추세를 지속했다. 뉴욕 증시는 올랐다. 고용 상황을 낙관한 것인가, 아니면 오히려 연준의 양적완화 축소 행보를 가로막을 수 있는, 그러니까 경기 회복이 더디다는 걸 확인한 수치였던 것일까.
◇ 신규 일자리 수 줄고 실업률은 낮아져
지난 7일(현지시간) 발표된 미국의 1월 고용 보고서에 따르면 이 기간 비농업부문에선 11만3000개의 새로운 일자리가 만들어졌다. 시장 예상치가 18만개 정도 됐고, 지난해 월 평균 19만4000개의 일자리가 만들어진 것에 비해 실망스러운 수치다. 실업률은 6.6%로 하락했다. 전월의 6.7%에 비해 0.1%포인트 낮아졌으며 2008년 10월 이후 가장 낮다.
미국 실업률 추이. 지난달 6.6%까지 떨어졌다.(출처=더풀닷컴) |
연준의 입장은 곧 확인할 수 있다. 재닛 옐런 새 연준 의장은 11일 하원 금융서비스 위원회에, 13일에는 상원 은행위원회에 출석해 반기 보고서를 제출하고 질문에 답할 예정이다. 여기서 옐런 의장이 어떤 해석을 내놓을 지에 다시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 일자리 덜 늘어난 것이 추운 날씨 탓?
바클레이즈의 수석 이코노미스트 딘 마키는 지난해 11월부터 올해 1월까지 3개월 평균을 내 보면 새로운 일자리가 월 15만4000개씩 만들어졌는데 이는 9~11월 3개월 평균에 비해 7만5000개가 적고 이는 정부 설명과는 달리 추운 날씨 탓은 아니라고 지적했다.
날씨를 많이 타는 건설업에서의 일자리 창출이 두드러진 것을 보면 이해가 된다. 이외 제조업에서도 일자리 창출이 두드러졌고 헬스케어, 소매유통 부문 등에선 부진했다.
딘 마키는 "작년 12월에 이어 2개월 연속 일자리 창출이 실망스러웠지만 3월 초에 나올 2월 고용 상황까지를 봐야 연준의 궤도가 수정될 지 아닐 지를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 임금 상승률은 거의 '제자리'
고용 보고서 안에서 중요하게 봐야 할 것이 또 있다. 바로 임금(payroll)이다. 지난해 주당 임금은 전년대비 1.9%(인플레이션을 감안하면 0.4%) 밖에 오르지 않은 것으로 집계됐다. 지난달 주당 평균 임금은 20.39달러로 작년 1월의 19.95달러에 비해 거의 오르지 않았다. 지난 경기후퇴(recession) 이전 20년간 평균 임금 인상률의 절반밖에 안 된다.
뉴욕타임스(NYT)는 기업 이익이 증가하고 주식 시장이 반등했으며 주택 시장이 회복세를 보이고 있는 가운데에서도 이렇게 임금 상승률이 더딘 것에 많은 사람들은 불안감을 안고 있을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출처=워싱턴포스트) |
2008년 리먼브러더스가 무너졌을 때 조차도 임금 상승률은 3.5%(물가상승률 감안)에 달했다. 그러나 경기후퇴에 깜짝 놀란 기업들이 잉여 인력을 줄이고 신 기술의 발달로 인한 생산성 향상이 함께 나타나면서 임금 상승률은 예전만 못하게 된 것이 사실이다.
에단 해리스는 "아마도 실업률이 6% 밑으로 떨어지고 새 일자리가 월 20만개씩 만들어지기 전까지는 임금 상승률이 크게 오를 일은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임금 상승이 더딘 것은 거의 전 일자리에서 마찬가지였지만 학력이 높은 사람들이 고졸 이하 학력인 사람들에 비해선 사정이 조금 나은 것으로 나타났다. 실업률도 전문대 졸업 이상인 사람들의 경우엔 3%를 조금 넘는 정도였지만 고졸자들의 실업률은 6.5%에 달했고, 그 이하의 학력인 경우는 9.6%까지 됐다.
특히 저학력인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새로운 일자리는 더 제한적이란 이유 때문에 고용주들은 임금을 올릴 필요가 없어진다. BoA-메릴린치의 해리스는 "노동자들에게 있어선 매우 경쟁이 심화된 상황이 되었고 따라서 협상력은 줄어들고 있다"고 말했다.
◇ 자발적 퇴직자 늘어..경기회복 신호인가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조금 다른 측면에서 고용 상황을 해석했다. 일자리를 '잃은' 것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일을 그만 둔' 사람들에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는 것.
지난해 11월 자발적으로 일을 그만 둔 사람들의 비중을 보여주는 퇴직률(quit rate)은 1.8%를 기록했다. 2009년 9월 1.2%를 기록하며 저점을 기록한 이후 높아지는 추세. 약 240만명의 미국인이 일자리를 그만 뒀다. 일부는 정년퇴직을 한 것이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의 대부분은 이미 다른 일자리를 찾았거나 새로운 일자리를 찾기 위해 그만둔 것이란 해석이다.
12월 퇴직률은 오는 11일 발표될 예정인데 전문가들은 이것이 더 높아졌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는 대개의 경우 경기가 나아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수치다. 향후 생활에 대해 낙관적일 때 사람들은 일자리를 그만 둘 수 있기 때문이다.
시카고대 부스 경영대학원의 스티븐 데이비스 교수는 "사람들은 경력 개발이나 임금 상승 등을 위해 더 좋은 일자리를 찾으려 한다"면서 "이런 과정은 노동시장이 유연하지 않거나 새로운 직업을 찾는 것이 쉽지 않을 때엔 나타나기 어렵다"고 말했다. 퇴직률 1.8%는 사실 2000년대 말 경기가 한참 붐을 이룰 당시의 2.1%에 육박한다.
그러나 최근의 경우엔 꼭 그렇다고만 볼 수는 없다. 인력 순환이 많고 임금 수준이 낮은 소매유통이나 식당업 같은 부문에서 일자리 창출이 더 많이 나타나고 있기 때문에 퇴직률도 높아지고 있는 것이란 해석이 나온다. 제조업 등 조금 더 임금 수준이 높은 분야에선 퇴직률이 더 낮았다.
미국의 장기 실업률 추이(출처=디 애틀랜틱) |
WSJ은 또 좀 더 장기적인 측면에서 볼 때 새 일을 찾아 이동하려는 경향은 줄어들고 있다고 전했다. 노동부의 2012년 1월 통계에 따르면 최소 5년간 한 직장에서 일한 사람들이 전체 미국인의 51%였는데 이는 1996년의 46%에 비해 늘어난 것이다. 이는 고령화가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며 헬스케어 비용에 대한 우려로 직업적 안정성을 원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런 경향이 계속될 경우 이미 문제가 되고 있는 '장기 실업'을 악화시킬 수도 있다고 WSJ은 우려했다. 점점 사람들이 더 좋은 일자리를 찾아 퇴직하려 하지 않게 된다면 실업 상태의 사람들은 일자리를 더 구하기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뉴스핌 Newspim] 김윤경 국제전문기자 (s914@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