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관 상장 직후 차익실현…중소기업만 속탄다
[뉴스핌=백현지 기자] 기업공개(IPO) 시장이 불황에 빠지자 공모가 후려치기가 극심하다. 워낙 공모가가 떨어지다보니 공모주 청약만 되면 '로또'라고 불릴 정도다.
낮은 공모가를 감수하고라도 상장을 하는 기업들은 자금 조달이 시급한 중소기업들이고, 낮아진 공모가로 이득을 챙기는 쪽은 기관투자자들어서 문제라는 지적도 만만치 않다.
25일 한국거래소와 IPO업계에 따르면 올해 코스피시장에 신규상장한 기업은 DSR 한 곳 뿐이다. 올해 상장할 것으로 예상됐던 SK루브리컨츠, 현대로템, 미래에셋생명 등 소위 '대어급'들은 적정 주가를 받기 어렵다는 이유로 상장 일정을 연기했다.
반면 자금 확보가 시급한 코스닥 기업들은 울며 겨자먹기로 상장을 진행하고 있다.
올해 상장한 코스닥 기업 관계자는 "최근 IPO에 나서는 기업이 없으니 증권사나 거래소 입장에서는 꼭 흥행시켜야 한다는 생각이 강한 것 같다"며 "회사도 공모가 책정이 아쉽긴 했지만 워낙 최근 추세가 공모가 밴드를 낮게 잡는 편"이라고 말했다.
공모가격은 상장주관사가 제시한 희망 공모가밴드를 자산운용사, 증권사, 연기금 등 기관투자자가 희망 가격과 수량을 신청하는 수요예측을 통해 결정된다.
문제는 공모가 산정에 앞서 공모가 밴드 자체가 낮게 설정된다는 것이다. 공모가밴드는 이미 상장한 유사업체의 주가수익률(PER)과 현금흐름배수(EV/EVITA)를 고려해 책정하게 된다.
박종선 유진투자증권 기업분석팀 부장은 "2년 전 IPO가 활발히 진행될 때 공모가 밴드가 점진적으로 올라간 적이 있지만 신규 상장 업체들은 공모가를 할인해서 들어오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지난 5월 상장한 레고켐바이오사이언스는 공모가가 밴드가 최상단에 결정됐음에도 유사업체인 크리스탈지노믹스대비 시가총액은 절반 수준에 그쳤다.
올 하반기 첫 새내기주인 나스미디어의 공모가밴드는 7500~9000원, 올해 PER 8.9~10.7배로 유사업체인 이엠넷, 다음보다 저렴했다. 이에 기관투자자 수요예측을 통해 공모가 밴드 상단 부근인 8800원으로 확정했다.
공모가를 낮게 책정하면 이득을 챙기는 이들은 기관투자자다. 통상 기관 수요자들이 공모청약 물량의 80% 가량을 배정받고, 일반투자자 몫은 나머지 20%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일반투자자들이 새내기주의 기업가치를 보고 투자하려고 해도 이미 상장 첫날 시초가가 공모가 대비 훌쩍 높아진 경우가 많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기관투자자들은 (공모주 상장 이후)통상 한달 안에 배정물량의 절반 이상을 매도해버린다"며 "이런 단기매매 성향이 신규 상장 기업의 주가 약세 원인으로 작용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 관계자는 "사실 일반투자자들은 공모주 투자 문이 좁기 때문에 단기투자하는 기관들만 이득을 보고 있어 일반투자자들의 참여 기회를 늘릴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뉴스핌 Newspim] 백현지 기자 (kyunji@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