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김윤경 국제전문기자] 지난 2006년 총리에 올랐다가 1년 만에 물러난 아베 신조(安倍晋三)가 다시 일본 총리가 될 것이란 생각은 미처 못했다. 아베 총리는 개인적으로 '최악'이라고 생각하는 정치 행태를 보였다. 측근들을 마구 기용해 '친구 내각'을 꾸려선 연일 난센스의 실언들이 잇따랐다. 정치자금 스캔들은 지겨울 정도였다. 2007년 7월 참의원 선거에서 심판을 받자 궤양성 대장염을 핑계삼아 총리직에 사표를 썼을 땐 슬그머니 웃음도 났다.
7월21일 참의원 선거에서 승리를 예견하며 기뻐하는 아베 신조 일본 총리(출처=이코노미스트) |
재정정책과 금융정책 모두 수도꼭지를 풀 수 있는 만큼 풀겠다는 것이었다. 엔화는 약세를 유도해 수출을 부양하도록 하고, 소비도 살려 결국 경제를 살리겠다는 것인데 부작용보다는 효과가 더 부각됐다.
그걸 발판으로 자신이 6년 전 졌던 7월의 참의원 선거에서도 압승했다. 앞으로 3년 동안은 큰 선거가 없기 때문에 정권이 바뀔 가능성은 매우 낮아졌다.
아베 총리는 드디어 자신의 숙원인 개헌 펌프질에 나설 계획인 것이 확실하다.
이 개헌은 그런데 아베노믹스로 이웃나라는 굶기고 자신들만 잘 살겠다고 했던 것보다 더 무시무시하다. 일본이 '전쟁을 못하는 나라'에서 '전쟁을 할 수 있는 나라'로 탈바꿈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아베 총리는 지금의 헌법인 평화헌법의 핵심 제 9조를 어떻든 바꿔놓아야만 한다고 믿고 있다. 승전국인 미국에 의해 강요된 것이기 때문에 이걸 바꿔야 패전 전의 '강한 일본'이 올 것이란 망상이 그와 우익 정치인들에겐 있다.
헌법 9조를 바꾸기 위해선 96조도 바꾸려는 기세다. 총의원의 3분의 2 이상이 찬성해야 국회가 발의하고 국민투표를 거쳐 과반수가 찬성해야 한다고 돼 있는 엄격한 조건을 '과반수 찬성시 발의'로 바꾸려 하는 것이다. 몇 달 전 프로야구 시구식에서 아베 총리는 등번호 96번이 새겨진 유니폼을 입고 나오는 '쇼'까지 했다.
개헌에 대해선 생각보다 정치권에서도 반발이 강하다. 그래서 아베 총리는 96조부터 일단 바꿔놓고 9조 개헌에 반대하는 세력 설득에 나서는 수순을 밟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민의(民意)는 아베 총리와 다르다. 보수성향이 짙은 요미우리 신문이 조사한 결과인데도 일단 96조를 바꾸는 것에 대해서도 국민들의 38%만 찬성한 것으로 나타났다. 국민을 존중하는 것이 민주주의라면 아베 총리와 정치권의 개헌 주장은 여기에 어긋나는 것이 아닌가.
괘씸한 것은 경제를 볼모로 삼고 있다는 점이다. 선거 승리를 이끈 가장 큰 배경이 아베노믹스였으니 당분간 여기에 더 공을 들일 게다. 단기 처방전으론 아베노믹스만한 게 없는 건 사실이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출처=텔레그래프) |
그러나 이것이 아베 총리의 자충수가 될 가능성도 작지 않다. 우경화에 볼모로 잡힌 경제가 곧 방향을 틀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제는 단기처방은 끝났고 장기처방에 나설 때란 지적이다. 그러나 상황은 절대로 간단치 않다.
우선 급격하게 늘어나는 사회보장 비용을 감당못해 올리기로 한 소비세(우리나라의 부가가치세) 인상을 최종 결정해야만 한다. 상황을 고려해 시점을 정하겠다고 했지만 언제까지 미룰 순 없는 문제다. 기업들에게도 당근을 줘야 한다. 법인세를 내려달라 하고, 고용 유연화 요구도 들어줘야 하는데 오랜 관행을 깰 수 있을 지 자신이 없을 것이다. 노동자들은 임금 인상이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아우성이다. "주가는 올랐지만 내가 피부로 느끼는 것은 없다"고들 한다. 이 또한 사실이다.
이런 딜레마 속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면 경제 성장 속도가 둔화되거나 역주행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경제는 더 이상 볼모가 아니라 아베 정권을 쫓는 '진격의 거인(進擊の巨人)'이 되지 않을까.
길고 오래 내다보는 정치란 걸 아마도 본 적이 없는 것 같지만, 그래도 이토록 근시안적 정치를 보는 것도 참 쉽지 않은 일인 듯하다.
[뉴스핌 Newspim] 김윤경 국제전문기자 (s914@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