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후 재판과정 핵심 변수 급부상
[뉴스핌=강필성 기자] 최태원 SK 회장 공판에서 김원홍 전 SK해운 고문의 녹음파일이 공개되면서 향후 재판과정의 핵심 변수로 급부상하고 있다. 김 전 고문은 이번 SK 펀드자금 횡령·배임 사건의 핵심으로 꼽히는 인물이다. 다만 김 전 고문은 검찰의 SK그룹 수사가 시작되자 중국으로 출국, 현재까지 입국하지 않고 있다.
수차례 증인 소환조차 거부해온 그가 법원에 변호인을 통해 증거로 제출한 것이 바로 ‘최 회장과 통화 녹취’, ‘최재원 SK그룹 수석부회장과 통화 녹취’, ‘김준홍 전 베넥스인베스트먼트 대표 통화 녹취’ 등이다. 이 녹취의 성격과 의미를 두고 공판은 치열하게 달아오르는 중이다.
지난 11일 서울고등법원 형사4부(문용선 부장판사) 심의로 진행된 최 회장 형제의 배임·횡령혐의 공판에서는 ‘김 전 고문-김 전 대표’, ‘김 전 고문-최 부회장’의 녹음파일이 법정에서 재생됐다.
이 녹음파일은 최 회장 측 변호인과 최 부회장 측 변호인이 김 전 고문으로부터 건네받아 법원에 증거로 제출한 것이다. 최 회장의 무죄를 녹음파일을 통해 증명할 수 있다는 판단이었다.
녹음파일에 따르면 김 전 고문은 최 회장 형제가 펀드 설립 및 인출과 무관하다는 이야기를 수차례 언급했다.
김 전 고문은 최 전 부회장과 통화하며 “네가 무엇보다 죄가 없는데, 누명써서 들어가서 너무 미안하다”라고 말하는가 하면 김 전 대표와 통화하며 “인간적으로 나 한사람으로 일어난 일이잖아. 너는 내 말만 들었고 두 사람이 나 때문에 억울한 누명 쓴 것이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 외에도 김 전 고문은 김 전 대표와 대화에서 “중요한 것은 너하고 나하고 바로 이야기 하자면, 사실은 그 두 사람은 정말 모르는 것”이라며 “중요한건 안 믿고 믿고가 아니라 사실이 그러니 사실대로 말하는 게 안 낫겠나”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 통화가 이뤄지던 시기는 지난해 7월 무렵으로 재판이 한창 진행 중이던 당시다. 당시 중국에 있던 김 전 고문은 수차례 최 부회장과 통화를 했고, 김 전 대표도 최 부회장으로부터 받은 휴대폰을 통해 연락을 취해왔다.
이 녹음의 핵심은 김 전 고문이 김 전 대표와 대화하면서 ‘최 회장 형제가 죄가 없다’는 점을 강조했다는 대목이다. 김 전 고문을 주범으로 주장하는 최 회장 측이 이 증거를 제출한 것도 '그의 입을 통해 자신이 흑막임을 고백하고 있다'는 점을 알리기위해서였다.
하지만 이날 재판부의 분위기는 적잖게 격앙됐다.
문용선 부장판사는 김 전 대표 신문 과정에서 “김원홍은 김준홍을 인간 이하 취급하며 형편없는, 속된 말로 죽일 놈으로 밀어붙이는데 그러는 김원홍은 뭔가, 나중에 쓰려고 통화하며 녹음하는 그런 사람이다”라며 “김원홍은 핵심적인 계획부터 연출까지 담당해왔다”고 말했다.
특히 김 전 대표와 통화 과정에서 재판에 대해 조언하는 과정이 다분히 ‘연출’됐다는 의심도 포함됐다. 김 전 대표의 증언에 따르면 김 전 고문은 수차례 “대법원만 가면 다 무죄를 받을 수 있다”며 “내가 자료를 다 가지고 있다”고 언급해왔다.
이날 문 판사는 김 전 대표 신문 과정에서 “김원홍이 통화중 의도적으로 ‘사실대로 표현하자면’, ‘사실’ 등을 언급한 것에 비춰보면 김원홍은 나중에 이를 녹음해 증거로 제출할 계획이 아니었나”고 물었고 김 전 대표는 “지금 보면 확실히 그렇다”고 답했다.
아울러 문 판사는 통화 녹음 중 약 10초간의 공백이 발생하는 대목에 대해 편집이나 삭제된 것 아니냐고 김 전 대표에게 물었고 김 전 대표는 “그런 것 같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 때문에 재판부는 김원홍의 녹음파일 제공 행위에 대한 강한 불신을 품고 있는 상태다. 특히 김 전 고문에 대해서는 전례 없는 비판을 내뱉기도 했다.
문 판사는 “김원홍은 최태원, 최재원, 김준홍, 세 사람을 전부 꼬드껴서 펀드자금을 선지급, 횡령하게 하고 사기를 치는 정말 파렴치의 극을 달리는 사람”이라며 “이 사람은 자기는 중국으로 도망쳤으면서 재판을 원격조정하고 통화를 녹음하고 있다. 이런 것 가지고 이야기하는 재판장도 어이가 없다”고 말했다.
실제 검찰 측은 이 녹취록을 오히려 최 회장 형제의 ‘유죄의 증거’로 제출하기도 했다. 김 전 고문이 허위진술 및 재판과정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있다는 반증이라는 설명이다.
실제 재판부는 이 증거자료가 오히려 독이 될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있다.
문 부장판사는 “이게(녹취록이) 독이란 생각 안했을까 궁금하다”라며 “변호인이 법률 전문가로 저보다 나 경력이 많고 백배 잘 아는데 아무리 입장과 시각이 다르다 해도 이렇게 다를까”라고 탄식했다.
결국 최 회장 형제가 향후 김 전 고문과 현재까지 공모하고 있다는 의구심을 어떻게 씻는지가 향후 공판의 관전포인트가 될 전망이다.
문 부장 판사는 공판 말미에 “김 전 고문이 최 회장에게 많은 영향 준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든다”며 “만약 지금도 영향을 받고 있다면 재판에 손해가 될 경우 거기에서 벗어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뉴스핌 Newspim] 강필성 기자 (feel@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