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강필성 기자] 김원홍 전 SK해운 고문이 최태원 SK 회장에게 SK그룹 펀드 송금 사실을 숨겼다는 김준홍 전 베넥스인베스트먼트 대표의 증언이 처음으로 공개됐다. 최 회장의 SK펀드 인출을 의혹은 그가 받고 있는 배임·횡령의 핵심 쟁점이다.
24일 서울고등법원 형사4부(부장판사 문용선) 심의로 열린 최 회장 형제 등에 대한 항소심 공판 증인 신문 과정에서 김 전 대표는 “김원홍 전 고문이 세무조사 직후 ‘최 회장은 (SK그룹 펀드 자금의) 송금을 모르고 있다. 이유를 설명해야 하니 가만히 있어라’라고 연락해와 황당함을 느꼈다”고 말했다.
2011년 베넥스인베스트먼트의 세무조사는 최 회장 형제를 비롯한 SK그룹 수사의 단초가 된 사건이다. 검찰은 국세청의 조사를 바탕으로 SK그룹 펀드가 비자금 조성을 위한 과정으로 보고 이를 무단 인출해 사용한 혐의로 최 회장 형제를 기소한 바 있다.
최 회장이 세무조사 이후 SK펀드 자금 인출을 알고 분개했다는 증언은 나온바 있지만 송금 대상이었던 김 전 고문이 이런 말을 했다는 사실은 처음으로 드러났다. 지금까지 김 전 대표는 최 회장의 펀드설립 지시가 사실상 펀드자금 유용을 위한 절차인 것으로 본다고 증언해왔다.
따라서 “펀드 설립에는 관여했지만 인출에는 관여하지 않았다”는 최 회장 변호인 측의 주장도 한층 더 힘을 받게 됐다는 평가다.
이날 김 전 대표는 이어 “당시 이미 펀드 설립은 지나간 이야기였는데, 갑자기 찝찝한 상황이 됐다”며 “최 회장이 펀드자금 인출을 모르면서 어떻게 2008년 10월 펀드 설립을 지시했는지 알 수 없게 됐다”고 증언했다.
특히 그는 세무조사 이후 최 회장에게 불려가 펀드자금 인출에 대한 질타를 받은 뒤, 그가 인출에 대한 내용을 진짜 모를 수 있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고 한다.
김 전 대표는 이 과정을 증언하는 과정에 대한 어려움도 토로했다.
그는 “이 이야기까지만 나오면 모두 거짓이라고 한다”며 “나는 잘 알았지만 김 전 고문의 존재가 너무 기괴했고 인격적인 증거를 제시하기 힘들었다. 때문에 1심에서는 김 전 고문에 대한 언급을 자제하라고 변호인으로부터 당부받기도 했다”고 덧붙였다.
실제 김 전 고문은 SK그룹 펀드 설립과 인출 과정의 핵심으로 꼽히지만 2011년 검찰의 수사 개시 직전에 중국으로 출국한 뒤 귀국하지 않고 있다. 최 회장 측에서 그를 증인으로 세우려고 했지만 현재까지는 이렇다 할 진척이 없다.
때문에 김 전 고문의 이번 증언에 대해 재판부는 시큰둥한 반응이다.
문 부장판사는 “검찰의 공소에는 최 회장이 핵심이 된 것은 상식적, 평균적인 판단을 한 결과로 재판부는 상식적, 평균적으로 판단해야만 한다”며 “1심에서 최 회장이 펀드 설립에 관여한 사실을 숨긴 것은 펀드자금 인출에 무관하다는 걸 설득할 자신이 없었기 때문에 그런 것 아니겠냐”고 지적했다.
이어 “김원홍이라는 비일상, 비상식적, 나아가 초연적일 수도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따져봐야 하는데, 과연 송금 사실을 몰랐다는 증언이 결정적 증거가 될 수 있겠나”라고 덧붙였다.
한편 이날 최 회장 형제 공판은 김 전 대표에 대한 재판부와 검찰, 변호인의 증인신문을 중심으로 진행됐다. 오는 28일 공판에는 변호인의 반대 신문 속행과 동시에 피고인신문이 진행될 예정이다.
[뉴스핌 Newspim] 강필성 기자 (feel@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