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에선 부동산이 수요, 성장 동력
[2] 건설업, 개발시대에 필요한 낙후된 사양산업인가
[뉴스핌=이동훈 기자] #지난 1998년 몰아닥친 IMF(국제통화기금)발 외환위기는 국내 노동집약형 저부가가치 산업을 초토화시켰다. 이는 한편으로는 국내 산업의 구조조정 기회가 되기도 했다.
당시 '사망선고'를 받은 산업 중 대표적인 것이 60~70년대 근대화의 주역인 방직과 신발산업이다. 이들 산업은 이미 외환위기가 발생하기 10여 년 전부터 중국에서 값싼 상품에 밀려 '사양산업'으로 몰렸다. 결국 이들은 IMF 체제에서 사망선고를 받았다.
하지만 이들 산업이 과연 사라졌을까? 요즘에도 신발가게는 존재한다. 비틀대는 한물 지난 가게가 아니라 최신 디자인으로 사람들의 발걸음을 끌어 들인다. 첨단 소재와 과학 이론이 도입된 다양한 기능화가 신발산업의 새로운 부활을 꿈꾼다. 각양각색의 디자인으로 무장된 신발들도 소비자들의 지갑을 열게 만든다. 수 십만원대까지 팔린다. 이들 신발은 소위 말하는 선진국 브랜드 제품이다.
◆사양산업 취급받는 건설업..그 이유는
최근에도 사실상 '시한부' 선고를 받은 산업이 있다. 바로 건설업이다. 하지만 건설업도 사양산업이라고 판정할 수 있을까? 그것도 세계 1류 수준의 기술력과 노하우를 갖춘 건설 산업을 말이다... .
건설업에 대한 구조조정론이 일고 있다. 더 이상 고성장이 어려운 데다 전국의 주택보급률이 100%를 넘어섰다는 이유에서다. 건설산업은 더이상 과거와 같은 내수시장을 창출할 수 없을 것이라는 인식이 팽배하다.
건설업은 주택, 도로와 같이 100년을 쓸 수 있는 내구재를 만든다. 이 때문에 고도 성장기에는 내수를 끌어 올리며 경제성장의 원동력이 된다. 하지만 성장이 어느 정도 이뤄지면 산업의 '쓸모'가 줄어든다. 유럽, 미국, 일본 등과 같이 성장이 완성단계에 이른 나라들은 경제에서 건설업의 비중이 크게 줄어든 상태댜.
전문가들은 통상 GDP(국내총생산)가 1만5000달러를 넘으면 건설투자 비중이 줄어드는 것으로 보고 있다. 우리나라의 GDP는 2만달러를 넘어섰다. 또 경제성장률은 연 2% 선으로 내려 앉았다. 이 때문에 이제 건설업은 과거와 같은 위상을 유지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인식이 많다. 이 것이 건설업 '사양산업론'의 배경이다.
◆10명 중 1명은 건설·부동산으로 밥먹고 살아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같은 섵부른 '예단'에 주의를 주고 있다. 건설업은 연착륙 대상이지 폐기 대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즉 비중을 축소해야하는 것은 맞지만 건설업의 고용효과와 생산효과를 볼 때 사양산업으로 간주할 수는 없다는 이야기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윤영선 연구위원은 "우리 경제의 상황을 볼 때 건설업의 비중이 줄어드는 것은 어쩔 수 없는 흐름"이라면서도 "그러나 많은 산업과 다양한 연관을 갖고 있는 건설업은 연착륙 대상이지 폐기해야하는 산업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건설업을 사양산업이라고 할 수 없는 까닭은 국가 경제에 미치는 파급효과 때문이다.
지난 2011년 기준 산업연관표에 따르면 건설업의 국내 고용자 비중은 7.92%(164만명)에 이른다. 이는 도소매(15.62%), 교 육및 보건(12.62%), 음식점 및숙 박(8.02%)에 이어 4위에 해당하는 것이다. 여기에다 건설업에서 파생되는 부동산 업종의 고용자(39만명)을 합하면 건설·부동산의 고용자 비중은 9.8%(203만명)에 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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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하수폐기물처리업, 전기·가스·수도업 종사자를 합친 건설 연관 취업자 수는 236만명. 국민 10명 중 1명은 건설·부동산으로 밥을 먹고 사는 셈이다.
취업활동에 주는 영향인 건설업의 취업유발계수도 13.7로 제조업(12.9)를 웃돌고 있다. 고용유발계수는 12.1로 제조업(6.7)의 두배 가까이에 이른다.
건설업은 생산유발 효과도 크다. 아파트나 빌딩을 짓는데 철강, 시멘트, 유리 등의 각종 자재가 필요할 뿐 아니라 가구, 가전제품, 전자제품도 설치되기 때문이다.
건설업의 생산유발액은 190조4400억원(5.50%), 부동산은 120조9400억원(3.52%)에 이른다. 이 둘을 합치면 GSP의 9%에 달한다. 국내총생산의 약 10분의 1이 건설·부동산에서 발생하는 것이다.
지난 2010년 기준 생산유발계수를 살펴보면 건설업은 2.10으로 전 산업 평균 계수인 1.95를 웃돌고 있다. 이는 제조업(2.07)과 서비스업(1.73)을 압도하는 수치다. 다른 업종보다 다른 산업의 생산을 이끌어 내는 힘이 크다는 것이다.
◆실물 데이터 뛰어넘는 부동산..수요진작 '마중물'
건설업이 국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단순 통계 수준을 훨씬 뛰어 넘는다.
미국이 대표적이다. 건설업의 비중이 줄어든 미국은 금융위기에서 탈출하고 경제성장을 위한 동력으로 부동산을 이용하고 있다.
미국은 지난 2008년 서브프라임모기지론(비우량 주택담보대출) 부실 사태 이후 불황이 찾아오자 '달러를 쏟아붓는' 이른바 양적완화에 돌입했다.
이는 부동산시장의 활황으로 이어졌다. 지난 3월 미국의 신규 주택판매는 1년 전 같은 기간보다 18.5% 증가했다. 또 미국의 20개 주요도시 집값 동향을 보여주는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케이스-실러 지수는 지난 3월 전년대비 10.9% 상승하면서 7년만에 최대폭을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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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S&P 케이스-실러 지수 |
부동산 경기 회복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얼어붙은 미국인들의 소비심리를 되살리고 있다.
미 경제는 지난 2008년 2분기에서 올해 1.4분기까지 3.3% 성장했다. 그동안 민간소비는 더 큰 폭인 4.9% 늘었다. 2011년에는 미국 경제가 1.8% 성장했는데 이 중 소비의 기여도는 1.7%였다. 이 해에 소비의 GDP 기여율은 98.5%였다. 소비가 GDP 증가의 거의 전부를 차지한 셈이다. 지난해 4분기에도 가계 소비는 2.2% 늘었다. 집값 상승에 따른 '부(wealth)의 효과'가 미 경제활동의 60%가 넘는 소비력을 회복시킨 것이다.
소비뿐 아니라 시대적 화두인 고용도 증가하고 있다. 미국 건설업 취업자 수는 지난해 12월 556만4000명으로 한 달 새 3만명이 늘었다. 최근 2년 만에 가장 높은 수치다.
부동산에 대한 투자가 반짝 경기상승만 이끄는 '대증요법(對症療法)'을 넘어 경제성장의 '모멘텀'으로 작용하는 모습이다.
중국 사례 역시 부동산이 소비에 미치는 효과를 잘 보여준다. 중국 정부는 위안화 가치 및 물가상승 압력을 막기 위해 부동산을 규제한 결과 소비 및 성장하락이라는 위험에 처했다.
매년 10%를 넘나들던 중국의 경제성장률은 지난해 7.8%로 내려 앉았다. 7.5% 아래로 떨어질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경제성장의 '경착륙'으로 인한 중 경제의 붕괴 우려까지 제기되고 있다.
이처럼 소비와 성장이 급감하는 것은 부동산시장 억제책에 따른 내수부진이 중요한 이유 중 하나다. 실제 중국은 올 2월 부동산 억제대책을 담은 '신국오조(国五条)'를 발표한 후 부동산 발 투자부진이 이어지고 있다. 올 1분기 중국 부동산 투자는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20.2% 감소했다. 같은 기간 중국 GDP는 전년동기 대비 7.7% 줄었다 .
부동산 억제책의 휴유증이기도 하다. 부동산경기가 침체되자 철강, 시멘트는 물론 가구, 자동차 판매도 감소했다. 5월 들어서는 소비판매를 제외한 모든 지표가 전망치를 밑돌고 있다.
◆생사 '갈림길'에 놓은 세계적 경쟁력 갖춘 건설업
우리나라 역시 건설산업은 갈림길에 놓여있다. 전문가들은 과거 개발시대 폭발적으로 성장했던 건설업의 연착륙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사양 산업론을 내세워 강제적인 구조조정에 들어가거나 건설업의 위기를 방치하면 국가 경제의 손실도 막대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이유에서다.
또한 이미 세계적 경쟁력을 갖춘 산업을 방치, 폐기하는 것은 손해라는 이유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건설업은 IT(정보기술)과 전자 만큼 경쟁력이 있는 산업으로 꼽힌다. 일본의 주택 건설업체 임직원들이 국내 아파트 모델하우스를 보러 올 정도다. 굳이 경쟁력 있는 건설업을 '죽여가면서'까지 구조조정을 할 필요가 없다는 이야기다.
주택산업연구원 권주안 선임연구원은 "구조조정이 불가피하지만 경제 사정과 업계 고민을 모두 고려한 산업의 조정이 필요하다"이라고 말했다.
윤영선 건산연 연구위원은 "국내 시장에서 건설업이 나아갈 신시장은 녹색, 유비쿼터스와 같은 컨버전(Conversion) 형태가 돼야한다"며 "이렇게 되면 지금까지의 시설을 짓고 빠지는 형태가 아닌 운영도 함께 할 수 있도록 기술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뉴스핌 Newspim] 이동훈 기자 (donglee@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