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적 개혁 바람..초일류 기업 성장 고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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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건희 삼성 회장이 1993년 독일 프랑크푸르트 한 호텔에서 임직원들을 대상으로 '신경영'을 선언하는 모습. |
[뉴스핌=김민정 기자] “마누라와 자식만 빼고 모든 것을 바꿔야 한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은 왜 1993년 프랑크푸르트에서 이 같은 말을 했을까.
이 회장은 1993년 6월 7일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사장 200여명을 모아놓고 ‘신경영’ 선언을 했다. ‘양 보다는 질’ 중심으로 삼성의 체질을 변화시키자는 게 이 선언의 핵심이다.
이러한 변화를 기반으로 국제화, 정보화, 복합화를 통해 초일류 기업으로 다시 태어나자는 게 핵심적인 취지였다.
◆ 1993년 삼성에 무슨 일 있었나
이건희 회장은 당시 국내에선 1등 기업으로 성장한 삼성의 원동력이 멈추는 것을 우려했다.
그는 “인공위성은 대기권 밖으로 10~15분, (보잉)747은 1~2분 사이에 3만4000피트까지 올라가야지 중간에 떨어지면 폭파하던가 주저 앉아버린다”며 국내 일류로 올라온 삼성이 세계 일류로 가지 않으면 무너질 수 있음을 경고했다.
이 회장은 1987년 12월 취임사를 통해 “90년대까지는 삼성을 세계적인 초일류 기업으로 성장시키겠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당시 국내 1위 기업이었던 삼성 내부에선 제일주의 의식이 팽배했고 이 회장은 이를 뜯어 고치고자 했다.
이처럼 이 회장이 삼성을 변화시켜야겠다고 다짐한 1993년, 우리나라는 정치적으로도 큰 변화를 겪게 된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문민정부가 출범한 것이다.
이 회장은 문민정부가 실시한 개혁의 바람이 삼성그룹 내에서도 일길 바랐다. 그는 “3공, 4공, 5공, 6공 때 이것을 했더라면 됐겠느냐? 불가능했다”며 왜 1993년이 ‘신경영’을 시작할 때인지를 설명했다.
대외적으로도 변화가 컸던 시기였다. 소련의 몰락으로 냉전시대가 종식되고 경제적으로 가트체제의 붕괴와 우루과이 중심의 체제 재편이 이뤄졌다.
◆ 프랑크푸르트, 라인강의 기적과 든든한 SOC
그렇다면 왜 독일 프랑크푸르트였을까.
우선 2차 세계대전 이후 패전국으로 엄청난 빚더미에 쌓인 독일의 경제회복을 뜻하는 ‘라인강의 기적’의 발원지인 프랑크푸르트를 ‘삼성 신경영’의 출발지로 택했다는 점에서 그 의미를 찾을 수 있다.
프랑크푸르트는 삼성이 자리잡아야 할 곳의 조건을 모두 갖추고 있다.
이 회장은 ‘신경영 선언’에서 삼성의 생산시설, 센터, 본부가 항만, 고속도로, 공항 근처에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프랑크푸르트는 이 회장이 언급한 회사의 입지 조건을 모두 담고 있었다.
프랑크푸르트는 라인강의 지류인 마인강 연변에 위치해 항공∙철도∙자동차 교통의 요지다. 이런 환경에서 프랑크푸르트는 ‘라인강의 기적’의 출발점이 됐다.
◆ 복합화, 인류사회 이바지하기 위한 핵심전략
이 회장은 ‘신경영 선언’에서 복합화에 대한 자신의 포부를 밝힌다. 그는 복합화의 개념을 설명하면서 “내가 저 호텔에서 차를 갈아타고 고속도로 타고 오는데 10~20분이 걸렸다”며 “이런 것을 40초 만에 엘리베이터로 커버해 버리자는 게 100층, 150층의 10만평 짜리 빌딩이다”고 말했다.
이 회장은 농산물과 공산품의 생산부터 유통, 의료, 교육, 여가까지 모두 포괄하는 개념의 복함화를 제안했다.
그는 “병원도 짓고, 간호학교도 짓고, 대형수퍼도 짓자. 지하실에 대형 주차장도 넣어버리고 기왕이면 대형 수형장도 만들자”고 했다.
실제로 삼성은 현재 천안∙아산에 복합산업단지를 두고 있다.
이 복합단지는 현지 경제에 큰 기여를 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 지역의 경우 삼성전자와 삼성디스플레이의 고용이 크게 늘면서 전국 평균보다 훨씬 낮은 2%대의 실업률을 보이고 있다.
[뉴스핌 Newspim] 김민정 기자 (mj72284@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