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위원장 등 투표로 결정..정부, '이중적 입장'
[뉴스핌=김윤경 국제전문기자] 애플 하청업체로, 그리고 근로자들의 연쇄자살과 임금인상 요구의 선봉장으로 잘 알려진 팍스콘이 공장들을 대표하는 노조 대표부를 투표로 선출하려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동안 중국에 '공회(工會)'로 불리는 노조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대개 경영진이 좌지우지할 수 있는 '어용 노조'였던 까닭에 노동자들이 직접 뽑아 자신들을 대변할 수 있는 조직을 결성하게 되는 큰 변화의 시작이 될 수 있을 지 주목된다.
최근 중국 정부는 의무사항은 아니지만 노조 설립을 강하게 권고하는 쪽이다. 중국 경제에 있어 큰 숙제인 소득분배와 균형성장을 이끄는데 노조의 설립과 현실화가 도움이 될 것이라고 판단하고 있기 때문이다. 공청당파로 개혁을 표방하는 신진세력으로 꼽히는 왕양(汪洋) 광둥(廣東)성 당서기는 몇 년 전부터 "근로조건 개선과 노사 간의 조화로운 관계를 위해 노동조합이 결성돼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 팍스콘, '착취의 대명사'에서 환골탈태할까
3일(현지시간)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 보도에 따르면 팍스콘의 이 같은 움직임, 즉 노조가 진정으로 노동자를 대표하는 기구로 만들기 위해 투표를 통해 노조 위원장을 뽑고 구성하겠다는 계획은 사실상 중국 내 규모가 큰 기업 가운데에선 처음이다. 팍스콘은 중국 내 120만명이나 되는 노동자를 두고 있는 거대 민간 기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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팍스콘 공장 현장(출처=Telegraph) |
팍스콘의 모기업 대만 훙하이그룹(鴻海科技集團)도 노조 대표부를 투표를 통해 뽑게 되면 젊은 노동자층의 입장을 더 잘 대변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으며, 여기엔 어떤 경영적인 개입은 없을 것이라며 기대감을 표하고 있다. 팍스콘에서 열악한 근로 환경 등을 이유로 자살한 젊은 층은 거의 25세 미만의 젊은이였다. 80년대 이후 태어난 이른바 '바링 허우(80后) 세대'가 대다수.
팍스콘은 FT와의 인터뷰에서 "팍스콘 노조 위원회 연합은 회장과 20명의 위원들로 구성되며 무기명 투표를 통해 5년마다 한 번씩 선출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관계자에 따르면 곧 있을 춘절 이후 팍스콘은 FLA의 도움을 받아 어떻게 노동자들의 대표를 선출할 수 있는 지에 대한 훈련을 받고 올해와 2014년에 임기가 끝나게 되는 1만8000명의 노조 위원들을 뽑을 계획이다.
한 관계자는 "현재까지 팍스콘 노조의 대표부가 뽑히는 과정은 민주적이지 않았다. 누가 후보에 나온는지 공개되지 않고 투명하지 않았기 때문이다"라며 "위원회 구성원의 절반 이상은 경영진이었기 때문에 대표성도 없었다"고 지적했다. 영어이름 '페기'로 불리는 첸 펭 팍스콘 노조 위원장은 꿔타이밍(郭台銘, Terry Gou) 훙하이그룹 창업자이자 최고경영자(CEO)의 신임을 받고 있는 인물이었다.
◇ 정부 이중적 입장..불평등 해소엔 '도움' 민주주의 확산은 '우려'
중국 내 노조가 유명무실한 존재라 문제가 된다는 주장은 팍스콘에 이어 2010년 광둥성 포샨 소재 혼다 부품 공장에서 파업이 발생한 이후 더 커졌다.
혼다 파업 중 젊은 노동자들은 중화전국공청회(ACFTU) 지도부가 문제가 있다며 야유와 비난을 퍼부었다. 이후 중국 남부를 중심으로 지방 정부들은 기업들에게 진정성 있는 노조를 설립할 것을 요구하게 됐다. 지난해 초 선전(深圳)시 정부에 이어 지난달 광저우 시 정부가 뒤를 이었다.
그러나 아직까지 변화의 움직임은 미미하다. 파나소닉 협력사인 선전 시 소재 옴스 일렉트로닉스 노동자들이 지난해 5월 처음으로 직접 노조 지도부를 투표를 통해 뽑았는데 이 정도가 거의 유일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정부는 이중적인 입장이다. 불평등과 빈부격차 문제를 풀기 위해선 노동자들의 손으로 노조를 설립하게 하는 것이 적절하지만, 체제를 위협할 만큼 민주적 절차가 확산되는 것도 걱정이기 때문이다.
중국 TV 오디션 프로그램 '슈퍼 걸(super girl)' 사태가 이런 정부의 딜레마를 여실히 보여준 바 있다. 이 프로그램을 통해 4억 시청자들이 전화투표를 통해 청바지 차림에 영어로 노래하는 리위춘(李宇春)를 뽑았다. 그런데 언론에선 "노래실력도 뛰어나지 않고 예쁘지도 않은 이가 당선됐다"면서 민주주의가 비효율적이라고 비난하고 나섰다. 체제 위협의 가능성을 눈치채고 걱정한 당국의 시각을 보여준 것이다.
따라서 상당수 전문가들은 팍스콘의 시도를 포함해 민주적 절차로 노조를 세우려는 움직임은 당분간 제한적일 것으로 보고 있다. 아직 어떻게 투표로 노조 위원장을 뽑는지와 협상하는 법조차 모르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기업측도 마찬가지.
홍콩 폴리텍 대학의 판 위(潘毅) 교수는 "임금을 둘러싼 단체협상과 교섭이 서방에서처럼 단체 행동이나 파업 등으로 이어질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고 언급했다.
◇ 외국기업들, 중장기적 변화는 불가피할 듯
'세계의 공장'으로 아직은 강력한 역할을 하고 있는 중국에 진출해 있는 외국 기업들도 걱정스러울 수 있다. 전 세계적으로 '무노조 경영'을 고수해 온 월마트가 중국 당국의 강력한 압박에 백기를 들고 노조 설립을 허용한 예도 있고, 노동자들의 임금과 처우를 개선하면 더 이상 제조업 경쟁력을 유지할 수 없다는 우려가 고개를 들 수 있다.
삼성과 현대자동차, LG 등 한국의 대표적인 기업들도 중국 사업장에 노조를 두고 있다. 다만 노조가 파업보다는 경영진과 상생을 도모하는 쪽으로 움직이고 있어 오히려 근로자와 회사 사이에서 충돌의 완충 역할을 해준 편이었다.
그러나 중국 내 생산직 노동력 공급이 더 이상 무제한적이지 않다는 '루이스 전환점(Lewise turning point; 개도국에서 노동집약적 산업 발전을 통해 경제가 급속히 성장할 때 더 이상 농촌 잉여 노동력을 확보할 수 없어 임금이오르기 시작하고 고성장도 둔화되는 현상)' 주장이 나오고 있고, 기업이 사실상 지배했던 노사관계도 변모할 조짐을 보이고 있는 것을 감안하면 중국을 더 이상 '저임금 무노조' 생산기지로만 삼는 전략은 수정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뉴스핌 Newspim] 김윤경 국제전문기자 (s914@newspim.com)